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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7회 작성일 26-11-0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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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사이로 가을이 왔다. 동네가 온통 울긋불긋 물들었으니 산이나 공원은 오죽 예쁠까. 이맘때면 생각나는 것이 가을 소풍, 그리고 김밥이다.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는 평소보다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 김밥 재료를 준비하셨다. 김밥 단면의 재료를 하나씩 보며 먹으면 채소 색이 가을 풍경만큼 다채로워 입맛이 절로 돌았다. 자식 사랑이 담긴 엄마의 김밥에는 시금치, 당근, 단무지처럼 '잘 먹었으면' 하는 채소가 꼼꼼히 올라가 빈틈없이 돌돌 말렸다. 그 위에 참기름을 바르고 깨소금까지 뿌려 도시락에 꾹꾹 채우면, 흰 구름 위에 무지개가 펼쳐진 것 같았다. 김밥이 왜 이제야 K-푸드로 알려졌나 싶을 만큼 말이다. 좋아하는 재료 하나, 먹었으면 하는 재료 하나 요즘 소풍 김밥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캐릭터 김밥, 햄이나 달걀만 들어간 김밥이 늘면서 알록달록한 채소는 대개 찾아보기 힘들다. 유치원 소풍 날에도 아이들 도시락 김밥에는 채소가 거의 없을 때가 많다. 햄, 어묵, 단무지로 채운 김밥을 보며 부모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채소 든 김밥을 안 먹고 배가 고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고민 끝에 아이가 확실히 먹을 재료로만 쌌을 것이다. 나도 같은 고민을 하는 두 아이의 엄마라 그 마음을 잘 안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만큼 밥은 중요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보약 같은 음식이다. 간을 한 밥에 무엇이든 싸 먹으면 맛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소풍 날에는 자연의 바람과 풍경,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는 즐거움, 꼬르륵 소리 나는 배고픔이 더해진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이날만큼은 김밥에 무엇이 들어가도 꿀맛이다. 그러니 소풍 김밥이야말로 채소를 넣어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얼마 전 유치원 요리 수업에서 아이들과 당근라페 김밥을 만들었다. 당근라페는 채 썬 당근을 식초와 올리브유에 버무려 절인 샐러드다. 이번에는 아이들 입맛에 맞게 레몬즙과 소금, 설탕을 더했다. 수업 전에는 걱정이 많았다. '아이들이 밥을 잘 펼칠 수 있을까?', '새콤한 맛을 싫어하면 어쩌지?' 재료는 단무지, 달걀지단, 당근라페 딱 세 가지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묵과 소시지는 일부러 뺐다. 재료가 단순할수록 당근 맛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까만 김 위에 밥을 숟가락 바닥으로 쭉쭉 펼치고 배운 대로 돌돌 말았다. 우리가 처음 김밥을 쌀 때보다 훨씬 잘하는 것이 아닌가. ▲ 당근라페김밥 요리 수업에서 유치원 아이들과 당근라페김밥을 만들었다. 꼬마김밥을 세 개나 먹고도 "더 먹고 싶어요"라며 나를 당황하게 했다. ⓒ 문혜진 "아삭아삭해요." "새콤달콤해요." "그냥 식초 냄새 나는데요?" 아이들은 재잘재잘 떠들며 꼬마김밥 세 개를 뚝딱 먹었다. 앞서 한 걱정 때문에 수업을 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마찬가지로 부모의 걱정 때문에 꼭 넣어야 할 재료를 빼 버린다면, 아이는 먹어 볼 기회조차 놓칠 수 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잘 먹고, 이겨낸다. 우리 집 큰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 내가 싸 준 김밥을 정말 잘 먹었다. 편식이 있는지도 모를 만큼 말이다. 유행하는 캐릭터 도시락도, 예쁜 모양의 도시락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표 김밥이었다. "우리 엄마가 싸 준 거예요." 선생님 귀가 따갑도록 세 번이나 자랑했다고 한다. 