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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이어령과 삼성출판사가 만나 창간한 문예지
종합 문학잡지 월간 《문학사상(文學思想)》은 1972년 10월 1일 삼성출판사(대표 김봉규)에서 창간되었다. 이어령(李御寧, 1933~2022) 선생이 초대 주간을 맡아 참신한 기획과 역량 있는 문인 발굴 등으로 우리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4년 신인문학상을 제정해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1977년에 제정한 이상문학상(李箱文學賞)은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과 더불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성장했다.
발행인과 주간의 이름으로 창간호 첫머리를 장식한 창간사는 “이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분노의 주먹을 쥐다가도 결국은 자기 가슴이나 치며 애통해하는 무력자들을 위하여, 지하실처럼 어두운 병실에서 오월의 푸른 잎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하여, 눈물 없이는 한술의 밥숟가락을 뜨지 못하는 헐벗은 사람들을 위하여”로 시작하여 “상처진 자에게는 붕대와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폐를 앓고 있는 자에게는 신선한 초원의 바람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역사와 생을 배반하는 자들에겐 창끝 같은 도전의 언어, 불의 언어가 될 것이다. 종(鐘)의 언어가 될 것이다. 지루한 밤이 가고 새벽이 어떻게 오는가를 알려주는 종의 언어가 될 것이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그 전문(全文)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창간사/이들을 위하여
분노의 주먹을 쥐다가도 결국은 자기 가슴이나 치며 애통해 하는 무력자들을 위하여, 지하실처럼 어두운 병실에서 5월의 푸른 잎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하여, 눈물 없이는 한술의 밥 숟가락을 뜨지 못하는 헐벗은 사람들을 위하여, 위선에 지치고 허위의 지식에 하품을 하고 사는 권태가를 위하여, 돈이나 권력보다 더 소중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의 뒷전을 쫓아가는 소시민들을 위하여, 폭력을 거부하며 불의를 향해서 '아니'라고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을 위하여, 요한처럼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예언자들을 위하여, 쓰레기터에 살면서도 아름다운 것을 참으로 아름다운 것을 목마르게 갈구하는 미의 순교자들을 위하여, 무기고나 식량창고보다는 영혼의 언어가 담긴 한 줄의 시를 더 두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개를 개라 부르고 구름을 구름이라고 명백하게 부를 줄 아는 대중들을 위하여, 텅빈 공허가 깔려 있는 월급 봉투와 아내의 시장 바구니 속에서도 대일의 꿈을 찾는 사람들을 위하여, 민들레와 진달래와 도라지, 박꽃, 냉이꽃들이 매연 속에서 시들어 가는 것을 고향처럼 지켜보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오늘보다는 내일을 위해 허리띠를 조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날이 무거워지는 저금통처럼 자기 머릿속에 지식을 축적해 가려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들이 다 기진맥진하여 절망의 흙구덩 속에 무릎을 꿇을 때 뜻밖에 나타난 기병대의 그 나팔수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또한 미래의 입법자, 심야에서도 눈을 뜬 불침번, 도굴자를 막는 묘지의 파수꾼, 소돔성의 롯과 7백의총에 묻힌 의병—이렇게 남과 다른 생을 살고자 하는 이웃들을 위하여 우리는 역사의 새로운 언어와 입법을 만들어 가는 이 작은 잡지를 펴낸다.
그리하여 상처진 자에게는 붕대와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폐를 앓고 있는 자에게는 신선한 초원의 바람 같은 언어가 될 것이다. 종의 언어가 될 것이다. 지루한 밤이 가고 새벽이 어떻게 오는가를 알려주는 종의 언어가 될 것이다.
