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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으로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기온뿐 아니라 노랗게 물든 논도 계절의 변화를 알립니다. 한반도 벼농사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지난 1986년,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고대 볍씨와 탄화미(불타거나 산화돼 땅에 묻힌 쌀)가 출토됐습니다. 탄소동위원소 측정법 등을 동원해 시기를 추정해보니, 신석기에서 청동기 시대 사이인 4천~5천년 전의 것으로 평가됐죠. 우리가 '밥심'으로 살아간 시간이 그만큼 오래된 겁니다.
그 흔적이 나온 곳은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일대, 우리가 흔히 '김포평야'라 부르는 곳이었습니다. 김포평야에선 올해도 논농사가 이어지고 있고요. 수확철이 다가온 김포평야를 지난주 찾았습니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시기지만, 농민들의 표정에선 기대보다 걱정이 더 크게 엿보였습니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비가 올 때는 비가 와야 하거든. 여기 김포 태풍 온 지 한 3년 됐지. 요번에도 다 피해서 갔지. 중국, 일본으로 갔잖아. 근데 태풍이 와야 돼. 태풍이 와야 하는데, 태풍이 와서 바다를 뒤집어 놓듯이, 이 농사도 태풍 불어가지고 바람에 다 이 병충해 이런 거를 저기를 해야 된다고. 또, 그래야 비가 오거든. 비가 안 오니까 모든 곡물이 다 한재(폭염·가뭄 피해)가 나는 거야. 사람이 완전 더운 데 나오면 열사병처럼 쓰러지고, 막 노인네들이 그러시지. 식물도 그렇게 되는 거. 내가 지금 벼 베어가지고 온 것도 말릴건데, 저거 밥이 맛도 없고. 한재가 나면 벼가 시뻘건 데가 있어. 거지 보면 그렇지. 저게 한재라 그러는 거야.”
오용석 경기 김포시 통진읍 농민
태풍 없는 해가 여러해 이어져 온 만큼, 올해 쌀 생산량에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소출량도 변하지. 많이 줄지. 200평에 400줄이면 원래 쌀이 4가마 나오는 건데, 2가마 나온다고 봐야지. 올해 흉년이야, 흉년. 농사꾼 울상이야,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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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도둑해간 것 같아. 그러니까 그런 시절이라고. 농사꾼들이 참 힘들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참 힘들다고. 보통 힘든 게 아니야. 내가 지금 타고 온 거. 이 기계가 하루 뜨면, 기름 한 드럼 가져와야 돼. 트랙터도 먹지, 저 콤바인도 먹지. 콤바인이 140리터 들어가.”
오용석 경기 김포시 통진읍 농민
현장의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통계로 나타났습니다. 실제 올해 전국의 쌀 생산량이 최근 10년 새 가장 적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 겁니다. 국가데이터처는 지난 8일 '2026년 쌀 예상 생산량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올해 예상 생산량이 351.8만톤으로 전년 대비 0.6%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2016년부터 최근 10년새 손꼽힐 만큼 적은 양이고, 2022년의 376.4만톤부터 5년 연속 감소세를 기록한 셈입니다.
