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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바다 여수 바다
ⓒ 송혜림
여수는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 처음 부모님이 삼 십년 넘게 살았던 대전에서 여수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땐 조금 슬펐다. 집이란 게 그렇다. 오래 살든 짧게 살든 삶과 추억이 담기기 때문일까. 이젠 고향의 이름을 달리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낯설기만 했다.
다만 바다가 주는 낭만은 보석보다 빛난다고 하던가. 처음 본가에 내려왔을 때 만난 여수의 바다는 막 저녁 노을을 품고 있었다. 따스한 금빛으로 반짝였고, 옅은 물 내음이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어부의 배는 바닷물에 넘실거리고, 수면 위로 튀어 오른 물고기는 작은 폭죽을 만들었다. 나는 첫 만남에 여수를 사랑하게 될 거란 걸 알았다.
여수는 여행지도 많지만 날 빠져들게 만든 건 '음식'이었다. 바다를 품은 덕에 온갖 해산물 요리가 식탁 위에 등장한다. 새콤달콤한 서대회무침, 깔끔한 하모 샤브샤브, 짭쪼름한 간장게장, 고소한 장어탕까지. 아무리 서울에 날고 기는 맛집이 몰렸다지만 전남 손맛 따라가랴!
완연한 가을이 왔다. 가을은 자고로 '먹보의 계절'이다. 사계절 중 먹거리가 가장 풍성한 계절이지만, 이를 시샘하는 겨울이 서둘러 찾아오는 탓에 마음껏 즐길 시간은 길지 않다. 여수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직접 다녀 온 여수 식당들을 정리해본다. 저렴한 가격에 풍족한 인심까지 빠짐없이 곁들인, 외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맛있는 여수 한 상이다.
[첫 번째 한 상] 통장어탕
▲ 자매식당 통장어탕 자매식당 통장어탕
ⓒ 송혜림
내가 여수에 내려갈 때마다 아버지는 새벽 일찍 통장어탕 한 봉다리를 포장해 오시곤 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이 힘들 때마다 통장어탕을 먹고 싶다고 칭얼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수에 내려간 날이면 우리 가족은 옹기종기 둘러앉아 개운한 장어탕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구운 장어보다 물에 담긴 장어가 더 맛나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 아버지의 마음이 한 국자 담겨 더욱 진해진 국물 덕이려나.
여수에서 가장 많이 간 식당을 꼽자면 이 곳 '자매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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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30분부터 문을 여는 이 식당은 통장어탕으로 정평이 나 있다. 통장어탕이란 장어를 갈지 않고 토막 낸 장어를 그대로 넣어 끓인 탕이다. 우거지나 시래기 등을 넣어 푹 끓인 덕에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통통한 장어살은 국물을 머금어 풍미가 깊고 매우 부드럽다. 이 곳에선 당신이 여태 알았던 장어란 식재료의 진면모를 맛볼 기회가 될 것이다.
자매식당
주소 : 전남광주 여수시 어항단지로 21
영업시간 : 6:30 ~ 20:00
[두 번째 한 상] 전어회
▲ 여수 우리마차 여수 우리마차
ⓒ 송혜림
▲ 여수 우리마차 여수 우리마차
ⓒ 송혜림
전남 밥상하면 떠오르는 건 풍족한 인심이 담긴 칠첩반상이다. 일찍이 단골로 。 찍은 '우리마차'는 서른 가지에 가까운 밑반찬으로 상다리가 부러진다. 전복과 소라, 새우, 옥수수, 술떡, 토마토, 영근조림 등. 각 계절에 따라, 사장님 선택따라 반찬 종류는 매번 모습을 달리한다. 물론 반찬을 집어 먹다 메인 요리는 남기는 실수는 하지 않기로 하자.
우리마차는 각 계절 별로 밥상 출연진이 달라진다. 봄은 도다리, 여름은 하모 샤브샤브, 가을은 전어, 겨울은 새조개가 메인 요리로 오른다. 그래서 봄엔 질리도록 도다리를 먹었고, 초가을 녁부턴 전어를 물리도록 먹었다.
▲ 여수 우리마차 여수 우리마차
ⓒ 송혜림
▲ 여수 우리마차 여수 우리마차
ⓒ 송혜림
가을엔 전어 사시미부터 전어 무침, 전어 구이까지 전어의 모든 매력을 담은 음식들을 만날 수 있다. 자고로 전어회는 한 웅큼 집어 쌈장을 발라 입가가 미어지도록 먹어야 한다. 살짝 꼿꼿하면서도 부드러운 살.에 젓가락이 멈추지 않는다. 잔가시는 오독하게 씹히고,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번진다. 이 날 만큼은 소주가 솔솔 들어가도 무죄다.
우리마차
주소 : 전남광주 여수시 소호1길 8-4
영업시간 : 12:00 - 21:00 (브레이크 타임 14:30 - 16:30)
[세 번째 한 상] 돼지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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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나진국밥 여수 나진국밥
ⓒ 송혜림
'나진국밥'은 일대에선 이미 유명한 돼지국밥 식당이다. 서울에도 지.이 있지만 여수 본。은 가게 외양부터 남다르다. 꾸며내지 않은 '찐' 노포이기 때문이다. 하루 。심 타임대 딱 5시간만 장사한다.
