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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동쪽으로 약 80㎞ 떨어진 마프락주 자타리 난민촌. 차창 밖으로 황갈색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졌다. 돌멩이와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 나뒹구는 땅 위로 하얀 철제 임시거처가 빼곡했다.
차에서 내리자 뙤약볕에 조금만 걸어도 정수리가 뜨거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흙먼지가 코와 입으로 파고들어 콧속이 따갑고 기침이 연거푸 났다. 더위를 피해 들어선 임시거처 안은 바깥과 딴판이었다. 찌그러진 철판으로 창문을 가린 탓에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곰팡이와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고, 눅눅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
「 중앙일보는 지난 19~23일 유엔난민기구(UNHCR)의 협조로 요르단과 레바논의 난민 지원 현장을 단독 취재했다. 요르단에는 자타리·아즈라크 등 주요 시리아 난민촌 2곳이 있으며 약 35만 명의 등록 난민이 머물고 있다. 공식 난민촌이 없는 레바논에는 약 89만 명의 등록 시리아 난민이 흩어져 산다. 기자는 난민 가정과 주거 보수 현장, 지역사회개발센터, 귀환 집결지 등을 찾아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지원이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봤다.
」
어둠 속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여섯 자녀를 키우는 시리아 난민 사헴(35)이다. 그가 사는 집은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샌다. 빗물이 전선에 닿을까 두려워 가장 먼저 전기부터 끈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도 비가 내리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같은 난민촌에 사는 가심(46)의 집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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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벽과 반듯한 창문이 들어섰고 지붕과 바닥도 새것으로 바뀌었다. 실내에는 아이들이 사용할 침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집안은 밝았고, 빗물이나 곰팡이 걱정도 없었다.
일곱 자녀를 포함한 아홉 식구와 지내는 가심의 집도 얼마 전까지사헴과다를 바 없었다. 물이 새고 쥐와 벌레가 드나들었다. 두 가족의 삶을 가른 건 집에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유엔난민기구(UNHCR)의 손길이 미쳤느냐 여부였다.
난민촌 한편에는 공사에 쓸 단열 패널과 건축 자재가 높이 쌓여 있었다. 코이카와 유엔난민기구가 난민촌 집의 지붕과 바닥, 창문, 전기시설을 보수하는 데 쓰기 위해 모아 놓은 것이다. 난민촌 내 581가구 중 약 410가구가 두 기관의 보수 공사를 받았다.
난민촌에는 장애가 있는 난민을 위해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구와 화장실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심은 수리 전 집에서 잡은 쥐를 모은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한 세상에서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옮겨온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생겨난 자타리 난민촌에선 여의도 면적(2.9㎢)의 약 두 배인 5.4㎢에 시리아 내전을 피해 온 약 4만7700명의 난민이 산다. 기약 없는 피란 생활 속에서 난민촌은 어엿한 마을이 됐다. 슈퍼마켓과 식당 등 상.은 900여 개에 달한다.
난민촌 중심에는 약 3㎞ 길이의 ‘샴엘리제’ 거리가 뻗어 있다. 시리아를 뜻하는 ‘샴’과 파리의 번화가 ‘샹젤리제’를 합친 이름이다. 거리 양옆으로 식당과 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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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식당에서 갓 튀긴 병아리콩 완자와 채소를 따뜻한 빵에 싼 팔라펠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고소한 맛과 온기가 입안에 퍼졌다. 난민촌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만큼 평범한 。심이었다. 황무지 한가운데서도 사람들은 그렇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레바논에서도 ‘난민촌 집 고치기’가 한창이었다. 같은 달 23일 찾은 마운트레바논 쉬힘의 한 난민 가정에서는 보수공사를 통해 낡았던 침실과 화장실이 새롭게 변신했다.
집 고치기는 추위와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겨울을 앞둔 동부 베카 지역에서는 월동 준비가 한창이었다. 지난달 22일 자흘레의 한 목공소에선 작업자들이 방한·방수 자재를 자르고 조립하느라 분주했다.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이곳에서 난민들은 종이처럼 얇은 천막과 낡은 벽으로 추위를 견뎌왔다. 하지만 코이카가 지원한 자재를 설치해 1년이던 임시거처 사용 기간을 2년 반으로 늘렸다.
지원은 집 수리에서 끝나지 않았다. 난민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돕는 교육으로 이어졌다. 자흘레 지역사회개발센터에서는 법률 상담과 상품 홍보용 사진 촬영 교육이 진행됐다.
다음날 찾은 베이루트 인근 아인엘레마네의 센터에서는 디자이너와 화장품 사업가 등 다양한 경력의 난민들이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무료 인공지능(AI) 도구로 상품 홍보 사진과 영상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옆 교실에서는 재봉틀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들이 수놓은 가방과 책갈피, 컵 받침은 온라인 판매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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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받던 난민이 다른 난민을 돕는 봉사자로 나서기도 한다. 레바논 전역에서 활동하는 난민 봉사자는 443명이다.
하지만 집을 고쳐도, 기술을 배워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24년 12월 8일부터 지난달 22일까지 해외에서 시리아로 돌아온 난민은 약 183만 5000명, 시리아 내에서 고향으로 귀환한 난민은 약 206만 6000명이다. 여전히 약 554만2000명이 시리아 안에서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지난 21일 베이루트의 귀환 버스 집결지에서 만난 사마르(30)는 세 아들과 함께 시리아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6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지만 정작 고향에는 돌아갈 집이 없다. 치료가 필요한 둘째 아들의 사연을 이야기하던 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카롤리나 린드홀름 빌링 유엔난민기구 레바논 대표도 비슷한 사연을 전했다. 한 가족이 레바논에서 쓰던 텐트를 시리아까지 가져가 무너진 집의 잔해 위에 다시 세웠다는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도 난민 시절 천막살이는 끝내지 못하는 게 시리아인들의 현실이었다.
76년 전 6·25전쟁으로 집과 고향을 잃었던 한국도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한국의 지원으로 누군가의 무너진 집을 고치고, 다시 살아갈 발판을 놓고 있다.
난민촌을 떠나기 전 기자가 마주친 담벼락에는 그들이 직접 그린 벽화가 있었다. 서로의 손목을 붙잡은 여러 손과 아이들의 얼굴, 꽃과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사방은 흙과 돌뿐인 황무지였다. 그래도 그곳에선 희망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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