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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3회 작성일 26-10-2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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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밤 휴대전화에 알림이 떴다.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가 보낸 메시지였다. 몇곡을 추천하더니 자기 전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자면서 그 노래를 배경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보내왔다. 나중에 찾아 듣지 말고 지금 같이 듣자는 얘기였다. 메시지를 듣는 순간 ‘기절’을 넘어선 ‘폭격’과도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남자친구도 이렇게까지는 안 한다. 아이돌과 팬 사이의 기본이 친근함이라지만 이 정도로 다정한 친구는 세상에 없다. 메시지를 받은 플랫폼은 ‘버블’이었다. 아이돌과 팬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료 구독 서비스다. 언뜻 일 대 일 대화창처럼 보이지만 아이돌의 메시지는 구독자 모두에게 똑같이 간다. 매일 건네는 인사와 다정한 말들이 자신만을 향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대화창을 열면 꼭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보이스 메시지를 받았을 때, 아이돌은 외국에서 다음 날 있을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지만 함께 있다는 ‘환상’만은 선명했다. K팝 아이돌의 오랜 팬인 맹미선 작가가 <환상 공동체>에 담은 자신의 경험이다. 맹 작가는 오랜 팬 활동의 경험을 연구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봤다. <베르사유의 장미>를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J팝을 즐겨온 그는 국내 작가와 아마추어 창작자들에게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이 웹툰 산업의 성장과 함께 주목받는 과정도 지켜봤다. 그는 “한때 변방처럼 보였던 취향과 창작물이 하나의 산업을 이루는 장면을 먼저 목격한 셈”이라며 “2010년대 후반 K팝이 세계적으로 급부상했을 때도 앞서 경험한 변화에 비춰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미지와 기술 그리고 미디어와 함께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발견하고 관계를 만들고 그 환상 공동체를 통해 삶의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 .” 책은 K팝이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환상’에서 찾는다. K팝 산업은 콘셉트와 세계관, 공연과 팬 플랫폼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팬들이 몰입할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팬들은 그 안에서 저마다의 환상을 키우고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다른 팬들과 연결된다. 책은 이렇게 형성된 환상이 일상에 스며들고 공동체로 확장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맹 작가는 “환상에서 시작된 관계들이 이미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충분히 의미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4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맹 작가를 만났다. ■ 환상은 현실의 반대말이 아니다 환상이라고 하면 흔히 착각이나 허상, 언젠가 깨야 할 덧없는 꿈을 떠올린다. 맹 작가는 그 통념을 뒤집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세상은 진짜와 진실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간은 실존하는 것만을 사랑하거나 진짜에만 영향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사람들은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고 이야기에 빠지고 이미지에 마음을 준다. 이런 것들이 실제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힘을 보여주는 단어가 ‘환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흔히 쓰이는 ‘덕질’이 공연장에 가거나 굿즈를 사는 것처럼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가리킨다면, 환상은 좋아하는 마음이 자기 안에서 하나의 세계를 짓고 다시 바깥과 부딪치는 과정 전체를 담는다는 설명이다. 환상에 몰입한다고 해서 팬들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맹 작가는 “팬들도 아이돌이 자신을 실제로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라딘릴게임 관계의 비대칭성을 알면서 메시지와 라이브 방송 등을 통해 사소한 일들을 공유하며 친밀감을 쌓아간다”며 “상대가 나를 모르더라도 익숙한 사람이 있다는 감각만으로 충분히 관계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팬들의 대화 패턴에서도 환상과 현실의 경계는 작동한다. 예컨대 온라인에 아이돌 멤버의 사진이 올라오면 “진짜 사귈게”, “내가 데려다 키울게”와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그렇다고 실제로 사귀거나 함께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상 집단 독백”으로 각자 자신의 환상을 표현하며 즐기는 일종의 놀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선을 넘어 실제로 그런 관계를 원하는 듯한 말을 꺼내면 분위기는 금세 싸늘해진다. 팬들은 “환상이 쳐둔 경계를 넘어서는 일에 예민한 촉각을 세우며” 환상과 현실 사이에 경계를 긋고 있다. K팝 산업은 팬들이 환상에 몰입하고 그 안에 오래 머물도록 다양한 장치를 발전시켜왔다. 맹 작가는 “콘셉트, 세계관, 무대에서 본 이미지, 라이브 방송, 짧은 영상, SNS 게시물, 버블 메시지 등 서로 다른 매체에서 접하는 콘텐츠가 모두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재료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획사가 제공하는 것은 환상의 재료일 뿐이다. 팬들은 그 가운데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이미지를 선택해 기억하고 공유하며 때로는 2차 콘텐츠를 직접 만든다. 맹 작가는 “이러한 능동적인 참여가 반복되면서 멀리 있던 대상이 자신의 삶과 일상에서 구체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2012년 데뷔한 그룹 엑소는 멤버들이 외계 행성에서 온 초능력자라는 세계관을 내세웠다.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선보인 이 설정은 이후 콘텐츠에도 이어졌다. 온라인릴게임 팬들은 곳곳에 흩어진 단서를 연결하고 빈틈에 자신만의 해석과 상상을 덧붙였다. 