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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9월 대구 16헌병대에 배치돼 군 복무 중이던 아버지는 우연히 다방에서 신문을 펼치다 한 기사를 접했다. 강원도 명주군 강동면 모전리라는 산골 마을에서 이화여대 교육학과 출신 여성이 청춘을 바쳐 농촌 봉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마다 홍수가 나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둑이 필요하다고 본 기사의 주인공은 주민들에게 둑 건설의 당위성을 전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대뿐이었다. 결국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그가 앞장서 지게질을 하자 이에 감동한 주민들이 합세해 4㎞에 달하는 둑을 쌓았다는 것이다. 기사는 이 실화가 기록영화 ‘뚝’으로 만들어졌고 그해 열린 제7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기획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날 양야리교회를 섬기며 농촌 계몽과 개혁에 깊은 뜻을 품었던 아버지는 이 기사를 읽자마자 큰 감동을 받았다.
기사의 주인공은 김춘심, 바로 올해 90세인 우리 어머니다. 아버지는 같은 기독교인으로 농촌을 사랑하는 동지를 얻고 싶다는 마음에 어머니께 무작정 편지를 썼다. 편지엔 농촌 운동 경험과 현재 군 복무를 하며 밤엔 대구장로회신학교(현 영남신학대)에 가서 신학을 공부한다는 사연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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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아버지는 신학교 2학년으로 편입해 주경야독 중이었다. 얼마 뒤 도착한 회신엔 매우 정갈하고 아름다운 달필로 쓰여진 글이 적혀 있었다. “한낱 흙 속에 파묻힌 밀알의 울음이 선생님의 마음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는 데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지합니다”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며 뜻이 통하는 동지를 찾았다고 여긴 아버지는 그 즉시 답장을 보냈다.
이후 두 분은 한 달에 두 차례 신앙과 농촌 운동의 현실, 삶의 고뇌를 나누는 편지를 주고받으셨다. 편지에서 어머니가 잦은 출장과 과로, 외로움 등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아버지는 답장에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사상에 대해 쓰며 어머니의 고충을 위로하곤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편지 전부를 노트에 일일이 베껴 쓴 뒤 보관할 정도로 이를 소중히 여겼다. 첫 편지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는 무려 126통에 달했다. 그 사이 두 분의 호칭은 동지를 거쳐 연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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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얻은 아버지는 어머니가 계신 강릉을 찾았고 이때 장래를 서로 약속했다. 아버지는 3년간 군 복무와 야간 신학 공부를 무사히 마친 건 모두 어머니 덕분이라고 했다. 두 분의 애틋한 감정과 사랑이 담긴 편지는 지금도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아버지는 군 제대 후 64년 3월 3일 육군본부교회에서 어머니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아버지는 신학생이었고 어머니는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부녀지도과에서 농촌 여성의 생활 개선을 담당하고 계셨다. 결혼 후 어머니는 시부모와 시누이 3명, 시동생 2명의 필요를 채우며 신학생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다.
아버지는 한 살 연상의 아내인 어머니를 “나의 동지이자 친구, 애인이자 아내, 누님”이라고 부르며 “나 같은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 고생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기도 대장’이란 별명도 붙여줬다. 하루에 드리는 기도시간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아내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씀하시곤했다. 아버지의 목숨 건 이단 연구 뒤에는 늘 눈물로 기도하며 남편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어머니 김춘심 여사의 위대한 희생과 사랑이 있음을 늘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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