창간호를 보면 먼저 표지화가 시선을 끈다. 화가 구본웅(具本雄, 1906~1952)이 자신의 친구였던 시인 이상(李箱, 1910~1937)을 그린 ‘친구의 초상’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처음 공개되는 이상 시인의 초상화여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본문 59쪽에 보면 ‘표지 해설’이 나오는데, 미술평론가 이구열(李龜烈, 1932~ ) 선생이 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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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의 증언으로 40년 만에 밝혀진 한국문단의 기재(奇才) 이상의 초상화
이상(李箱)의 초상화(肖像畵)
구본웅(具本雄) 작(유화 50×63cm)
지난 7월.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근대미술 60년전’에는 1953년에 타계한 구본웅의 유화(油畫) 9。이 나와 있었다. 그중에 청회색의 엔지니어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문 기다란 얼굴의 사색적인 표정을 그린 청년의 초상화가 하나 있었다. 제목은 <우인(友人)의 초상(肖像)>.
1930년대 중엽의 작품으로 구본웅의 지난날의 놀라운 재능과 야수파적(野獸派的)인 표현 수법을 재확인시킨 걸작의 하나였다. 전람회가 끝난 뒤 구 화백의 장남인 구환모(具桓謨) 씨를 만나 “<우인의 초상>의 모델이 누구였을까요?”하고 물었더니 “그건 이상(李箱)을 그린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뜻밖의 증언.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이건 한국 근대문학사에 빛나는 시인이나 작가를 모델로 삼은 유일한 걸작 유화가 아닌가. 더구나 이상은 1930년대의 가장 전설적인 귀재(鬼才). 그의 초상을 그린 화가 구본웅 역시 그에 못지않은 당대의 기재(奇才).
이상은 구본웅보다 여섯 살 아래였다1). 그들이 처음 만나기는 아마 구본웅이 일본에서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오는 1934년 이후의 일이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상이 서울에서 경성고등공업 건축과를 졸업하고 난해시(難解詩)로 물의를 일으키기 시작하던 시기가 된다. 구본웅 역시 당시로선 난해화(難解畵)에 속하는 야수파의 주관적 표현을 적극 지향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의기상투(意氣相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과 구본웅은 그래서 급격히 친해졌던 것 같다. 이상이 정식으로 결혼했던 부인(소설 <날개>에 나오는 아내)을 소개한 사람이 구본웅이었는데, 그 부인은 바로 서모(庶母)의 친동생이었다. 구본웅이 이상의 초상을 그린 것은 그런 밀접한 우정(友情) 관계에서였다.
단순한 외모의 묘사가 아니라 구본웅의 주관적인 표현으로 완성된 이 <이상의 초상>은 얼핏 서양인처럼 그려져 있으나, 그러면서도 우리가 과거의 이상의 사진에서 확인하는 기다란 얼굴의 특징과 표정이 잘 살려져 있다. 그리고 그 파이프를 문 표정은 이상의 소설 <실화(失花)>에 나오는, “기다랗게 구부러진 파이프에다가 향기가 아주 높은 담배를 피워 뻑뻑— 연기를 풍기고 앉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낙이었습니다.”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목차와 본문 그림은 화가 박고석(朴古石, 1917~2002)이 그렸다. 목차의 뒤를 이어 ‘여기가 그곳이다’라는 제목으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강원도 봉평 현지 모습과 ‘창작의 밀실’이라는 제목으로 유주현 작가(「황녀(皇女)」 연재 시작), 박경리 작가(「토지」 2부 연재 시작)의 창작실 모습 등이 화보(畫報)로 실렸다. 또한 특집으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尹伊桑, 1917~1995)의 오페라 「심청(沈淸)」 대본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 것을 비롯하여 오영수·강신재·이범선·이문구·최인호 등의 소설 작품이 실렸으며, 신석정·서정주·박남수·김춘수·홍윤숙·이근배·정현종 등의 시 작품이 실렸다. 그 밖에 김동리와 박두진의 ‘대표작 자선자평(自選自評)’과 유진오·양주동·주요한·박화성의 특별한 시기에 관한 에피소드가 실리는 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많이 있다.
《문학사상》 창간호 톺아보기
월간 《문학사상》 창간호는 가로 148mm, 세로 210mm 크기에 표지는 가로쓰기, 본문은 세로쓰기 형식을 띠고 있으며, 본문은 모두 406쪽 분량이다. 특히, 이미 살핀 것처럼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밝혀진 구본웅 작 이상의 초상화’라는 설명과 함께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화’를 밑에 놓고 맨 위에는 제호가 백자(白字)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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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래 왼편으로 창간호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오른편으로는 제호의 영문 표기와 함께 10월호임을 뜻하는 숫자 ‘10’이 보인다.
