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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03 12:03 조회 329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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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개 손을 뒤로 해 수갑이 채워질 때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수잔 서랜든처럼 체포 전력이 많은 데다 나이가 80쯤 되면 그런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구타나 성적 학대 등에 대한)을 조정해 낼 수 있다. 지난 9월 24일 체포 때의 수잔 서랜든은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체념해서 오히려 편안한 표정의 얼굴이었다. 1946년생인 만큼 이제 수잔 서랜든을 아름답다거나 여전히 섹시하다거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쏘리 수잔) 이상하게도 이 ‘노친네’, 수갑 찰 때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1999년부터 2026년까지 이번이 통산 다섯 번째 체포이다. 대체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때문인 듯 보이지만 정확하게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민자 총격 사망 시위(1999)에 참여해 연좌시위를 벌이다 처음으로 체포됐고 트럼프 1기 때는 이민자 정책 반대 시위(2018), 바이든 정부 때는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2020) 때문이었다. 2023년에는 특이하게도 식당 팁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 페어 웨이지(One Fair Wage)’ 시위 때 뉴욕주 정부 의사당에 침입한 현장범으로 수갑을 찼다.
지난 9월 24일에는 뉴욕 UN 본부 앞에서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UN 연설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했다. 그녀의 흰색 티셔츠 가슴에는 ‘(팔레스타인에) 폭탄 말고 펀드를’이라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쟁 반대(No War!)’나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Palestine)’이 적힌 옷을 입었다. 미국의 이스라엘 무기 지원에 반대하며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민간인 학살과 군사적 공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무장 정파 하마스가 실권을 잡고 있는 가자지구의 초토화작전으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낸 네타냐후 정권은 한편으로는 국제 세계와의 약속을 깨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이스라엘인들의 정착촌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거의 전쟁에 가까운 폭력 사태를 일으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 (이 얘기는 2025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탄 <노 어더 랜드>에 잘 담겨 있다) 특이한 것은 이번 시위의 주체가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란 단체였다는 .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인간이 다 나쁜 건 아니며 거기에도 반 네타냐후파가 있고 진보적인 유대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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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수잔 서랜든은 체포 하루 만에 훈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경찰 당국도 수잔 서랜든 같은 거물급 배우를 계속 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대신 수잔 서랜든의 감옥은 할리우드로 보인다. 그녀는 오랫동안 ‘친 팔레스타인, 반 이스라엘’ 배우로 유명했으며 유대인들이 경제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장악한 할리우드에서 캐스팅 제외 등의 불이익을 당해 왔다. 2023년 11월 뉴욕 시위 때의 연설로 그녀는 할리우드에서 영구 차단됐다. 소속사 UTA(United Talent Agency)가 계약을 일방 해지했다. 그러나 수잔 서랜든은 자신이 고령으로 접어드는 배우인 만큼 그런 걸 별반 개의치 않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자 지구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이때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폭격했다) 배우로서의 운명을 예고했던 듯 작고 독립적인, 무엇보다 탈 할리우드 제작의 영화에 출연해 왔다.
영국 감독(사실은 남아공 출신)으로 <노팅 힐>로 유명한 로저 미첼의 2020년 영화 <완벽한 가족(Blackbird)>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마치 지금의 미국이 지나치게 보수화됐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려는 듯, 1960~70년대 히피문화를 그리워하는 노년의 엄마로 나온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죽어 가고 있으며 남편(샘 닐), 두 딸(케이트 윈슬렛, 미아 바시코프스카)과 합의해 스스로 존엄사를 준비 중이다. 수잔 서랜든은 늘 사회적으로 한발 앞서는 이슈를 주제로 하는 영화에 이처럼 ‘발 벗고’ 출연해 왔다. 수잔 서랜든이 2025년에 넷플릭스 영화 <논나>에 출연한 건 이 OTT 회사가 이스라엘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정치적 지형도보다 광활한 자신의 플랫폼 안에 채워야 할 작품 편수가 더 중요한 회사다. <논나>에서 수잔 서랜든은 이탈리아계 노년 여성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논나’는 이탈리아 가정식 손맛을 지닌 할머니 셰프들을 말한다.
수잔 서랜든의 대표작으로 다들 <록키 호러 픽쳐 쇼>(1973)와 <델마와 루이스>(1993), <데드 맨 워킹>(1995) 등을 뽑을 것이다. 재미없다. 영화광이라면 다음 세 편을 꼽을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아틀란틱 시티>(1980)이고 또 하나는 <하얀 궁전>(1991)이며 마지막 하나는 <엘리자베스타운>(200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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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편 모두 기이한 ‘터치감’이 있는 영화들이다.
