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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더 달리지 않는다. 철로를 따라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열차의 기적도 멈췄다. 대신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고,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출근길에 걸음을 재촉하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달린다. 경북 포항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숲. 한때 기차가 달리던 길은 이제 시민들이 걷고 쉬며 여유를 찾는 공간이 됐다. 산업도시 포항의 성장과 시민들의 삶을 지켜봤던 철길이 산책길로 다시 태어나면서 오래된 기억 위에 새로운 일상을 쌓고 있다.
철길숲의 출발.은 옛 동해남부선 포항 도심 구간이다. 포항시 북구 우현동 유성여고 일대에서 옛 포항역 주변을 지나 남구 연일읍 유강리까지 약 9.3㎞ 이어진다. 이 길에는 포항의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한때 포항제철소 통근열차가 오갔고, 옛 포항역에서는 해병대 입영열차도 운행됐다. 철길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었다. 포항이 산업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일터와 생활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변화는 2015년 찾아왔다. 포항역 이전과 KTX 직결선 개통 등을 계기로 도심 구간의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기차가 떠나고 버려진 공간으로 남을 뻔했던 철길은 시민을 위한 녹색 공간으로 변신했다. 철로가 사라진 자리에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놓이고 다양한 나무와 꽃이 뿌리를 내렸다. 쓰임을 다한 철길을 없애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쓰임을 더한 것이다.
철길숲에 들어서면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길의 표정을 바꾼다. 벚나무와 이팝나무, 수국 등이 어우러져 걷는 재미를 더한다. 길 곳곳에는 음악분수와 잔디마당, 스마트도서관 등 시민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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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잠시 앉아 책을 읽거나 잔디마당에서 여유를 즐기기에도 좋다.
철길숲의 매력은 일부러 시간을 내 찾거나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거나 출근길을 걷는 시민들이 이 길을 채운다. 한낮에는 나무 그늘 아래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녁에는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려는 발걸음이 이어진다. 최근 러닝을 즐기는 시민이 늘면서 걷기와 달리기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 공간으로도 자리 잡았다.
관광객에게는 포항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는 길이다. 바다와 해안 풍경으로 알려진 포항에서 도심의 녹색 공간을 따라 걸으며 지역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철길숲의 변화는 길 안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오래된 주거지 사이로 카페와 음식., 소매。 등이 들어서면서 산책 전후로 주변 상권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포항시 자료에 따르면 철길숲 인근에서는 건축물 196동이 신축되거나 증축됐다. 이 가운데 3곳 중 2곳은 카페와 음식。, 소매. 등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길숲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끝나는 길이 아니다. 걷다가 카페에 들르고, 골목을 둘러보다 음식。에 들어서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산책이 지역 상권을 만나는 일상적인 활동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경주에서 포항으로 출퇴근하는 김민희씨는 “철길숲은 도심에서 산책과 운동을 즐기고 공연이나 문화행사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라며 “보행로와 자전거도로의 구분 등 이용 환경이 조금 더 개선된다면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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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숲을 걷다 보면 어울누리숲 구간에서 낯익은 열차 한 량을 만난다. 옛 무궁화호 객차다. ‘1918 포레일’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객차는 1996년 제작된 카페형 무궁화호 차량이다. 2022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내부에서는 포항의 관광명소와 철길숲을 소개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을
태우고 전국의 철길을 달리던 객차는 이제 한자리에 머물며 철도의 역사를 전한다. 열차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기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철길숲은 환경적 가치로도 주목받는다. 포항시는 철길숲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외부사업에 등록해 연간 약 40t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인증받았다. 2022년에는 동아시아 최초로 영국의 그린 플래그 어워드 인증을 받았다. 폐철도와 도심 유휴공간을 활용해 녹색 공간을 조성하고 관리해 온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철로를 따라 바쁘게 움직이던 열차와 승객들, 출발과 도착을 알리던 역의 풍경⋯. 철길숲을 걷다 보면 문득 이 길을 달리던 기차의 모습이 떠오른다. 기차는 떠났지만 길은 남았다. 그 길 위에서는 포항 시민들의 하루가 천천히 흐른다.
“도시의 기억 품은 공간⋯ 시민 휴식·건강·소통의 가치 더한 길로 ”
천인자 포항 철길숲 코디네이터
“철길숲은 시민들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차가 달리던 철길이 휴식과 여유를 주는 숲길로 바뀌었으니까요.”
천인자(사진) 포항 철길숲 코디네이터는 철길숲의 가장 큰 가치를 시민의 일상에서 찾았다. 천 코디는 22일 “철길숲의 매력은 누구나 일상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이라며 “출퇴근길에는 이동로가 되고,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에게는 건강을 돌보는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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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와 문화공연이 열릴 때면 이웃들이 한데 어울려 소통하는 열린 마당으로 바뀐다”라고 말했다.
또 “철길숲은 철길이 품고 있던 도시의 기억 위에 시민의 휴식과 건강, 소통과 재생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더한 길”이라며 “기차가 달리던 철길이 이제는 시민의 행복한 일상을 잇는 길이 됐다”고 설명했다.
1994년 포항으로 시집오며 지역과 인연을 맺은 그는 문화관광해설사로 20년 가까이 활동하며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왔다. 2019년부터는 철길숲 코디네이터를 맡아 숲길의 조성 과정과 역사, 나무와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시민과 방문객에게 전하고 있다. 철길숲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오는 다른 지역 방문단에 이곳의 의미와 가치를 소개하는 일도 그의 역할이다.
철길숲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그는 “철길숲이 단순한 녹지공간을 넘어 주변 골목에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고 지역에 활력을 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길숲 곳곳에 설치된 스틸아트 작품도 눈길을 끈다.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포항의 지역적 특성과 옛 철길의 기억이 예술작품과 어우러져 도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산업, 예술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에서 철길숲만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천 코디는 철길숲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조성됐다는 .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도 폐철도를 활용한 공간 조성을 고민하며 철길숲을 찾고 있다”며 “각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살리면서 시민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앞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도 제시했다.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주차장 등 이용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옛 철도시설과 철길 건널목 등 과거의 흔적을 보존해 교육과 체험의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년 가까이 활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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