표지 뒷면에는 신인작품 모집을 알리는 사고(社告)가 실려 있고, 그다음 쪽은 펼침 목차 앞쪽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두 쪽에 걸쳐 출판사 ‘동화출판공사(同和出版公社)’의 동화문고 광고가 실려 있다. 이어 나오는 목차는 본문 기준 4.5쪽 분량의 펼침 형식인데, 박고석의 그림을 밑에 깔고 장르별로 정리가 되어 있다.
창간사/이들을 위하여
화보(畫報)
미술 사이①
그곳이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
본 서양문화 속의 심청(沈淸)
밀실(유주현·박경리)
200매 완역 독.게재
(尹伊桑) : 세계를 놀라게 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대본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전 2막/서막·간막) 쿤츠 작시/안인길 역
속의 심청(좌담/조상현·안인길·이어령)
소설
(畜犬記) : 오영수
(達五)는 산으로 : 강신재
(表具)된 휴지(休紙) : 이범선
(訪問客) : 최상규
말했듯 : 이문구
(魔羅)의 딸 : 최인호
2대 연재소설
(皇女) 제1회 : 춘원(春園)이 탐을 내면서도 끝내 쓰지 못했던 구한말 황녀의 이야기 : 유주현
(土地) 2부 ① : 한국 최초의 본격 대하소설 『토지』의 인물과 무대가 다른 제2부 : 박경리
모년 모월 모일
- 나의 동기(動機) : 유진오
(鄕歌) 연구에의 발심(發心) : 양주동
돌아 나온 변명 : 주요한
년 9월 1일 오전 11시 : 박화성
시(詩)와 시론(詩論)
(惡寒)/시정신과 참여의 방향 : 신석정
손톱/미정고의식(未定稿意識) : 서정주
(無題)/감성·지성 기타 : 박남수
/수박에 대하여 : 김춘수
(豫感)/서설적(序說的) 시론의 산책(散策) : 홍윤숙
산/대기오염의 시 : 이근배
/말은 이 세상의 것만이 아니다 : 정현종
쟁。①
불꽃인가 : 염무웅
한국문학과 리얼리즘 : 김병익
대표작 자선자평(自選自評)
무녀도(巫女圖)> 기타론(샤머니즘과 불교와) : 김동리
해> 기타론(시의 운명) : 박두진
▶ 한국 저항시의 특성 : 옥스퍼드 시학교수 바우라
▶ 역사소설을 보는 역사가의 눈 : 하현강
▶ 번역자는 배신자인가 : 박대인
▶ 한국 설화문학의 심층분석①
♣ 자료조사연구실/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소재는 실화(實話)였다 : 허생원이 살던 집·물레방아 터·성씨댁 규수와 동이의 후일담 등
2대 연재
속의 철학①/미국 현지에서 보내온 강의원고 : 박이문
수난사①/소크라테스에서 솔제니친까지 : 안병욱
문학사상 수첩
사설이 지닌 문제。들 : 정병욱
조이스 : 나영균
사상들 : 김열규
: 민희식
한국 현대문학의 재정리/이광수와 개화기 문학
개화기의 문학 : 김우종·김현·홍기삼
주제론 : 천이두
문학사적 위치 : 김용준
비판의 재비판 : 이형기
자료로 본 이광수/반 세기 전의 이광수의 성적표가 처음 공개된다 : 노양환
▶ 표지 해설 : 이구열
▶ 편집실 노우트
목차가 끝난 다음 쪽 펼침 면에는 출판사 ‘서문당(瑞文堂)’의 서문문고 광고가 실려 있다. 이어 화보가 8쪽에 걸쳐 나오는데, 먼저 메밀꽃이 피어 있는 강원도 봉평의 고즈넉한 모습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이 정겹게 펼쳐진다. 그다음으로 당시 문제작 집필에 여념이 없었던, 비교적 젊은 날의 작가 유주현(柳周鉉, 1921~1982)과 박경리(朴景利, 1926~2008)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오징어릴게임
화보 마지막 면에는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공연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이윽고 속표지가 나타나고 창간사를 필두로 본문이 나오는데, 자세한 내용은 위에 옮겨 놓은 목차로 대신한다.