연도별 쌀 생산량과 벼 재배면적의 추이를 살펴봤습니다. 2016년, 전국 77.9만ha의 농지에서 419.7만톤의 쌀이 생산됐습니다. 위 그래프에선 이때의 숫자가 가장 큰 숫자이나, 2016년이 '현재'였던 10년 전엔 '최근 10년새(2007~2016년) 최저 수준'이었던 숫자이기도 합니다. 2007~2016년, 해마다 많게는 491.6만톤(2009년)의 쌀이 생산됐고, 2016년의 생산량 419.7만톤은 이 기간 2012년(400.6만톤) 다음으로 가장 적은 양이었으니까요. 2012년은 여전히 우리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제14호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했던 해입니다. 전국이 태풍의 영향을 받으며 19명이 숨졌고, 특히 제주와 호남엔 큰 피해를 남겼죠. 그래도 '400만톤'은 결코 뚫리지 않는 저지선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2017년부터 10년의 세월,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단 한 차례도 400만톤을 넘지 못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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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농업의 특성상 기후변화는 이러한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나, 이러한 감소세는 그것 만으론 설명되지 않습니다. 쌀을 키우는 농지 자체가 빠르게 감소하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국가데이터처는 올해 쌀 생산량이 줄어든 주요 요인으로 이 농지를 꼽았습니다. 올해 상황을 두고 국가데이터처는 “10a(에이커)당 예상생산량은 525kg으로 지난해의 522kg보다 0.5% 늘었다”면서도 “전략작물 직불제, 논 타작물 전환사업 등 쌀 적정 생산대책 추진으로 재배면적이 지난해 67.8만ha에서 67만ha로 1.1% 감소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로 인해 전국 생산량이 2.1만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는 겁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벼 재배면적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밥심의 근간인 논이 밭으로, 공장으로, 아파트로 빠르게 변해가는 겁니다. 수도권에 위치한 김포평야 농민들에겐 이러한 변화가 더욱 크게 와닿습니다. 오 씨는 “여기 다 논이었지. 다 논이지, 논 아닌 데가 어딨었어. 지금은 김포평야도 이쪽으로 다 많이 줄었어”라며 “김포 사람들은 보상받아가지고 자꾸 대토해서 나온다”고 토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김포평야에서 오랜 기간 농업에 종사한 김종찬 씨도 “논들이 이제 과수로 다 바뀌고있다”며 지금의 상황을 걱정했습니다.
지난 2000년, 전국적으로 107.2만ha에 달했던 벼 재배면적은 2010년 89.2만ha, 2020년 72.6만ha로 。차 줄어 지난해엔 67.8만ha를 기록했습니다. 25년 새 37%, 그러니까 3분의 1 이상이 사라진 겁니다.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도시에서 쌀을 소비하는 입장인 시민들에겐 이런 변화가 크게 체감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벼 재배면적이 줄고, 기후변화로 벼의 생육조건은 더 나빠져 궁극적으로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우리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 또한 이 기간 93.6kg에서 53.9kg으로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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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려 최근 몇 년간 관련 논의를 돌이켜보면, 지금 당장 '남는 쌀'에 대한 걱정이 커지면서 여야간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거센 공방이 오갔죠. 문제는, 시장에서의 '가격'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식량안보'도 함께 고민했어야 했다는 .입니다.
2025년 현재 기준, 쌀 생산량은 소비량보다 7만톤 가량 더 많습니다. 앞으로의 수급 전망은 어떻게 될까. 국정감사 기간을 맞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해 정부에 2050년까지의 수급 전망 관련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정부는 2035년, 국내 쌀 생산량은 332만톤으로 줄고, 소비량은 329만톤으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생산-소비 격차가 10년새 7만톤에서 3만톤 가량으로 크게 좁혀질 전망인 겁니다. 2040년 전후로는 생산-소비 격차가 더 좁아지거나 역전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2050년까지의 논 면적 전망이나 그에 따른 생산량 전망 및 소비량 전망에 대해 정부는 “해당 자료 없음”이라고 회신했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백년지대계에 '10년짜리 전망'만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좀 어이없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중장기 수급 계획이라는 것이 당연히 있어야 되는 거고, 2035년은 앞으로 불과 8~9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 '그 이후로는 안 해봤다'는건 정말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쌀이 남아서 문제인 것도 큰 문제죠. 그런데, 사실 이는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입니다. 쌀은 필수품이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탄력성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이지 않습니까. 기후변화로 파종기나 수확기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나타나 생산량이 급감한다든지,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는 그런 상황도 고려를 해야 하는데, 어이가 없고, 걱정스럽습니다.
농지 문제는 사실, 논 농사의 논을 여러 가지 대체 작물로 갈고, 여러 가지 다른 용도로 바꿔놓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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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다시 논으로 돌리기엔 상당한 시간과 또 비용이 필요한 부분인데, 이런 부분들까지 고려를 해서 쌀 수급에 대한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죠.”
