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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람(Salam)'은 아랍어로 평화를 뜻하는 인사말입니다. 김소희 카이로 특파원이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의 분쟁과 갈등은 물론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도시·산업의 변화도 함께 전합니다. 4주에 한 번씩, 이집트 카이로를 거。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이 지역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 담아봅니다.
이집트 청년들이 바닷속 가상 도시로 모여들었다. 사연은 이렇다. 올해 8월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카 알하무르(해저 물고기 마을) 주민 민원실'이라는 이름의 그룹이 등장했다. 미국 인기 애니메이션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배경이 되는 비키니 시티의 아랍어 이름을 딴 공간이다. 이용자들은 스폰지밥과 징징이, 집게사장 등 익숙한 만화 캐릭터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이미지를 만들어 이집트를 재현했다.
거리에는 이집트 전통 대중음식인 코샤리 가게가 문을 열고, 도로 위로는 삼륜차 '툭툭'이 달린다. 일부 주민은 파라오 복장을 하고 있다. 이 가상 공간을 이끄는 주축은 단연 Z세대(1990년대 후반~2000년대생)다. 이들은 현실에서 겪는 직장 문제나 일상적 스트레스를 다룬 콘텐츠를 올리며 소통한다. 하루에도 수천 건의 글이 올라오자 관리자들은 "이곳에 쌓인 엄청난 양의 민원을 읽고 오는 정신적 충격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조항까지 달았다.
현실을 복제한 가상 도시의 일상
어떤 민원이 쏟아졌을까. "집게사장이 버거 가격을 너무 올려 먹을 수가 없다" "월급도 못 받고 있는데 생필품이 너무 비싸다"는 한탄은 기본이다. 주민들은 "폭염인데 비키니 시티 동쪽 구역에 또 전기가 끊겼다"며 잦은 정전에 분통을 터뜨리는가 하면, "해저 교통체증이 심각하다"고 토로한다. 가상 도시의 민원실에는 주거, 임금, 노동, 실업, 결혼 등과 관련한 현실 속 불만과 고민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급기야 해저 도시에는 경찰서 같은 가상의 정부 기관까지 생겼다. 한 주민은 "비키니 시티 중앙병원에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가 전혀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불평하며 보건부에 민원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사용자들은 '비키니 시티 내무부'를 소환하며 우스꽝스러운 성명을 올리고, 주민들 역시 "골목길 들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등 온갖 민원을 가상의 내무부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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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시작한 농담이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다. 고대부터 권위주의 정권에 이르기까지 이집트인 특유의 농담은 현실의 고통을 견뎌내는 심리적 방어 기제로 기능해왔다. 이집트 라디오 진행자 라바브 카말은 이 같은 현상에 "비키니 시티를 둘러싼 웃음이 결코 행복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실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지경에 이르다 보니, 웃음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 돼버린 것"이라고 짚었다.
이 그룹은 단 2주 만에 180만 명을 끌어모았다. 이집트 청년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가상 도시라는 안전한 울타리에 녹여내며 폭발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유명인들까지 대거 참여한 데다 접근성이 쉬운 SNS의 확산력, 그리고 거대한 밈(Meme) 놀이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이른바 '포모(FOMO)' 심리까지 더해지면서 가상 민원실은 단숨에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배후에 무슬림형제단? 뜻밖의 논란
하지만 과도한 관심은 이내 논란의 불씨가 됐다. 단기간에 참여자가 급등한 배경에는 정치적 배후가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친정부 성향의 유명 방송인 타메르 압델 모나임은 "이번 현상이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의 소행이며 그목적은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현 이집트 대통령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난 뒤 집권했던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다. 이때 잔존한 반정부 세력이 대중의 불만을 선동하고 국가를 흔들기 위해 이번 현상을 기획했다는 식의 주장이다.