《문학사상》 창간호에는 최초로 소개되는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대본 등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앞서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되면서 제1부가 완결된 박경리 작가의 『토지』 제2부가 새로 연재되기 시작했다는 。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대하소설 <토지> 제1부를 완결한 작가가 소설의 무대와 그 지면을 동시에 옮기면서 그 2부를 무제한 연재한다.”는 안내 글과 함께 제2부 1장을 시작하고 있다. 첫 두 문단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911년의 5월, 용정촌(龍井村) 대화재(大火災)는 시가의 건물 절반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사진(砂塵)을 거슬러 올리며 달겨든, 오월에 흔히 부는 서북풍이 시가를 화염의 바다로 몰아넣고 걷잡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아직 공사가 진행중에 있는 절[운흥사(運興寺)]에 피신한 서희(西姬) 일행은 용이와 길상, 월선이 임이네 홍이, 그리고 간도(間島)에 오면서부터 서희 시중을 들게 된 새침이와 부엌일을 하는 달레오망이 일꾼 두 사람이었다. 절로 오게 된 것은 지난 삼월 포교하러 왔었던 중 본연(本然)이 일본 통감부 파출소(統監府派出所)의 서기였었던 최기남(崔基南)의 협조를 얻어 사찰 건립에 착수하였을 때 서희는 적지 않은 금액을 희사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절로 피신해 온 사람은 서희 일행만이 아니었고, 용정촌의 교포 이재민의 대부분은 천주교 성당으로 혹은 일본 영사관으로 몰려갔다는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1974년에 나온 정현종(鄭玄宗, 의 시집 『고통의 축제』(민음사)에서 가장 감명 깊게 다가왔던 시 「낮술」의 원전(原典)을 만나는 기쁨도 있었다. ‘시와 시론’ 코너에 정현종 시인의 작품 두 편이 실려 있는데 그중 한 편이 「낮술」이다.
한편, ‘편집후기’라고 할 수 있는 ‘편집실 노우트’에 따르면 “앞으로 본지의 표지화는 문인의 초상화를 계속 사용할 계획이다. 표지화 그 자체가 문학적, 문학사적 자료와 생활 속의 예술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밝힘으로써 창간호에 이상의 초상화가 실린 것이 우연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간기면에 따르면 창간호의 가격은 350원이며, 발행 겸 편집인 김봉규(金奉圭), 주간 이어령(李御寜) 등의 이름이 보인다. 뒤표지 안쪽에는 ‘한림출판사(翰林出版社)’ 광고가, 뒤표지에는 ‘동방그룹’ 광고가 실려 있다.
양주동 선생이 향가 연구에 빠진 이야기
또, 《문학사상》 창간호 본문 중에 나오는 ‘모년 모월 모일’이라는 코너에 실린 「향가(鄕歌) 연구에의 발심(發心)」이란 글을 보면 양주동(梁柱東, 1903~1977) 선생이 어떻게 해서 신라 향가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양주동 선생은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학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자기를 국보(國寶)라고 했을 정도다. 일제강。기에는 시인으로 『조선의 맥박』(1932)이라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으며, 친일 활동은 하지 않은 민족주의자였다. 1935년 이후에는 꾸준히 학자의 길을 걸었다. 원래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영문학자였으나 집안에서 배운 한문(漢文) 실력이 뛰어나 신라 향가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특히, 24세의 젊은 나이에 평양 숭실대 교수로 있으면서, 신라 향가 연구로 경성제국대학에서 문학박사가 된 일본인 교수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1882~1944)의 향가 논문이 지닌 맹。을 신랄하게 지적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했다.
