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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존버’라는 말을 쓴다. 끝까지 버티면 언젠가 이긴다는 뜻이다. 주가가 떨어져도, 회사가 힘들어도, 관계가 무너져도 존버를 외친다. 견디는 힘은 귀하다. 그러나 버텨서 망하는 자리가 있다. 말씀 앞이다.
구약성경 속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그랬다.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이다. 그는 11년을 다스리는 동안 선지자 예레미야를 몰래 불러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고 묻고 기도도 부탁했다. 그러나 묻는 것과 따르는 것은 달랐다. 끝내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성경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고 한다.(왕하 24:20) 진노라 하면 벼락 같은 심판을 떠올리지만 더 무서운 진노가 있다. 죄를 짓는 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롬 1:24)
결국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쌌다. 성전이 있으니 이 성만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던 곳이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성이 있다. 통장일 수도, 자녀일 수도, 내 실력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단번에 무너뜨리지 않으시고 바벨론에 항복하면 왕과 가족이 살리라고 다시 말씀하셨다.(렘 38:17) 바벨론이 옳아서가 아니다. 유다를 깨우시려고 하나님이 드신 매였기 때문이다. 항복은 내 생각을 꺾고 말씀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노 중에 열어 두신 살길이었다.
그러나 왕은 먼저 항복한 이들에게 조롱당할까 두려워 끝내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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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성안의 양식이 떨어졌다. 내가 버티는 동안 사랑과 말씀에 굶는 것은 내 식구다. 말씀 앞에서 버틴 것은 믿음이 아니라 내가 옳다는 고집이다. 한 성도의 이야기다. 그는 답답한 현실을 피하듯 아내와 엄마의 자리보다 일을 앞세우며 살았다. 그러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 한 마디가 천둥처럼 들려 지금의 교회에 온 지 22년이 됐다. 그러나 성공을 좇는 마음은 좀처럼 버려지지 않았다.
남편과는 그 세월 내내 같은 말씀 앞에 서지 못했다. 남편은 아내가 달라진 게 없다며 함께 가지 않았고 다투기 싫었던 그는 어느새 권하기를 멈췄다. ‘남편도 믿는 사람이니 구원은 받았겠지.’ 그는 그것이 한 영혼을 내버려둔 안일함이었다고 고백한다. 작년 말 찬송을 부르다 눈물의 기도가 터져 나왔다. “제 생명을 가져가셔서라도 남편과 자녀들을 구원해주세요.”
올해 그는 평생 몸담은 대학에서 정년퇴직하자마자 재취업을 했다. 새 직장에 충성할수록 예배는 뒷전이 됐고 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받게 됐다. 그는 우울증이라는 바벨론에 포위되고서야 일 중독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예배를 회복하려 얼마 전 사직서를 냈다. 스스로 ‘바벨론에 항복하는 사직서’라 불렀다. 그사이 교회를 떠났던 딸이 돌아와 이제 말씀이 들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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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딸이 교회에서 믿음의 배우자와 결혼하면 자신도 나오겠다고 했다. 그의 고백이다. “성공을 의지하던 저를 우울증이라는 포위를 통해 구원으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성벽이 뚫리자 시드기야는 밤에 왕의 동산 쪽 뒷문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곧 붙잡혀 두 눈이 뽑힌 채 끌려갔다.(왕하 25:4~7) 우리도 막다른 길에 몰리면 말씀 앞에 서기보다 뒷문부터 찾는다. 그 성도에게는 일이 뒷문이었다. 600여년 뒤, 또 한 왕이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계셨다. 예수님은 잡으러 온 무리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나아가 “내가 그니라” 하셨다.(요 18:4~5) 시드기야는 자기 죄로 끌려갔지만 예수님은 우리 허물 때문에 끌려가셨다.(사 53:8) 우리가 받을 진노를 대신 받으셨기에 그분 안에서 만나는 포위는 멸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살리시려는 것이다.
25일은 한국교회에서 종교개혁 509년을 기념하는 주일로 드려졌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95개 논제 첫 조항에서 신자의 전 생애가 회개여야 한다고 했다. 개혁은 자기 힘으로 버티던 자리에서 하나님께 항복하는 데서 시작된다. 항복이란 시드기야의 이름처럼 “하나님이 옳으십니다” 하고 두 손을 드는 것이다. 지금 나를 에워싼 포위는 무엇인가. 뒷문을 찾지 말자. 포위된 시간은 버티라고 주신 시간이 아니라 항복하라고 주신 시간이다. 존버의 시대에 성경은 거꾸로 말한다. 항복해야 산다.
몸담은 대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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