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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9월 1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연계 '맛 대 맛'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 '일반시국은' 글씨가 보인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1일 사의를 표명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다. 일단 다행한 일이다. 전날(20일) 술자리를 함께한 출판사 대표, 기관 연구원 등의 분노는 대단했다. 우리끼리 유홍준 관장 사퇴 요구 서명 운동이라도 시작하자고 의기투합하며 팔뚝들을 걷어붙였다. 그런데 다행히 사퇴 소식이 들리니 일단 나오는 것이 안도의 한숨이다.
하지만 벌어진 일들을 돌이켜보자면 또 한 번 땅이 꺼지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박원근'이라는 이가 썼다는 "밥 한 그릇도 나라의 은혜"라는 휘호가 나왔고 독립운동가 박원근(1912~1950) 선생의 것으로 소개됐다. 박원근 선생의 가족이 그 휘호 앞에서 아버지가 살아온 듯하다며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흘렸는데, 이게 이름(초명이라고도 하고 자字라고도 한다)을 똑같이 원근(源根)이라 썼으나 독립운동과는 백만천만 리 떨어진 삶을 살았던 친일파 박중양(1874~1959)의 글씨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부랴부랴 조사가 진행된 결과 글씨의 임자는 박중양으로 밝혀졌고 유홍준 관장은 허리 굽혀 사죄하게 된다. 그게 지난 8월부터 9월 초까지 벌어진 일이다.
박중양은 누구?
그래서 갑자기 박중양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졌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박중양이라는 사람은 나쁜 쪽으로 걸물이었다. 그는 신념의 친일파, 의지의 매국노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김옥균 등 개화파를 구국의 영웅으로 숭상했던 박중양은 암살된 뒤 국내로 들어온 김옥균의 시신을 토막 내 조리돌림하는 임금과 조정에 학을 뗐다.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가서 교류한 후쿠자와 유키치와도 죽이 잘 맞았을 것이다. 김옥균의 죽음 이후 조선을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만국이라고 일갈했던 사람이니 말이다. 귀국해서 관직을 지낼 때 경술국치를 맞지만 박중양에게는 이미 국치(國恥)가 아니었다.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는 망해도 싸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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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이 벌어지자 '자제단'을 조직하여 운동의 확산을 막고자 분주했다. "국민이 독립 생활의 능력이 없으면 국가가 부강할 도리가 없다." 즉, 그가 보기에 만세 군중은 쥐뿔도 없는 것들의 집단 최면에 불과했다. 약육강식의 국제 사회에서 조선 사람같이 "사기와 거짓말에 능하며 사람 봐 가면서 뒤통수를 치는 것과 도벽과 허세가 심한" 사람들은 신의 있고 성실하며 힘 있는 일본인들의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이건 박중양과 일본인들이 '조센징'에게 붙인 딱지지만, 수십 년 동안 호남 사람들이 받아온 누명이기도 하다).
해방 뒤에도 박중양은 그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들이 잘나서 독립이 된 것이 아니라 미군이 일본을 쳐서 우연히 독립된 것이며, 미국과 일본이 전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독립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의 약을 바싹 올리는 건 기본이었다(이 논리 어디서 많이 본 것이지 않은가).
오죽하면 조지훈의 수필 <지조론>에서 이렇게 묘사될까.
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 누가 박중양(朴重陽), 문명기(文明琦) 등 허다한 친일파를 변절자라고 욕했는가. 그 사람들은 변절의 비난을 받기 이하의 더러운 친일파로 타기(唾棄)되기는 하였지만 변절자는 아니다.
이건 칭찬이 아니었다. '원래 그런 놈'이 '끝까지 그러니' 지조 없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런 사람의 글씨가 독립 투사의 글씨로 둔갑해 그 후손의 눈물까지 끌어냈으니 얼마나 황망한 일인가.