구본웅과 이상, 이상과 변동림, 그리고 김환기와 김향안
《문학사상》 창간호 표지화로 쓰인 이상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구본웅은 1906년 서울에서 천도교인(손병희 교주의 비서)이자 잡지 《개벽》 편집장을 지낸 출판인이며, 사업가이고, 재력가였던 구자혁의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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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구본웅은 동네 젖동냥으로 컸는데, 세 살 무렵 유모가 업고 있던 구본웅을 떨어뜨려 척추 장애인(일명 꼽추)이 되었다고 한다.(한편으로는 선천적 척추 질환이 세 살 이후에 발현된 것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변동숙’이란 여인을 새 아내로 맞게 된다.
한편, 구본웅은 경복궁 서쪽 동네의 신명학교에서 김해경(金海卿)이란 친구를 만나게 된다. 구본웅이 네 살 더 많았지만 척추 장애 때문에 학교를 다니다 말다 하는 바람에 졸업까지 4년이 더 걸렸다. 당시 구본웅에겐 친어머니가 없었고, 김해경은 부모의 품을 떠나 큰아버지의 손에 컸으니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같은 학교를 함께 다닌 두 사람이 친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신명학교 졸업 후 구본웅은 경신고보로, 김해경은 보성고보로 진학하는 바람에 헤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1922년 여름 구본웅은 조선미술전람회 구경을 갔다가 김해경을 다시 만난다. 1927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김해경은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 공대의 전신)에 입학했다. 이때 구본웅은 김해경이 그토록 갖고 싶다고 했던 ‘스케치박스’[미술도구상자로 일명 ‘사생상(寫生箱)’이라고도 한다]를 선물로 준다. 이에 감격한 김해경은 자신의 이름을 ‘이상(李箱)’이라고 다시 짓는다. 자신은 원래 ‘김(金)’ 씨이지만 ‘나무상자’라는 의미를 담아 아예 성조차 바꾸어 이후로는 ‘이상’이란 이름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훗날 구본웅은 자신의 새엄마(변동숙)의 어린 동생으로 당시 18세였던 변동림(卞東琳, 1916~2004)을 이상에게 소개해 준다.
한편, 구본웅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에서 미술 이론을, 태평양미술학교에서 미술 실기를 공부하고, 여러 그룹전에 출품하여 이름을 알린 후 귀국했을 때가 1933년이었다. 그리고 이상이 일본으로 떠나는 1936년까지 3년여 동안 두 사람은 늘 함께 붙어다녔다고 한다. “텁수룩한 머리와 창백한 얼굴에 숱한 수염이 뻗친 이상”과 “곱사등인 데다가 땅에 끌리는 인버네스(Inverness; 기장이 길고 목둘레가 꼭 맞는 케이프가 달린, 소매 없는 오버코트)를 입은 구본웅”이 함께 거리를 거닐면 곡마단이 온 줄 알고 아이들이 뒤를 따랐다는 일화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행인(杏仁) 이승만(李承萬, 1903~1975) 화백이 그린 삽화가 남아 있기도 하다.
그 무렵 두 사람의 일상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상의 자전적 단편소설 「봉별기(逢別記)」가 있는데, 여기에 따르면 1933년 3월 무렵 이상이 처음 각혈을 했다. 그 후 총독부 건축기사 직을 그만두고 황해도 배천 온천으로 요양 갔을 때, 소설 속에서 그를 찾아왔던 ‘화가 K’가 바로 구본웅이다. 이 둘은 여기서 기생 ‘금홍’을 만났고, 서울로 돌아와서 이상은 종로에 다방 ‘제비’를 차렸다. 하지만 이내 외도와 육체적 쾌락에 눈이 멀어버린 금홍에게 ‘쓸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는 병신’이란 말로 힐난을 받고, ‘돈도 벌어올 줄 모른다’며 천대받은 끝에 이상은 2년 만에 다방과 애인 모두를 잃고 만다. 새로 개업한 카페 ‘쓰루[학(鶴)]’와 다방 ’69’마저 연이어 파산하자 이상은 가족을 빈민촌으로 이사시키며 죄책감과 무능력에 힘겨워한다.
