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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8월 26일 북한이 남파한 ‘요인 암살단’이 검거됩니다. 이들은 이승만, 김구, 조병옥, 장택상, 김성수, 장덕수 등 우익 인사 6명을 8월 30일까지 암살하고 남한 정세를 교란하라는 특명을 받고 8월 24일 서울에 잠입했습니다. 그러나 8월 26일 지휘자 격인 이종영 등 8명이 체포되고 3명은 수배됐습니다. 권총 8정, 수류탄 6개, 현금 6만원의 거금이 압수됐습니다.(1946. 8. 29. 조선일보) 암살 작전은 무위로 끝나는 듯했지만, 보름 후인 9월 12일부터 이 명단에 있던 우익 지도자 3명이 잇따라 권총과 수류탄으로 피격됩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946년은 한반도 정세의 급변기였습니다. 1945년 해방 후 남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조선공산당(남로당 전신)은 1946년 5월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터지면서 궁지에 몰립니다. 체포령이 내려진 박헌영은 9~10월쯤 월북해 버렸습니다. 공산당에 호의적이었던 민심이 삽시간에 돌아서자 공산당은 판을 흔들어야 했습니다. “위조지폐 사건으로 남한에서 공산당의 위신이 떨어지자 소위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평양의 보안국 특찰과장 김광빈으로 하여금 남한 민족 진영의 요인 암살 및 정계 혼란을 목적한 프락치대를 밀파했는데 이들은 경기도 경찰부 형사대에 의해 사전에 검거되었다.” (4·7 언론인회 <기자 25시> 1985) ‘요인 암살단’은 검거됐지만 남한 정세를 교란하려는 시도는 계속됐습니다. 박헌영은 해주에 머무르며 9월 총파업을 지시해 전국의 철도, 물류, 산업을 마비시켰습니다. 9월 총파업은 대구 10월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좌익 세력은 대구·경북을 휩쓸며 경찰, 공무원, 우익 인사, 가족 등 400명을 학살했습니다 바다이야기예시 . 언론이 ‘동학 이후 최대 사건’이라 부를 만큼 충격적 사태였습니다. 바로 이 무렵 우익 지도자 ‘빅3’ 피격 사건이 한 달 간격으로 발생하면서 사회적 불안은 극도로 짙어졌습니다. 첫 번째 표적은 이승만이었습니다. 9월 12일 아침 이승만은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리는 청년단체 합동결성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숙소인 돈암장(서울 성북구)을 나섰습니다. 승용차가 창덕궁 앞길에 다다랐을 때 부근 골목에 잠복하고 있던 괴한이 권총을 발사했습니다. 탄환 4발이 차체에 적중했습니다. 뒷 유리창 바로 위아래와 연료탱크 주변까지 총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총탄이 유리창을 빗나가면서 이승만과 두 비서, 운전사, 성동경찰서 경호요원 등 5명은 무사했습니다. “10시 20분쯤 상. 속에 앉아있는데 별안간에 총소리가 너댓 방 들리자 자동차 한 대가 상. 앞에서 정차하며 차 속에서 권총을 든 사람 두 명이 뛰어 달려가므로 같이 쫓아가 보니 권농정 12번지 골목 안에 중단발을 하고 검정 학생복을 입은 23-24세 되어 보이는 청년 한 명이 도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자동차에서 나온 사람은 권총에 총알을 재어 넣느라고 시간이 늦어져서 범인을 놓치고 말았습니다.”(목격자 증언, 1946. 9. 13 조선일보) 범인은 19일 뒤인 10월 1일 을지로4가의 한 가정집에서 체포됐습니다.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인 북한 공산당원 김광명(22·일명 김영수)이었습니다. 그는 요인 암살을 위해 8월 초 서울에 잠입했습니다. 1차 저격에 실패한 뒤 2차 시도를 위해 종로 기독교청년회관까지 이승만을 쫓아갔지만 경계가 삼엄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 . 정부 수립 전이었지만 이승만은 대중에게 국부로 불릴 만큼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찰관 26명이 이승만 경호를 위해 돈암장에 파견돼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승만 암살 시도는 전국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10월 1일 시작된 대구 10월 사건은 대구와 경북 일대를 휩쓸었지만 6일 만에 경찰에 진압됐습니다. 박헌영의 첫 번째 대규모 폭력 투쟁은 결과적으로 실패였습니다. 공산당원들에 대한 대대적 검거령이 내려졌습니다. 10월 사건 진압을 총지휘한 사람은 조병옥 미군정 경무부장이었습니다. 조병옥은 연희전문학교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로, 일제에 두 번이나 투옥됐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0월 사건으로 대구,경북에 머무르다 상경한 조병옥은 10월 16일 모처럼 서울 다동의 양식당 미장 그릴에서 제1관구경찰청장(경기경찰청장)과 .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조병옥이 자동차에 타려는 순간, 구두 수선 행상으로 가장하고 있던 괴한이 튀어나와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수류탄은 조병옥의 발밑으로 날아들었지만 다행히 불발됐습니다. 범인은 도주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그는 조선공산당의 행동 조직인 민청(민주청년동맹) 소속 24살 유주열이었습니다.(1946. 10. 18. 경향신문) 유주열은 ‘식량난 때문에 일어난 정당한 요구인 철도 파업을 경찰이 강압적으로 압박해 분개해서 그랬다’며 단독범행을 주장했지만 거짓말이었습니다. 1947년 6월 18일 경찰은 범행을 지시하고 수류탄을 제공한 민청 마포지구 위원장 31세 이송악(본명 이원기)을 체포했습니다. 바다이야기하는법 8월에는 남로당(1946년 11월 조선공산당이 남로당으로 개칭) 중앙감찰위원 겸 민청 돌격대장 정형길이 체포됐습니다. 그는 11명의 민청 조직원과 요인 암살을 공모한 총책으로 이송악도 그의 지휘 아래 있었습니다. 정형길의 집에서는 수류탄 2개, 뇌관 22개, 도화선 3m, 다이너마이트 2홉이 압수됐습니다(동아일보 1947. 8. 26.) 해방 정국에서 좌익은 경찰을 악마화했습니다. 