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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의 시인 아폴리네르
오늘은 작중인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인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1880년부터 1918년까지 38년의 짧은 삶을 살다 간 그 시인의 이름은 기욤 아폴리네르입니다. 아폴리네르는 프랑스어로 시를 쓴 시인으로서 1913년에 시집 『알코올』을, 1918년에 시집 『칼리그람』을 냈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미라보 다리’의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유명한 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시 ‘미라보 다리’ 첫 연의 널리 알려진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 입체파 화가 로랑생과 실연의 아픔
낭만시로 그렸지만 전위예술 옹호
폴란드 모계, 35세 때 프랑스 국적
‘모나리자’ 도난당하자 절도범 몰려
불안정한 신분, 시와 예술에 작용
문자로 그림 그리는 캘리그램 창시
」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강물이 흘러서 사라지듯 사랑도 흘러서 사라지므로 우리의 이별을 가슴 아프게만 생각할 필요 없다,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도 있는 법이니 우리 이별의 아픔 다음엔 기쁨이 올 수도 있다는 위안의 메시지로 읽힙니다. 그리고 아폴리네르와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이 연애하다가 헤어진 이야기가 결부되면서 이 시는 실연한 아폴리네르가 미라보 다리에서 실연의 아픔을 달랜 내용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미진한 ‘미라보 다리’ 번역
그런데 이 널리 알려진 번역이 실은 정확한 번역이 아닐 수 있습니다. 원시(原詩)는 위와 같은 의미로 읽는 게 잘 성립되지 않습니다. 만약 처음 발표된 버전을 원시라고 한다면 ‘미라보 다리’의 원시는 1912년 잡지에 발표된 버전이 될 텐데 그 첫 연은 세 행으로 이루어져 있고 구두.이 다 찍혀 있습니다. 번역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아래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른다.
한데 우리의 사랑을, 나는 추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아픔 뒤에 왔었다.
구두。이 찍혀 있어서 통사적으로 다르게 읽을 여지가 없습니다. 이 시가 1913년의 시집 『알코올』에 실리면서 구두.이 다 없어지고 두 번째 행이 둘로 나뉘어 첫 연이 네 행으로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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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네 행을 잡지 발표 버전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번역하게 됩니다(아래 번역은 시집 버전의 들여쓰기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른다
한데 우리의 사랑을
나는 추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아픔 뒤에 왔었다
첫 행과 두 번째 행 사이에 의미상으로 한 행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센강이 흐르듯이 사랑도 흐른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거죠. 널리 알려진 번역은 이 숨어 있는 의미를 끄집어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사랑도 흐르는 것인데 왜 나는 흘러가 버린 그 사랑을 추억하는 건가? 말끔히 잊지 못하고? 마지막 행을 보면 기쁨은 언제나 아픔 뒤에 옵니다. 아픔 뒤에 오는 기쁨,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내가 추억하는 이유가 이 기쁨에 있는 걸까요? 추억은 고통스럽지만 그 추억이 동시에 달콤한 회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보면 기쁨은 달콤한 회상입니다. 물론 이 기쁨을 다시 올 사랑, 미래의 사랑으로 읽는 것도 가능합니다. 선택은 독자의 몫입니다.
‘미라보 다리’가 워낙 유명한 데다가 감상주의적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이 시만 접한 사람들은 아폴리네르를 감상적 낭만주의자로 여기기 쉽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폴리네르는 보들레르와 랭보, 베를렌, 말라르메의 상징주의를 이어받으며 20세기의 아방가르드를 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시인입니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도 바로 아폴리네르입니다. 시집 『알코올』의 첫 시 ‘지대(Zone)’는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현대 도시의 사물들이 이제 새로운 목자(牧子)고 새로운 양 떼입니다.
마침내 너는 이 낡은 세계에 지쳤구나
오 목자여, 에펠탑이여, 아침마다 양 떼처럼 울부짖는 다리여
또한 그는 미술운동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의 미술평론은 20세기 초 파리에 등장한 새로운 미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야수파·입체파·오르피즘·형이상화파 등이 그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아직 유명해지기 전의 피카소와 교유했고 이 무렵에 입체파의 일원이었던 마리 로랑생을 만나 연인 관계가 되었고 미라보 다리를 사이에 둔 연애라는 전설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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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3년에 낸 미술평론집 제목이 ‘큐비즘 화가들’인 데서 보듯 입체파와 그의 관계가 특히 깊었는데, 그의 시에는 마치 입체파 회화를 언어로 만든 것 같은 장면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또한 그가 창시한 현대 캘리그램은 시의 글자 배열 자체가 그림이 되도록 함으로써 회화와 시의 경계를 지우려 한 실험입니다.