평소 아이와 꼬마김밥을 종종 만들었는데, 그것이 김밥을 잘 먹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나는 김밥에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를 꼭 넣고, 먹었으면 하는 재료도 하나는 꼭 넣는다. 입이 짧은 둘째에게는 좋아하는 단무지와 달걀에 오이나 당근 하나를 더해 딱 세 가지만 넣기도 한다. 그러면 한번 먹어 보고는 곧잘 먹는다. 무엇을 넣어도 어우러지는 음식 나는 여행지에서 그 지역의 유명한 김밥을 찾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제주도의 전복김밥, 통영의 충무김밥, 거제도의 톳김밥을 먹다 보면 김밥만 봐도 그 지역 대표 식재료를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김밥은 어떤 재료를 넣어도 잘 어우러진다. 어느 재료 하나 튀지 않게 밥이 감싸 주니, 넣는 재료마다 영양이 된다. 달걀, 참치, 소고기는 자라는 아이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채워 준다. 농촌진흥청 농사로의 영상 <김밥의 영양학적 가치>에 따르면, 당근은 비타민 A를, 시금치와 오이는 칼륨을 공급하고, 김에도 단백질과 칼슘, 철, 비타민이 들어 있다. 밥도 한 공기 가까이 들어가니 한 줄만 먹어도 든든하다. 한입 크기에도 여러 재료가 가득 들어 있어, 입맛 없는 아이에게 한 끼를 챙겨 주기 좋은 메뉴다. 다만 나트륨 섭취가 많아질 수 있으니 라면과 함께 먹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주변의 한 엄마가 아이들이 김밥을 먹고 싶다고 해서 3시간이 걸려 김밥을 쌌다는 이야기를 했다. 평소 요리를 즐기지 않아 서툰 솜씨로 고군분투하며 아이들 식사를 챙기는 사람이었다. 김밥 한 번 싸려면 재료를 여덟 가지 넘게 사서 준비해야 하니 큰맘 먹어야 한다는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김밥에는 단무지만 있으면 된다고. 달걀은 냉장고에 늘 있는 비상식량이니, 여기에 냉장고 속 채소나 반찬 하나만 더하면 된다고. 재료 수는 중요하지 않다. 콩나물, 숙주나물, 미역줄기볶음, 톳조림, 참나물, 김치볶음 등 어떤 나물이든 좋다. 불고기, 돼지고기, 멸치조림, 참치, 고등어 등 어떤 반찬이든 좋다. 남은 반찬이라면 더 실용적이다. 단무지는 5분 정도 찬물에 담갔다가 쓰면 첨가물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단무지가 없다면 버섯, 오이, 당근, 나물 같은 채소만으로도 충분하다. 김밥은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지만, 알고 보면 세상 쉬운 음식이다. 내 손맛을 믿어 보자 김밥은 재료가 같아도 맛이 다르다. 저마다 손맛이 있기 때문이다. 유명 맛집에서 음식을 먹고 "어? 집밥 먹는 것 같아"라고 말하곤 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맛의 기준은 결국 어릴 때 먹고 자란 집밥이다. 내 아이에게는 내 손맛이 40년 된 노포 맛집과도 같다. 그러니 솜씨가 없다고 망설이지 말고 일단 싸 보자. 김밥의 가장 큰 미덕은 여러 재료가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에 싫어하는 채소를 조금만 넣어도 아이는 먹어 볼 용기를 낸다. 그렇게 먹는 경험이 하나씩 늘면 더 다양한 채소에 도전할 수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싸 주던 김밥을 이제는 내가 만들어 내 아이가 먹는다. 내가 먹으며 자란 좋은 기억을 의심하지 말고, 내가 쌓아 온 식사의 경험을 믿어도 좋다. 그 음식이 내 아이에게도 이어지니 말이다. 김밥은 내게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에 잔잔한 힘이 되어 주는 '소울푸드'다. 거창하지 않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으니 아이에게는 더 특별한 음식이다. 그렇게 아이의 식습관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제 걱정은 내려놓자. 엄마의 손맛은 내게도 있으니, 아이가 스스로 먹어 내는 힘을 믿어 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인스타그램에도 실립니다. 참고 자료 : 농촌진흥청 농사로, <김밥! 시대를 읽다 - 4. 무료릴게임 김밥의 영양학적 가치>(국립농업과학원 협조, 2018) 릴게임골드몽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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