조승환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
농지가 지금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쌀 생산량은 줄어들 전망입니다. 기후변화로 쌀의 생육조건이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등숙기(벼가 여물어 익어가는 기간) 최적 온도는 22℃ 안팎입니다. 이를 넘어서게 되면 수량도 줄어들뿐더러, 품질 또한 떨어지죠. 적정 온도에서 자란 쌀과 고온 상태에서 자란 쌀을 비교해 보면, '좋은 쌀'을 의미하는 맑을 쌀의 비율에 있어 큰 차이가 나타납니다. 기온이 1℃ 오를 때마다 외관품질(맑은 쌀의 비율)은 2~3%씩 떨어졌고, 밥맛을 의미하는 식미치는 무려 6%씩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온 상승으로 상품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생산량도 줄어듭니다. 등숙기 기온이 최적 온도보다 1℃ 높아질 때마다 수량은 5%씩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고, .차 기온이 높아질수록 우리나라의 쌀 수량은 줄어들 전망입니다. 2040년대엔 2000년대 대비 13.6%, 2060년대엔 22.2%, 2090년대엔 40.1%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죠.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먹을 쌀이 부족해 하루 한 끼 정도는 국수 등 면류를 먹자고 했을 정도인 1970년대, 우리나라 농지에선 10a당 평균 370kg의 쌀이 생산됐습니다. 이후 품종 개량과 농법, 농기구의 발달 등 갖은 노력을 통해 지금처럼 '걱정 없이 밥 먹는 세상'이 찾아온 것이고요. 그런데, 이처럼 기후변화는 같은 면적의 땅에서도 생산되는 쌀의 양을 .차 줄여 2060년대엔 10a당 368kg으로 1970년대보다도 생산성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2090년대엔 10a당 283.3kg으로 더 줄어들게 되고요. 1970년대와 벼 재배면적이 동일하다 해도 쌀 생산량이 급감한다는 건데, 지금처럼 논이 사라지게 될 경우엔 전체 생산량은 더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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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시민들이 바쁜 일상 속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런 변화지만, 농민들은 이러한 식량안보의 위기가 이미 시작됐다고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 어디야, 저 수해를 입은 데가 네팔 아냐 네팔. 그런 현상이 이제 잦아져서 지구가 변해가는 거야. 이제 인간들은 다 이제 그렇게 되는 거야. 그걸 아셔야 돼. 이제 앞으로 약 없이는 농사도 못 짓고, 이게 문제가 많아 이제 농사 짓는데. 쌀 식량난은 조만간 와.”
오용석 경기 김포시 통진읍 농민
“쌀 소비량도 줄어들긴 하지만, 농민들의 농토도 이젠 많이 변해가고, 거기에 기후변화로 기후도 나빠지고, 논들이 이제 과수로 다 바뀌고 이런 현실이 많이 일어나고, 또 농촌의 현실이 노후화, 노령화가 되니까 이제 옛날에 젊었던 사람들이 다 그냥 노령화가 돼서 인력도 부족하고. 이제 쌀도 앞으론 도입(수입)을 해서 먹을 수 있는 이런 단계가 된다고 。. 가면. .. 쌀이 부족한 상태가 되는 그런 현실이 이제 많아지지.”
김종찬 경기 김포시 통진읍 농민
들어가는 땀과 노력은 많지만, 그에 비해 '지금의 가격'으론 선뜻 논농사에 뛰어들 젊은 농업인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가격을 적정하게 맞추겠다는 데에만 집중해 논을 줄여나가는 일은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부르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선진국들이 부가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조업의 기반을 해외 개도국으로 옮긴 일이 처음엔 국가 GDP의 성장에 도움이 됐지만, 이후엔 R&D는 할 수 있어도 직접 제 손으로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소비량의 감소가 더 빠를까, 기후변화와 논 감소의 콜라보로 인한 생산량의 감소가 더 빠를까. 소비량이 줄어든다고 생산역량을 줄여나가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효율적인 일일까. 이들 질문에 우리는 보다 더 장기적인 관。과 더욱 커지는 불확실성에 따른 극단적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신중히 답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한 번 잃은 생산역량을 회복하려면, 이를 없앨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더 큰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있고요. 수확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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