이때 구본웅은 이상을 아버지가 운영하던 출판사 창문사에 취직시킨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구본웅의 소개로 변동림을 만나게 된다. 서로에게 이끌린 두 사람은 자주 만났으며, 어느 정도 관계가 무르익었을 때 이상은 “우리 함께 죽을까? 아니면 어디 먼 데 갈까?”라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데, “먼 데 여행이 맘에 들었고 또 죽는 것도 싫지 않았던” 변동림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상에게 흥미를 느껴 고백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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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곧바로 각자의 집을 나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머잖아 동경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양가의 허락 아래 서둘러 결혼식을 올린다. 둘이 달콤한 밀월 생활을 보내던 1936년에 이상은 「지주회시(鼅鼄會豕)」(1936년 6월 《중앙》)와 「날개」(1936년 9월 《조광》)를 발표하여 평론가와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당시 변동림은 빈민가에 사는 이상의 가족들까지 책임지기 위해 카페에서 여급으로 일했지만 입에 풀칠만 겨우 하는 정도였고, 건강 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비참한 현실을 마주한 이상은 결국 1936년 10월, 결혼 4개월 만에 새 출발을 위해 홀로 일본 동경으로 향한다. 하지만 가혹한 현실 속에서 폐결핵까지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편지를 쓸 정도로 자괴감에 시달리던 그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햇빛도 들지 않는 방에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가 되고 만다. 1937년 2월, 이상은 불령선인(不逞鮮人; 불온한 조선인)이라는 죄목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는데, 한 달 넘게 갇혀있는 동안 폐결핵이 더욱 심해져 손도 쓰지 못한 채 결국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변동림은 이상이 세상을 떠나기 전 동경으로 달려가 그의 임종을 지켰고, 1937년 4월 17일, 그렇게 그들의 짧은 결혼 생활은 끝나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낸 변동림은 한동안 슬픔을 가누지 못했지만, 여러 잡지 등에 수필과 소설을 기고하며 지내던 그녀는 조선총독부에 취직하게 된다. 이후 그의 두 번째 사랑이 되는 화가 김환기를 만나게 된다. 당시 김환기는 이미 딸을 셋이나 둔 이혼남이었기에 변동림으로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김환기는 첫 만남 이후 부지런히 편지를 보냈고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다감한 글’ 때문에 변동림의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1944년 5월 1일, 변동림은 결국 김환기와 결혼하며 이름을 ‘김향안’으로 바꾼다. 김환기의 성을 따라 김 씨로 바꾸고, 김환기의 아호였던 ‘향안(鄕岸)’을 가져다 이름으로 썼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김환기의 아내로 살면서도 수필가이자 미술평론가요 서양화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향안은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독서를 너무 좋아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을 정도였던 그녀는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함으로써 일제강。기 시절 여성으로는 드물게 대학 교육까지 받은 엘리트였지만, 젊은 날 천재 시인 이상을 만나게 되면서 급작스러운 변화의 물살에 휩쓸리게 된다.
훗날 김향안은 첫 남편 이상의 천재성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굵고 짧은 두 문장 속에 숨은 뜻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상은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인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 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고 소멸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문학사상》의 부활을 염원하며
아무리 의미 있는 잡지라고 해도 그 의미가 경영난까지 막아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정도로 한국문학의 위상이 높아졌음에도 전통 있는 문학잡지마저 경영난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문학출판 시장은 극심한 침체기를 맞았고, 그 결과 《문학사상》은 2024년 4월 통권 618호를 발행한 다음 무기한 휴간(休刊)에 들어가고 말았다. 신인문학상이 중단됐고, 이상문학상 운영권은 다른 출판사에 팔리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때 중견 기업의 인수설이 있었지만 돌연 중단되어 사실상 폐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아무쪼록 하루빨리 상황이 나아져서 “상처진 자에게는 붕대와 같은 언어가 될 것이며, 폐를 앓고 있는 자에게는 신선한 초원의 바람 같은 언어가 될 것이다. 종의 언어가 될 것이다. 지루한 밤이 가고 새벽이 어떻게 오는가를 알려주는 종의 언어가 될 것이다.”라고 마무리했던 창간사에서의 약속이 지켜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김기태 '처음책방' 설립자
주석
1) 구본웅은 1906년생, 이상은 1910년생으로 실제로는 네 살 차이가 난다.
會豕)」(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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