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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산> 배두일 객원기자] 언제 바닥을 치려는지 마냥 곤두박는 내리막에 속이야 터지거나 말거나, 부드러운 흙길과 우거진 솔숲은 순하디순한 풍경으로 여유롭다. 무심코 산모롱이를 돌아들자 나타난 숲속의 돌담 마을, 문득 눈앞이 트이며 널따랗게 펼쳐지는 작은 벌판 마을이 고즈넉하다. 사나사(Sanasa)며 라우사사(Lausasa)며 자매 같은 돌림자의 동네 이름이 귓가에 스테레오로 감돈다.
뭐지? 키다리 소나무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나지막한 떨기나무들만 좌우로 즐비하여, 옛날 북적대던 저잣거리 남녀노소가 바닥에 납죽 엎드려 삽시간에 조용해지는 광경이랄까. 이내 짜잔, 등장하는 히말라야의 고을 원님은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아름다운 하얀 면사포의 아마다블람(Ama Dablam·6,812m)이다. 근데 웬일이지? 지금껏 어느 모퉁이를 돌든, 어디 고개에 올라서든 가장 먼저 눈길을 꺼당긴 세계 3대 미봉은 한결같이 오른쪽 구석에서 등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일 가까운 딩보체(Dingboche·4,410m) 어름이라 해도 오른쪽으로 4.5km 이상 멀찌막이 비껴서 있는 아마 다블람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번엔 불쑥 정면으로 눈앞에 나타나 '심쿵'한 가슴이 아릿하여 걸음을 멈춘다. 뭉글거리는 솜구름 속에 구름보다 더 진하게 더 높이 둥덩실, 그냥 한 무더기 산봉우리구름으로 떠 있다.
저 아름다운 봉우리를 오르는 일은 눈을 디디고 바위를 붙들고 얼음을 찍는 오름짓이기보다 두 발 두 팔로 구름을 휘젓는 춤 사위에 가깝겠다. 한 마리 백학의 날갯짓 같은 학춤이 마냥 어른거렸을까. 1953년 빛나는 사가르마타(8,848m) 초등을 이룬 에드먼드 힐러리가 쿰중 스쿨 설립, 루클라 공항 건설, 설인 예티(Yeti ) 찾기 와중에 아마다블람 앞자락 밍보(Mingbo) 빙하에 '은빛 막사(Silver Hut)'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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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 계곡에선 사가르마타 초등 직후 등반가들이 몰려 1954년 초오유(Cho Oyu·8,201m) 그리고 1956년 로체(Lhotse·8,516m)가 득달같이 등정되었다. 꼭 8,000m 봉이 아니더라도 4,910m 로부체(Lobuche·1955)와 6,189m 아일랜드 피크(Island Peak·Imja Tse ·1956)처럼 좀 눈길을 끈다 싶은 설산준봉이면 높이를 불 문하고 원정대의 발길이 미쳤다. 아니, 아직 하나가 남았었다, 가시를 품은 장미가. 셰르파들에게는 어여쁜 '어머니의 목걸이'로 통하였으나, 등반가들에겐 거대한 삼각형의 뾰족탑이 '히말라야의 마터호른'으로 비치는 아마다블람이었다. 1958년 영국·이탈리아 원정의 좌절, 1959년 영국 원정대 2명의 흔적도 없는 실종이 있은 뒤로는 난공불락 요새는 더욱 철통같았다.
"돌아보지 마!" 옐로 타워가 소환한 오르페우스의 금기
천하의 힐러리도 처음엔 엄두를 내지 못해서였을까. 목표는 아마다블람 초등정이 아닌 고소에서의 인체 반응 연구였는데, 물론 순수 과학 탐사가 아닌 전설의 예티 수색과 8,000m급 무산소 등정의 탐색이었다. 등반보다 훨씬 오랜 10개월(1960.9.-1961.6.)에 걸친 일정이기에 나일론 텐트가 아닌 짱짱한 알루미늄 조립식 막사를 세웠다.
안락한 5,800m 베이스캠프에서 겨울 한 철을 오롯이 머무는 전무후무한 고소 적응의 약발은 예기치 않은 때 생각지 못한 쾌거로 분출됐다. 눈과 하늘뿐인 적막공산(寂寞空山)에서 심심풀이로 어슬렁거리던 중에 모두가 철옹성으로만 여겼던 아마다 블람을 까짓것 초등해 버렸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뉴질랜드의 마이크 길(Mike Gill)을 비롯한 4명이 1961년 3월 13일 정상에 섰다. 저 왼쪽 우묵한 아마다블람 등성이, 눈구름 갈기 휘날리는 백마의 안장에 올라탄 그들은 1캠프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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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울렁출렁 성난 파도의 톱날 능선을 네 발로 허우적거리며 통과했다 싶은 순간, 다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은 난제에 아연실색했다. 수평의 문제를 풀고 나니 정반대 수직의 문제였다. 직벽으로 깎아지 르고 위쪽은 숫제 오버행을 이뤄 떡 버텨선 칼벼랑이 지금 여기서 보기에도 아찔하다. 금빛 도는 30m의 화강암 수직벽은 '적벽(Yellow Tower )'이란 악명으로 지금까지 숱한 등반가들에게 스무고개 내기를 걸고 있다.