분노하는 이들에게 기름 끼얹은 것은
▲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자신의 소장품 전시 논란에 대해 "철저하지 못한 고증으로 친일파의 글씨가 애국지사의 유묵으로 잘못 전시돼 국민 여러분과 역사 앞에 큰 심려를 끼쳤다"라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유성호
참으로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그것까지는 사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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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와 착오가 왜 없겠는가. 턱없는 사람의 글씨 앞에서 아버지를 그리며 오열한 독립투사의 후손들에게는 머리를 들 수 없는 일이나 '백배사죄'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국정감사를 앞두고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이 글씨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개인 소장품이고 그의 추천으로 전시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하여 이 휘호는 유홍준 관장이 어느 경매에서 단돈 5만 원을 주고 낙찰받은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진다.
박물관 관계자가 박물관이 주관하는 공식 전시회에 개인 소장품을 내거는 데에는 매우 엄격한 검증과 이해충돌 방지 절차가 필요하다. 이해충돌을 관리하고, 작품의 진위와 출처를 독립적으로 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장자의 의지를 넘어 객관적인 인사의 추천을 받고, 복수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쳐서 허용되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유홍준 관장은 신묘한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선보였다. 자신의 소장품을 자신이 추천하고, "서예사를 전공했다"는 자신의 판단으로 휘호를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회에 내건 것이다. 물론 박물관 실무진의 검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관장의 확신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건 국가가 인증했다는 거잖아. 그럼 그 가치가 수직 상승하는 거잖아. 대체 저 분의 욕심이 어디까지 갔던 건지 모르겠어."
출판사 사장님의 분노였다. 실제로 유홍준 관장이 재산 증식을 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로 그런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개인 소장품의 전시에는 엄격한 절차가 필요했다. 이 당연한 절차의 결여에 분노하는 이들에게 기름을 끼얹은 것은 다름 아닌 유홍준 관장의 '의지와 신념의' 발뺌이었다.
자신의 소장품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은 "내 개인 자랑이 될까 봐서"였다고 하더니 전시를 통한 가치 상승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냐는 추궁에는 자신은 유물을 다수 부여문화원에 기증해 온 사람이며, 그걸 부인 몰래 기증했기에 집에 들어가면 '가정 감사'를 받게 될 것 같다고 말할 때는 지켜보던 눈에서 불길이 나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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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는 질문에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 대목에서 난 "관직을 사퇴하고 도피하는 것은 무책임한 자의 행동이다"라고 우겼던 박중양이 떠올랐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시대의 경향을 창조했고,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린 그의 공은 넉넉히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합당하지 않음을 넘어 부당한 일을 저질러 놓고도 자리에 연연하는 듯한 모습에서 깊은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친일파의 필치임을 알았을 때 후손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러니 지인들과의 성토 대회(?) 분기가 가시지 않은 아침, 그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에 얼마나 큰 안도감을 느꼈겠는가. 천만다행히도 유홍준 전 관장은 온갖 추한 모습으로 맷집 자랑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관장들의 '신념과 의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이제 훌훌 자리 털고 물러나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기 바란다. 그가 인용했던 정조 때 사람 유한준의 말을 되새겨 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그러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면 잘못 알게 되고, 잘못 알면 전혀 다른 것이 보이게 되는 이치 또한 유홍준 전 관장에게서 배운다. 힘이 남았을 때 답사도 다니고, 사람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들려주시면서 세월을 엮어 가시기 바란다. 그럴 때, 그런 자리에서 그분은 가장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야기를 끝내려다보니 "아버지가 살아돌아오신 것 같다"라며 눈물을 흘린 독립운동가의 유족이 새삼 마음을 건드린다. 휘호의 주인으로 오해받았던 독립운동가 박원근은 해방 후 좌익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전력을 회개하고 대한민국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는" 보도연맹에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터지고 전선이 붕괴하는 가운데 후퇴하는 한국 공권력의 손에 무참하게 죽음을 당한다.
문제가 된 휘호의 내용은 "밥 한 그릇도 나라의 은혜다"였는데, 나라를 되찾고자 청춘을 바친 독립운동가는 나라의 손에 죽었다. 그 일을 아는 후손의 눈에 그 글귀는 어떻게 보였고, 아버지의 것도 아닌 친일파의 필치임을 알았을 때 그 마음은 또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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