대구 10월 사건,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사건 때 모두 제일 먼저 공격을 당한 것이 경찰이었습니다. 국군의 전신 국방경비대는 인력과 무장 수준에서 경찰에 미치지 못했고, 좌익도 많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좌익의 폭력에 맞서는 현실적인 물리력은 경찰이었습니다. 당시 경찰관 2만 5천 명 중 일제 때 복무한 사람은 5분의 1 정도였지만(미 육군 브라운 소장과 좌우합작위원장 김규식, 여운형이 참석한 1946년 11월 26일 회의록 중) 좌익은 경찰이 친일이라며 대중을 선동했습니다. 이런 경찰을 지휘한 투톱이 조병옥과 장택상이었습니다. 연배가 비슷하고(장택상 1893년생, 조병옥 1894년생) 반공 이념에 투철한 두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 경찰 행정과 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했고, 매사에 의견이 일치할 만큼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장택상 <대한민국 건국과 나>, 1992) 일본 와세다대와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유학한 엘리트인 장택상은 경무총감 겸 수도경찰청장으로 서울의 치안 유지와 남로당 수사를 총지휘했습니다. 조병옥 수류탄 피습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1946년 11월 13일 아침. 서울 장교동 자택을 나서 출근하던 장택상의 승용차가 을지로2가 한양양복.을 지나는 순간 수류탄 두 개가 날아들었습니다. 바다이야기다운로드 한 개는 앞 유리를 깨고 차 안까지 날아왔고, 한 개는 차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장택상은 재빨리 창문을 열고 길가로 나뒹굴었습니다. 몇 초 후 수류탄이 폭발했습니다. 사이드카로 뒤를 따르던 정남수 순경이 파편에 맞아 백인제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네 시간 만에 순직했습니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연료 탱크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장택상의 어린 자녀들은 불길 속에서 겨우 구출됐습니다. 범인들이 달아나자 장택상은 권총을 뽑아 총격을 가했습니다. 격투 끝에 하락규 순경에게 붙잡힌 범인 1명의 주머니에는 수류탄 한 개가 더 들어 있었습니다.(1946. 11. 14. 조선일보) “오전 7시경부터 수상한 청년 2명이 부근을 배회했는데 내가 길을 쓸고 나서 물을 뿌리고 있던 8시 40분경 장 총감의 자동차가 보이자 길 양편에 갈라서더니 자동차가 가까이 오매 갑자기 뛰어나가 수류탄을 던지고 권총을 난사했다. 자동차에서 뛰어내린 장 총감은 권총을 빼들고 용감히 대전하였는데 나는 무서워서 도망도 못 가고 허둥대다가 내 앞을 지나 도망치는 범인에게 엉겁결에 들었던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자동차에 불이 붙어서 순경들과 불을 끄고, 자동차에 탔던 어린애를 장 총감이 구해내는 것을 보았다” (현장 목격자 김주홍(동양공업학교 1학년) 증언, 경향신문 1946. 11. 14.) 붙잡힌 21세 최인식은 민청 조직원이었습니다. 그의 봉래동 집에서는 폭발물이 다수 압수됐습니다. 최인식을 취조한 결과 공범들이 줄줄이 검거됐습니다. 공범인 민청 조직원 김명수는 북한으로 도피했다가 1947년 7월 다시 서울에 잠입해 장택상 암살을 기도하다 7월 11일 체포됐습니다. 체포될 때 수류탄과 단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릴게임사이트 .(동아일보 1947.7.12.) 주범 김동권은 북한에서 수류탄 4개를 가지고 월남해 암살 음모를 꾸몄다고 자백했습니다.(1977. 5. 26. 경향신문 ‘비화 한 세대-군정 경찰 수뇌 피습’) 1946년은 한반도 운명의 저울추가 반대로 뒤집히던 시기였습니다. 1946년 초까지 한반도는 좌익 세상이었습니다. 북쪽은 이미 김일성이 접수했고, 남쪽도 조선공산당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해 남북 통일정권 수립을 시도하다 5월 결렬되자 남한에서 좌우합작을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과 협력해 정권을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 이승만은 6월 3일 정읍에서 “통일정부가 어렵다면 남한만의 임시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터져 조선공산당이 수세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한반도 공산화를 눈앞에 두고 판이 뒤집히게 생기자 공산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시 판을 뒤집으려 했습니다. 반공의 보루였던 이승만과 실질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던 조병옥, 장택상은 그들의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었습니다. 1948년 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 1950년 6·25전쟁 때까지 공산당과 맞서 싸운 이 ‘빅3’에 대한 암살 시도 중 하나라도 성공했다면 대한민국 역사는 지금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1946년 이후에도 이들에 대한 제거 시도는 계속됐습니다. 장택상은 모두 9번의 암살 기도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1948년 8월 15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조병옥은 1950년 내무장관을 역임했고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선출됐지만 위장 질환으로 미국에서 수술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별세했습니다. 장택상은 1948년 초대 외무장관, 6·25전쟁 중이던 1952년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대한민국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게임랜드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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