고소의 완벽 적응으로 허파꽈리가 예티의 산소 탱크처럼 된다고 해도 90도가 1도라도 누워 보이는 것도 아니니, 옐로 타워의 치트키는 다른 데서 찾아야 했다. 고정 로프, 등강기, 피톤, 줄사다리 등 고전적 열쇠를 총동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직껏 난이도 5.9급으로 인정받는 천상의 크랙을 향해 600여 미터 허공으로 몸을 내밀어야 하는 미친 짓이었다.
5.9 크랙이라면 인수봉 동면의 심우길에서 오른발과 무릎과 허벅지까지 끼워 넣고 양손과 오른쪽 어깨를 쑤석거리다가 여의치 않으면 헬멧 쓴 머리마저 통째로 재밍해야 하는 15m의 사선 크랙이 대표적이다. 왼발은 한사코 미끄덩거리는 반들반들한 수직 슬랩에서 티끌만큼의 마찰을 포착하려 발바닥을 비비대며, 중력 법칙을 맹종해 무작정 추락하려는 몸뚱이를 저지해야 한다.
온몸의 근육세포와 신경세포가 상하 청백 팀으로 나뉘어 생사의 줄다리기를 하는 그 몸짓을 6,000m 벼랑에서 펼친다는 건 얼마큼이나 살 떨리는 느낌일까. 인수봉에서처럼 가뿐한 몸도 아니고 육중한 빙벽화, 거치적대는 방풍의, 묵직한 배낭의 완전무장으로 말이다. 고소 체질 장착의 무산소 등반이었기에 산소통과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됐다는 게 한 가닥 위안이긴 했겠다.
"돌아보면 안 돼!"
장비발의 극치인 요즘에도 아마다블람을 오른 등반가들은 후기에 이런 충고를 남긴다.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Orpheus)는 저승 탈출 때 그 금기를 무시하는 바람에, 손잡고 있던 아내 에우리디케(Eurydice)가 다시 저세상으로 추락하는 비극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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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옐로 타워에서 뒤돌아본다면…. 공포심에 심장이 콩알만 하게 쪼그라 들고 옐로 타워는 순식간에 5.10 또는 5.11 이상으로 뛰고 저승의 문이 열리리라.
모델 1자걸음 시험대로 딱… 폭 30cm, 길이 150m 칼날능선
초등자들은 2캠프를 나서자마자 나타난 암벽, 설벽, 빙벽이 뒤섞인 100m 75도의 그레이 타워(Grey Tower ·6,100m), 연이어 모델들 1자 걸음 시험치는 런웨이로 딱인 폭 30cm, 길이 150m 칼날의 버섯 능선(Mushroom Ridge·6,200m)까지 칼바람 속에 통과했으나 그래도 끝이 아니었다. 정상을 앞에 두고 하룻밤을 얼음 동굴(6,400m)에 붙박여, 급속 냉동에 저항하는 생존 본능의 밑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아마다블람 초등은 개천 치다 금 주운 격의 굴러든 복이랄 수 있지만 3월 13일은 한 가닥 아쉬움을 남긴 날짜였다. 겨울이 끝난 지 채 2주가 안 돼 동계 등정이나 다름없었으나 아무튼 봄의 문턱이었다. 달력상 동계 초등은 1985년 12월 7일 북동벽을 뚫는 미국 팀에 의해, 1961년 초등 때 오른 남서능의 동계 초등은 1991년 12월 15일 한국의 서울교대산악회에 의해 이뤄진다.
글.사진 배두일 객원기자│ <사람과 산> 주최 한국산 악문학상 제1회(1991) 중편 등반수기('포효하는 토왕성'), 제3회(1993) 중편소설('환상방황') 수상으로 등단한 유명한 산악작가이다. 일간지 언론인으로 재직 때부터 암벽 과 빙벽 등반 등 산행을 하며 2006년 이후 월간 <사람과 산>에 산행 에세이를 연재 중 이다. 저서로 <환상방황(공저)>, <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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