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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1-01 12:40 조회 21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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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시민/줄리언 바지니/김민하 옮김/인문식당/3만3000원
초콜릿 한 조각의 가격보다 카카오를 재배한 농부의 하루 품삯이 적다면 어떨까. 유럽의 소비자는 달콤한 초콜릿을 즐기지만, 원료를 생산한 아프리카 농부들은 하루 1달러 남짓을 버는 현실이 벌어진다. 음식은 누구에게나 생존의 필수품이지만,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영국의 대중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가 쓴 ‘음식 시민’은 우리가 무심코 먹는 음식 뒤에 감춰진 노동 착취와 동물의 고통, 환경 파괴를 들춰낸다. 무엇을 먹느냐를 넘어 그 선택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묻는다.
영국 식품윤리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저자는 오늘날 글로벌 식량 시스템은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 인구 증가, 식량 불평등이 맞물린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며, 이를 ‘퍼펙트 스톰’이라고 부른다.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한 접근으로는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을 생산하고 누가 이익을 얻으며,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되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추상적인 이론에 머물지 않는다. 아프리카 마사이족과 하자족, 북극 이누이트족의 삶에서 네덜란드의 첨단 농업, 국제우주정거장의 식단까지 세계 곳곳의 사례를 종횡무진 오간다. 20명 이상의 전문가 인터뷰와 국제기구 보고서 등을 토대로 식량의 생산·유통·소비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대목은 농업의 발전이 반드시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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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약 1만1000년 전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의 전환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표현했다. 농경은 안정적인 식량 생산과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했지만, 노동 부담과 계층화, 질병의 위험을 키우기도 했다. 농업의 시작을 인류의 실수라고 성급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문명의 발전이라는 성과만으로 그 과정에서 치른 대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생산량을 늘리려는 집약농업도 양면성을 지닌다.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데 기여하지만 토양과 물, 생물 다양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필요하지만 환경을 훼손하면서까지 산출량만 늘리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생산 효율과 환경 보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식량 산업의 이면에 놓인 노동 착취는 더욱 날카롭게 다뤄진다. 카카오 농부가 생산한 원료는 세계 시장을 거쳐 고급 초콜릿과 가공식품으로 팔리지만, 소비자가 지불한 돈이 생산자에게 공정하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저자는 노예무역이 폐지된 뒤에도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물을 만들어 수출하는 구조가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식품 기업은 비용을 줄이고 소비자는 저렴한 먹거리를 얻지만, 생산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불균형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수입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소비하는 우리나라 역시 글로벌 공급망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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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의 노동 조건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가격표만 보고 구매하면 그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놓치기 쉽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생산자의 노동과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물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진다. 공장식 축산은 적은 비용으로 많은 고기를 공급하지만, 생산성과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동물을 생산 수단으로 취급하기 쉽다. 저자는 19세기 철학자 제러미 벤담의 질문을 빌려 동물 윤리의 핵심을 짚는다. 동물이 인간처럼 이성적으로 사고하거나 말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음식을 영양소의 성분이나 열량, 몸을 움직이는 연료로만 바라보는 ‘영양 환원주의’도 비판한다. 저자는 대체식품 ‘소일렌트’와 우주 식량을 사례로 든다. 필요한 영양소를 계산해 간편하게 섭취하는 방식은 효율적이다. 특히 신선식품과 조리 시설이 제한된 우주에서는 영양 공급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음식에는 영양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맛과 향, 식감은 물론 함께 먹는 사람들과의 관계, 음식에 얽힌 기억과 문화도 식사의 일부다. 영양 성분을 충족했다고 좋은 식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식량 시스템의 또 다른 모순을 드러낸다. 세계 곳곳에서 기아와 영양 부족이 이어지는 가운데 상당량의 음식이 소비되지 않은 채 버려진다. 유엔환경계획은 음식물 손실과 낭비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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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음식뿐 아니라 이를 생산하고 운송하는 데 쓰인 토지와 물, 에너지도 낭비되는 셈이다. 더 많이 생산하는 것만큼 이미 생산한 음식을 제대로 활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저자는 대안으로 전체성·순환성·다양성·식품 중심·지략·자비·형평성이라는 7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고 자원을 순환시키며, 다양한 생태계와 문화를 존중하고, 동물의 고통을 줄이며 식량 생산과 소비의 혜택을 공정하게 나누자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실천에서 발견한 지혜를 식량 문제 해결의 원칙으로 정리한 셈이다.
완벽한 식단이나 엄격한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도 눈길을 끈다. 육식을 완전히 끊거나 모든 식재료를 유기농으로 바꾸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식재료를 낭비하지 않는 일, 생산 과정과 노동 조건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개인의 선택만으로 거대한 식량 산업을 바꿀 수는 없지만, 소비자의 요구는 기업의 생산 방식과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더 나은 선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콜릿 한 조각에서 세계의 노동 구조를 읽고, 버려지는 음식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식탁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 저자는 “완벽한 식탁은 없지만, 더 나은 식탁은 존재한다”며 “음식은 허기를 달래는 연료나 혀끝의 쾌락을 위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인류가 세계와 관계를 맺어온 가장 본질적이고 오래된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매일 반복하는 식사를 통해 우리가 세계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그 관계를 조금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진다. 카카오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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