▲ 여수 나진국밥 여수 나진국밥
ⓒ 송혜림
철문을 열면 머리에 닿을 것 같은 낮은 천장은 물론 잔뜩 헤어진 문지방에 누구나 깜짝 놀란다. 마치 누군가 오래 거주한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것처럼 친숙한 올드함이 가득하다. 벽마다 빽빽하게 붙여진 유명인 싸인과 붓글씨는 나진국밥의 유명세를 증명한다. 노트를 뜯어서 만든 메뉴판에는 '국밥 일만원'이라고 적혀 있다. 소주·맥주 가격도 착한 3000원이다.
▲ 여수 나진국밥 여수 나진국밥
ⓒ 송혜림
돼지국밥은 콩나물과 돼지고기가 아낌없이 팍팍 들어가 있고 적당히 얼큰해 해장용으로 딱이다. 여기에 갈리지 않는 통후추가 들어가 있어 오독오독 씹히는 재미까지 있다. 국밥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여기선 밥그릇 바닥까지 드륵드륵 긁어 먹는다.
나진국밥
주소 : 전남광주 여수시 화양면 화양로 1391 나진국밥
영업시간 : 9:00~14:00(화, 수 정기휴무)
[네 번째 한 상] 하모 샤브샤브
▲ 하모 샤브샤브 하모 샤브샤브
ⓒ 송혜림
하모(참장어) 샤브샤브는 바닷가 쪽에 나와야 비로소 구경할 수 있는 진귀한 음식이다. 다만 한 번 맛보면 그 깔끔한 담백함에 누구나 반하고 만다. 통유리 창으로 맑은 바다가 탁 트인 '하얀집'은 하모 샤브샤브 전문.이다. 갓김치, 약밥, 방풍장아찌, 도토리묵 등 역시 밑반찬부터 가짓수가 다양하다.
파프리카와 대파, 양파를 듬뿍 넣은 육수는 처음엔 슴슴하고 담백하다. 그러나 팔팔 끓는 육수에 하모를 5초 정도 담갔다가 빼면 그 부드러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알싸한 양파와 쌈장까지 올리면 감칠맛은 배가 된다. 육수도 장어에서 우러난 진한 풍미와 채소의 단맛까지 더해져 。。 달큰해진다. 바다 위에서 즐기는 하모 샤브샤브의 진미는 짧은 가을을 더욱 깊어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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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집
주소 : 전남광주 여수시 남산남1길 27-1 하얀집
영업시간 : 11:00~21:30
[다섯 번째 한 상] 간장게장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간장게장을 정말 좋아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위해 가을이 오면 저 먼 여수에서 간장게장 한 박스 씩 주문해놓곤 했다. 그럼 나는 저녁 식사 때마다 입술이 통통하게 붓도록 짭쪼름한 소스에 밥을 말아 게살을 양껏 비벼 먹곤 했다.
주황빛 내장이 가득한 게딱지는 늘 아버지 몫이었다. 내장을 징그러워하던 나는 아버지가 인기 없는 부위를 맡아 드시는 줄만 알았다. 몇 년 뒤에야 알았다.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게 진짜 별미라는 것을. 아버지도 다 계획이 있으셨다!
▲ 여수 길언니 여수 길언니
ⓒ 송혜림
'길언니'는 간장게장 정식부터 새우장, 보쌈, 양념게장 등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는 게장 전문.이다. 보통 혼자 여행가면 2인 이상 주문 가능 메뉴는 포기해야 하는데 1인 정식을 판매하기 때문에 당당히 입장할 수 있다.
▲ 여수 길언니 여수 길언니
ⓒ 송혜림
가을 이 맘 때쯤 가면 간장 게장의 속살이 꽉 차 있다. 바다 향이 감도는 녹진한 내장도 아낌없이 들어차 있다. 날치알과 반숙이 올려진 밥에 게살을 쓱쓱 비벼 먹으면 입 짧은 나도 두 공기는 금세 비운다. 제철 음식은 역시 '제철'에 먹어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길언니는 .심 시간대 반짝 장사하니 저녁에 방문하는 실수가 없길 바란다.
길언니
주소 : 전남광주 여수시 이순신광장로 189
영업시간 : 11:00~15:00(목 정기휴무)
▲ 여수 바다 여수 바다
ⓒ 송혜림
그저 낯설기만 했던 두 번째 고향. 그러나 이제는 서울에서 지친 날이면 여수의 밥상부터 떠올린다. 아버지가 포장해 온 장어탕과 어머니가 주문해주던 간장게장. 여수는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맛으로 조금씩 고향이 되었다.
선선한 가을,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면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실어보면 어떨까. 창밖으로 물드는 단풍을 구경하다 여수에 닿으면, 바다를 품은 한 상이 기다리고 있다. 맛 따라 멋 따라 여수 여행은 어떠신지.
homa, 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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