와파 라샤드 이집트 상원의원도 "청년들이 출처를 알 수 없는 그룹이나 플랫폼에 가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명확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그룹 운영 주체와 자금 출처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집트 매체 카이로24에 따르면, 아슈라프 나지라는 이름의 변호사는 해당 그룹의 관리자와 콘텐츠 제작자 등을 고발했다. 그는 성명에서 △악의적인 의도로 허위 정보나 소문을 유포하는 행위 △공공기관이나 단체를 사칭하는 행위 △경제 상황이나 관련 결정을 풍자적으로 모방·묘사해 공공 안전과 평화를 해치는 행위 등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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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무계한 논란이 커지자 운영자 중 한 명인 익명의 청소년 'H.M'은 해명 영상을 올렸다. 그는 "특정 정치 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관리자들은 그저 웃음을 나누고 싶었던 15세 안팎의 청소년들일 뿐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사법당국이 조사에 나설 수 있다는 소식에 이용자들은 "이거 수산자원청이 조사하냐, 해양경찰이 조사하냐"며 일각의 과잉 대응을 비꼬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오해에 시달린 끝에 같은 달 23일, 관리자 측은 결국 해당 그룹의 활동을 59일간 임시 정지(폐쇄) 조치했다. 이집트 청년들이 현실의 숨통을 트기 위해 모였던 바닷속 도피처는 결국 개설한 지 불과 2주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억압에 맞서는 풍자…현실의 벽
이번 소동은 단순한 밈 열풍을 넘어 이집트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다. 이집트 경제는 2021년 달러당 15파운드대였던 환율이 올해 10월 기준 53파운드대까지 폭락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2022년 3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2월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정세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관광 산업이 위축되는 등 외화 부족 사태가 심각해졌다. 일부 안정세를 찾긴 했지만 여전히 13~14% 수준의 두 자릿수 물가 상승률이 이어지며 경제난이 서민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여기에 청년층이 체감하는 절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집트 공식 실업률은 6% 안팎이지만, 15~24세 청년층 실업률은 18.3%(2025년 국제노동기구 추산)에 달한다. 또한 이집트 통계청(CAPMAS) 조사 결과, 지난해 전체 실업자 중 83.1%가 중등 교육 이상을 이수했다.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수많은 청년들이 택시 운전이나 배달, 단순 서비스업 등 비공식 노동 시장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사회적 불만을 토해낼 창구는 봉쇄돼 있다. 집회나 언론을 통한 정부 비판은 사실상 불가능한 환경이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2026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이집트는 180개국 가운데 169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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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무드 샬라비 국제앰네스티 이집트 담당 조사관은 BBC에 "이집트 정부는 오랫동안 온라인상의 표현을 철저히 탄압해왔다"면서 "정부 입장에 반하는 의견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엘시시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10여 년간 문화·예술계 전반의 풍자 문화도 강력한 검열과 제재의 대상이 됐다. 대표적으로 이집트 유명 코미디언인 바셈 유세프는 2014년 현 정권을 조롱하는 풍자 방송이 강제 중단된 후, 체포 위협을 피해 해외로 망명해야 했다. 인기 록 밴드 '카이로키'는 2017년 청년들의 절망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2024년에는 시사 만화가 아슈라프 오마르가 전력난과 유류비 인상 등 정부의 정책 실패를 풍자한 만화를 기고했다가 '허위 사실 유포 및 테러 단체 가입' 혐의로 강제 연행돼 구금됐다.
이 같은 사법적 제재와 단속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 인권 이니셔티브(EIPR)에 따르면 지난달 28일과 29일 이집트 팩트체크 매체 '마차다쉬(Matsda2sh)' 소속 기자 6명이 자택에서 체포됐다. 이집트 검찰은 이들이 무슬림형제단과 연관되어 있으며 '허위 정보로 국가 불안을 조장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당사자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으나, 2주가 넘도록 법적 구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닷속 가상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집트 정부에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미디어·여론연구센터 '타카물 미스르'는 아랍 매체 아라비21에 "공권력과 통제에 의존하는 정권에 이 정도 규모의 대중적 확산은 그 의도나 궁극적 의미와 무관하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풍자는 본질적으로 권위를 조롱거리로 만들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엘시시 대통령은 8월 26일 연설에서 "소셜 미디어가 퍼뜨리는 혼란"을 언급하며 허위 정보와 인식 왜곡 시도를 강하게 경계했다.
논란의 그룹은 복귀 예정일을 나흘 앞둔 18일 명칭을 전격 교체했다. 새롭게 바뀐 그룹 이름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다. 관리진은 '일상적 소통 공간'이라는 소개글과 함께 "이 공간은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풍자적이지도 않습니다"라는 새로운 규칙을 내걸었다. 일부 이용자들이 다시 '스폰지밥 밈'을 올리며 재회를 반겼지만, 이마저도 홍보성 게시물들에 묻히면서 거대한 유행은 끝내 자취를 감췄다.
규칙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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