뉴욕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는 카지노가 많다. 카지노 도시하면 라스베이거스를 떠올리지만 거기는 사막 한가운데에 ‘심하게’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고 그와 다르게 해안에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 애틀랜틱시티의 카지노이다. 영화 <아틀란틱 시티>는 그 유명한 프랑스 감독 루이 말(<데미지>)이 만든 것으로 34세 리즈 시절의 수잔 서랜든이 나온다. 그녀의 상대역은,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진 전설의 명우(名優) 버트 랭카스터였다. 카지노 딜러를 꿈꾸는 젊은 여자와 한때 갱단에 몸담았지만, 지금은 퇴락한 늙은 남자의 이상한 연애를 그린다. 약간은 필름 누아르다. 여자는 레몬즙으로 몸을 닦을 만큼 언젠가는 ‘이 판’에서 성공하겠다는 욕망이 강한 인물이다. 여자는 늙은 잡범 갱과 사건에 연루되고 갱단의 돈을 가로챈 남자와 도주하지만 결국 늙은 남자에게서 돈을 훔쳐 파리로 달아난다. 남자는 젊은 여자의 욕망을 이해한다. 그녀를 모른 채 보내준다. 루이 말답게 영화의 결말은 꽤 냉소적이다.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가 엮어가는 잠깐의 로맨스가 쓸쓸하다. 애틀랜틱시티 역시 남자처럼 낡고 쇠퇴하는 중이다. 이 영화를 보면 수잔 서랜든이 젊은 시절 진정 미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얀 궁전>은 화이트칼라 연하남과 블루칼라 연상녀의 러브스토리다. 멕시코 출신 감독 루이스 만도키가 만들었고 제임스 스페이더가 머리가 빠지기 전 젊었을 때 나온 영화다. 영화 속에서 남자는 27살의 성공한 건축 설계사이고 여자는 43살의 식당 웨이트리스다. 실제로 수잔 서랜든과 제임스 스페이더(1960년생)의 나이 차이는 14살이다. 이 영화야말로 모든 연하남-연상녀 커플의 로망 같은 작품이었지만 계급적 결합을 그린다는 면에서 강한 연민과 애환, 쓸쓸함이 느껴졌던 작품이다. 오솔길을 걸으면서 남자가 여자의 운동화 끈을 묶어 주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이후 많은 영화가 이 장면을 베꼈는데 그중 하나가 김대승 감독의 <번지 .프를 하다>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베드씬이다. 수잔 서랜든은 이 영화에서 과감한 노출씬을 보여 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찔한 섹스씬을 선사한다. 올드팬들이라면 그때의 수잔 서랜든 몸매와 이번 뉴욕 시위에서 체포당할 때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씁쓸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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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맥과이어>와 <올모스트 페이머스>를 만든 카메론 크로우의 영화 <엘리자베스타운>에서도 수잔 서랜든은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사업 실패로 자살을 결심하던 디자이너 남자(올랜도 블룸)는 엄마(수잔 서랜든)로부터 아버지가 고향에 혼자 갔다가 급사했으니 그쪽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는다. 장소는 엘리자베스타운이다. 켄터키 어디 시골 마을인데 알 수가 없다. 엄마는 부부가 살던 오리건주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켄터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남자는 스튜어디스(커스틴 던스트)로부터 길 안내를 받는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손 지도를 그려주는데 엘리자베스타운으로 가려면 국도에서 ‘엑시트 60B’로 꼭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꼭! 꼭! 꼭! 이라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한다. 그러나 남자는 이 엑시트를 잠깐, 아차 하는 사이에 휙 지나간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제 길에 들어서서도 다시 한번 휙, 또 한 번 휙휙 지나간다. 영화는 남자가 엑시트를 순간적으로 지나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도(특히 젊을 때) 늘 휙 놓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장면, 나름 명장면이다.
온갖 군데를 헤매다 간신히 도착한 엘리자베스타운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것은 엄마의 스피치다. 그런데 웬걸 엄마는 보수적인 아버지 집안사람들 앞에서 남편과의 섹스라이프를 잔뜩 늘어놓지를 않나, 탭 댄스를 추지를 않나 기괴하지만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사랑했던 남편을 겉으로나마 웃으면서 보내려는 태도다. 이런 리버럴리스트의 모습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 수잔 서랜든 만한 사람이 없다. 수잔 서랜든이 59세 때였다. 이 영화 이후 서랜든은 주로 엄마와 할머니, 노년 역으로 눌러앉았다.
수잔 서랜든은 12살 아래의 팀 로빈스와 오래 살았다. 1988년 작인 <19번째 남자(Bull Durham)>에 출연하면서 만나 (제작 기간 포함) 2009년까지 23년을 살았고 아들 둘도 낳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이른바 사실혼 관계로 살다가 일종의 황혼이혼을 했다. 수잔 서랜든의 출세작 <데드 맨 워킹>의 감독이 팀 로빈스였다. 팀 로빈스도 팔레스타인 옹호 등 정치적 발언으로 영화 출연이 막혀 있는 상태다. 수잔 서랜든은 여배우 열전 목록에 당연히 올라야 하는 인물이다. 여배우는 늙거나 젊거나 여배우이기 때문이다. 수잔 서랜든은 할리우드의 수전 손택 같은 여배우다. 지적이고 행동가 적이라는 얘기이다. 이제 말년으로 가고 있는 나이이다. 건강하게 세계 팬들, 그녀의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지지하는 많은 팬들과 오래오래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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