시와 회화의 선구적 역할
이 정도만 살펴보아도 아폴리네르가 20세기의 시와 회화에서 얼마나 선구적인 역할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것도 시가 될 수 있어, 이것도 그림이 될 수 있어, 아니 이게 더 중요해, 라는 그의 외침이 들리는 듯합니다. 글쎄요, 그의 신분상의 특성이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 아닙니다. 그의 어머니는 폴란드계 귀족이었고 아버지는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였고 그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것은 1916년 3월, 그의 나이 35세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프랑스 시민으로서 산 시간은 타계하기까지 3년이 채 안 됩니다. 하기야 시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언어겠습니다. 프랑스 국적을 언제 취득했든 간에 그는 프랑스어로 시를 썼습니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프랑스식으로 지은 필명이고 그의 폴란드어 본명은 매우 깁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하나 소개해보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모나리자’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1911년에 발생했던 루브르 박물관의 도난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사건 이후 박물관이 재개관했을 때 그림이 사라져 텅 빈 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으며, 2년 뒤에 그림이 회수되어 루브르로 돌아오면서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아폴리네르와 피카소가 용의자로 몰렸었습니다. 아폴리네르는 체포되어 며칠 동안 구금됩니다.
중국의 현대시가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볼 때 그 형성을 완성한 시인을 한 사람으로 꼽는다면 그것은 아이칭(艾靑)이 될 것입니다. 아이칭 시인은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고 미술 공부를 위해 1929년부터 1932년 사이에 프랑스 유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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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프랑스에서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도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에게 큰 영향을 준 프랑스 시인이 바로 아폴리네르입니다. 귀국 후 아이칭이 미술운동을 하다가 불온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투옥되었을 때 쓴 여러 편의 옥중시 중 한 편인 ‘갈피리’(갈대의 줄기·잎을 말아서 만든 피리)는 바로 아폴리네르에게 바치는 헌시입니다. 꽤 긴 시인데 처음을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나는 당신의 화려한 구라파에서
한 자루 갈피리를 가져왔어요,
여기서 갈피리는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이면서 동시에 시의 비유이기도 합니다. 시의 화자는 그 갈피리를 경찰서에 압수당했습니다.
아이칭이 아폴리네르의 영향을 받은 것에 비하면 한국 시인들은 그렇게 크고 집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상·정지용·김기림·오장환 등 몇몇 시인들에게서 어느 정도 아폴리네르와 유사한 。들이 보입니다.
한국에는 이상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계가 깊은 시인은 이상입니다. 아폴리네르의 캘리그램과 이상의 시각적 및 기호적 시가 유사한 .이 많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상의 실험이 아폴리네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는 .입니다. 글자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며 그 모양을 알아볼 수 있는 아폴리네르의 캘리그램에 비해 이상의 것은 숫자·기호·도면 쪽으로 확대되며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암호에 가깝습니다. 이상이 아폴리네르의 모방자라기보다는 프랑스에 아폴리네르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상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아폴리네르의 죽음입니다. 1914년 12월에 입대하여 하사관으로 복무하다가 1916년 3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장교가 되었는데, 국적 취득 후 8일째 되는 날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는 심각한 부상을 당합니다. 그의 죽음에 이 부상이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건 아니고 그가 죽은 건 스페인 독감 때문이었지만, 하필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이틀 앞두고 죽은 것도 무척 암시적입니다. 아폴리네르가 1911년 모나리자 도난 사건 때 범인이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수상한 외국인이라는 딱지가 붙었던 일과 이 국적 취득 과정을 연관시켜 보면 프랑스인이면서 프랑스인이 아니기도 한, 이 안팎이 한 몸에 있는 존재 조건이 아폴리네르의 시와 예술에 많은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성민엽 문학평론가
. 아폴리네르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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