맹 작가는 이를 “팬들에게 놀잇감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기획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정교한 세계관과 서사가 팬들의 몰입을 이끌었다면 최근에는 숏폼 콘텐츠의 확산에 맞춰 이미지와 감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이돌과 팬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공연장이 문을 닫고 대면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온라인 팬 사인회와 유료 메시지 서비스가 새로운 소통 창구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이 같은 방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팬들은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메시지와 사진, 라이브 방송을 통해 아이돌과 일상을 공유한다. 맹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도 우리가 연결될 수 있고 뭔가 소통할 수 있구나라는 감각이 생겨버린다”면서 온라인에서 형성된 친밀감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돌이 현실 아닌 가상 이미지로 존재함에도 팬과 아이돌 사이의 거리감이 어느 때보다 가깝게 보인다”고 말했다. ■ 낯선 사람들이 ‘우리’가 되는 법 아이돌을 둘러싼 환상은 팬과 아이돌 사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기도 한다. 맹 작가가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온 개념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이다. 앤더슨은 서로 알지도 만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의 집단에 속한 구성원으로 상상한다는 。에서 민족을 ‘상상된 공동체’로 설명했다. K팝 팬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팬들은 서로 알지 못해도 같은 콘텐츠를 보고 같은 사건에 반응하며 같은 이름과 상징을 공유하면서 자신이 더 큰 집단의 일부라는 감각을 갖게 된다. 야마토게임 그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 공동체적인 결속을 상상할 수 있다는 。”에서 앤더슨의 개념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미지와 감각, 욕망을 매개로 관계를 맺는 오늘날의 특성을 반영해 ‘환상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변형했다. 그러나 ‘환상 공동체’는 연약하다.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더라도 각자가 품는 환상은 다르기 때문이다. 맹 작가는 “같은 대상을 좋아하더라도 사실은 다 동상이몽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그룹 안에서도 좋아하는 멤버나 모습이 다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를 둘러싸고 팬들끼리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들을 묶는 것은 공통된 신념이나 제도가 아니라 같은 대상을 좋아한다는 느슨한 공통분모다. 맹 작가는 연약하다는 건 가짜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같은 순간에 강한 일체감을 경험하며 ‘우리’라는 감각을 공유한다. 서로 다른 환상을 품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의 무리로 움직일 수 있을까. 맹 작가는 그 답을 ‘의례’에서 찾으며 “의례는 사람들의 생각을 똑같이 만들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순간에 같은 동작을 하도록 한다”고 전했다. 팬들의 일상에도 의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포카(포토카드) 예절숏’이다. 카페나 식당에서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카를 음식 옆에 놓고 사진을 찍는 행위다. 맹 작가는 명함만 한 이 카드를 “좋아하는 아이돌을 소환하는 마도구”라고 표현했다. 여러 팬이 모이면 각자 가져온 최애 멤버 포토카드를 음식 주변에 늘어놓고 사진을 찍는다. 좋아하는 대상은 제각각이지만 같은 행동을 하며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례가 집단으로 펼쳐지는 공간은 콘서트장이다. 수많은 팬이 응원봉을 흔들고 정해진 구호를 외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온라인파칭코게임 맹 작가는 응원봉과 응원법, 공연의 특정 순간에 대한 기대 등 미리 공유된 형식이 있기에 처음 만난 사람들도 같은 행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나의 의지보다는 흐름에 맡겨서 하나가 되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서로 이름도 모르지만 “나 혼자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 나만큼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일체감을 경험한다. 콘서트에서 경험한 일체감은 공연 전후의 교류를 통해 실제 관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팬들은 온라인에서 응원법을 익히고 공연 정보를 교환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 티켓과 굿즈를 챙겨주고 공연장에서 잠깐 마주친 팬과 SNS 계정을 교환해 서로의 일상에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만 알던 해외 팬을 공연장에서 만나고 다음 공연에서 다시 만나는 일도 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사진과 영상을 공유하며 경험을 되새긴다. 맹 작가는 이렇게 온라인과 현실을 오가며 낯선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과정을 ‘환상 공동체’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았다. 맹 작가는 K팝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됐지만 여전히 소비문화나 산업적 성과를 중심으로 논의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팬덤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집단에 그치지 않는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같은 대상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연결되고, 온라인에서 맺은 관계를 현실로 이어가며, 그 관계에서 위로와 소속감을 얻는다. 혈연이나 지역, 직장 같은 전통적인 관계와는 다른 방식이다. 맹 작가는 이러한 관계들이 “이미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충분히 의미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K팝 팬덤에 주목한 것도 이런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지와 기술 그리고 미디어와 함께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발견하고 관계를 만들고 그 환상 공동체를 통해 삶의 의미를 갖게 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 있었다.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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