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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긴 단 하나의 수정란에서 시작된다. 수정란이 둘로, 넷으로, 여덟으로 세포 분열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세포가 만들어진다. 똑같은 수정란에서 출발했는데 어떤 세포는 뇌가 되고, 다른 세포는 심장이나 피부가 된다. 이 세포들은 언제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일까.
이런 생명의 탄생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일종의 ‘DNA 블랙박스’를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생쥐의 수정란이 처음 둘로 분열할 때부터 뇌와 심장 등 주요 장기가 만들어지는 단계까지 약 130만개 세포의 족보를 복원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포마다 조상이 누구이고, 언제 다른 세포와 갈라졌는지 알아낸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혈액과 망막을 만드는 세포는 비교적 일찍 발생 경로가 갈라지지만, 피부 바깥층을 만드는 세포는 상대적으로 늦게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성과는 선천성 기형이 발생하는 원인을 밝히고, 줄기세포를 이용해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DNA 타자기로 세포의 과거 기록
미국 워싱턴대 의대와 다트머스대 등 공동연구진은 이런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가족의 족보를 보면 부모와 조부모, 그 윗대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세포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몸을 이루는 수많은 세포도 조상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나의 수정란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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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누가 누구의 자손인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그 과정을 일일이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포유류는 어미의 자궁 안에서 자라기 때문에 배아의 세포들이 어떻게 나뉘고 어떤 조직으로 발달하는지 지켜보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연구진은 세포가 분열하는 동안 DNA에 새로운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른바 ‘DNA 타자기(typewriter)’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타자기가 종이에 글자를 한 글자씩 찍듯 세포의 DNA에 새로운 표식을 차례로 새기는 기술이다.
예컨대 첫 번째 세포에 ‘가’라는 표식이 있다면, 이 세포가 둘로 나뉘면서 생긴 두 딸세포는 모두 ‘가’라는 표식을 물려받는다. 이후 한쪽 딸세포에는 ‘나’, 다른 딸세포에는 ‘다’라는 표식이 추가될 수 있다. 다음 세대에서는 각각 ‘가-나-라’, ‘가-다-마’처럼 서로 다른 기록을 갖게 되는 식이다.
나중에 이 기록들을 읽으면 두 세포가 ‘가’라는 표식을 가진 공통 조상에서 나왔지만, 이후 서로 다른 경로로 갈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DNA에 남긴 표식이 세포들의 족보 역할을 하는 것이다.
◇130만개 세포 추적하니…운명 결정 시. 달라
연구진은 생쥐 수정란 100개에 DNA 타자기 기술을 도입한 뒤 자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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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가운데 10개를 분석했으며, 기록이 가장 선명하게 남은 1개를 집중 조사했다.
생쥐의 임신 기간은 약 20일이다. 연구진은 수정 후 13.5일까지 자란 배아에서 약 128만 세포의 발생 계통을 복원했다. 이는 배아를 구성한 세포의 약 10%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세포가 어떤 조직을 만들도록 운명이 정해지는 시.도 분석했다. 혈액세포와 눈의 망막세포는 발생 과정에서 비교적 일찍 서로 다른 길로 갈라졌다. 반면 피부의 가장 바깥층을 이루는 세포는 상대적으로 늦게 분화 경로가 결정됐다.
수정란에서 유래한 세포들이 모두 처음부터 뇌나 심장, 피부가 될 운명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세포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시기에 분화 경로가 구분되고, .차 특정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이번처럼 세포의 계통을 추적하려는 시도는 이미 100년 전에도 있었다. 과학자들은 초기 배아의 세포에 색소를 주입한 뒤, 색이 표시된 세포의 후손이 어떤 조직으로 발달하는지 관찰했다.
이 분야에서 역사적 성과가 나온 때가 1983년이다. 예쁜꼬마선충의 세포 분열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수정란에서 시작되는 세포 계통도를 완성했다. 성체를 이루는 체세포 959개의 조상을 추적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 생쥐나 사람의 세포 족보를 완성하기는 어려웠다. 예쁜꼬마선충은 몸이 투명하고 세포 분열 과정도 매우 규칙적이지만, 포유류는 자궁 안에서 자라는 데다 세포 수도 훨씬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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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연구는 DNA에 세포의 분열 흔적을 남겨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아직 생쥐의 모든 세포를 추적하는 완전한 족보를 작성한 것은 아니다. 약 130만 세포의 DNA 기록을 분석해 발생 계통을 재구성한 것으로, 실제 세포가 분열하고 이동하는 모든 순간을 직접 관찰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앞으로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질환이 생기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정상적인 세포 족보가 밝혀지면 심장 형성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단계부터 발생 경로가 달라졌는지 추적하는 연구가 가능해질 수 있다.
암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다. 암세포도 분열과 증식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후손을 만든다. 세포 계통 추적 기술을 이용하면 어떤 암세포가 살아남아 증식하고, 어떤 계통이 다른 장기로 퍼져 나가는지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용 세포를 만드는 연구에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줄기세포가 원하는 조직으로 분화하기까지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 이해하면, 특정 세포를 만드는 방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가 실제 질병의 원인을 밝히거나 치료법을 개발한 것은 아니다. 의료 현장에 적용하기까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 하나의 수정란이 어떻게 복잡한 생명체로 자라나는지, 그 오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새로운 도구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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