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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 선사 '청산가')
△불교의 세속화
불교는 고려 말로 오면서 거대한 경제 주체가 돼 있었다. 많은 땅과 노비들을 거느렸다. 사찰 노비가 8만 명을 넘었다. 정치세력과 손을 잡은 사원경제가 번창하고 승려들이 세속화하면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세금까지 면제되면서 국가 재정 부담도 가중됐다. 그런 가운데도 왕실과 귀족들의 원찰(願刹)이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고 1년에 80회가 넘은 사찰 행사로 민중들의 고통을 더했다. 성리학자들은 사원의 세속적 경제력이 고려왕조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잠식했다고 비판했다. 이색, 정몽주 등은 불교의 폐단을 고쳐 민중 불교로 키워 나가자는 다소 온건한 입장을 보였다. 반면에 급진적 개혁론자였던 정도전은 불교 자체를 국가 운영의 이념에서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사설이 횡류하여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린다면 누구나 그것을 물리쳐야 한다"며 불교를 공격했다. 불교 핵심인 '윤회설'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사회적 불만이 쌓이면서 학문적, 문화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위기를 맞았다. 불교의 근본은 인정하던 억불(抑佛)에서 불교 자체를 배격하는 척불(斥佛)로 사회적 분위기가 넘어 가게 된다.
불교가 사회적 지탄을 받던 그 때 나옹(懶翁)선사가 등장한다.
그는 공민왕의 국사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자신을 '게으른 늙은이, 나옹으로 부른 그는 당시 불교계의 타락상을 질책하듯이 '청산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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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사원경제와 정치적 특권이 불교의 본래 수행정신과 충돌함에 따라 '물같이 바람같이' 살겠다 선언한 것이다. 불교계에 대해 불교 본래의 수행정신으로 돌아가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나옹(懶翁) 국사 탄생
나옹(1320~1376), 그는 누구인가.
그는 경북 영덕군 창수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태어난 장소가 집이 아니라 불모곡이라는 골짜기 웅덩이 옆이었다. 탄생 설화부터 범상치 않다. 사연이 있다.
부친은 원나라 출신으로 하급관리를 지낸 아서구(牙瑞具)였고, 모친은 창녕 정씨(昌寧鄭氏)였다. 아버지 아씨(牙氏)는 무거운 세금과 세리들의 닥달을 피해 몸을 숨겼다. 그 후 세리들의 횡포는 더욱 심해졌다. 결국 부인 정 씨가 예주부(禮州府)로 잡혀 간다. 그녀는 만삭이었다. 관아로 가던 중에 불모곡에서 나옹을 낳는다. 피도 눈물도 없던 관원들은 핏덩이를 물가에 버리고 그녀를 관아로 압송했다.
동헌에 앉은 부사가 옷에 피가 묻은 연유를 물었다. 출산 이야기를 들은 부사가 그녀를 돌려보내 준다.
부인이 불모곡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불길했다. 그런데 갓난아이는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수십 마리의 까치들이 날개를 펴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이 '까치소(沼)' 또는 '작연(鵲淵)'이라 불리게 됐다.
나옹의 이름은 원혜(元慧)였다. 그는 20세 때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갑자기 죽자 인생무상을 느꼈다. 주유천하를 한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그는 답을 찾고 싶었다. 경북 문경 묘적암(妙寂庵)으로 들어가 요연선사(了然禪師)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옹의 구도(求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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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중이 되려고 하느냐?"
요연선사가 질문을 던졌다.
"삼계(三界)를 뛰어 넘어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합니다." 출가 허락과 함께 혜근(慧勤)이란 법명을 받았다. 25세에 경기도 양주 회암사(檜巖寺)로 간다. 용맹정진 한다. 어느 겨울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29살 때였다.
그는 깨침을 인정받기 위해 선지식(善知識)인 원나라 법원사(法源寺)의 지공화상(指空和尙)을 찾아 갔다.
인도 마다가국 왕자였던 그는 한 때 고려에 3년 간 머물며 선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당시 민중들은 "석존(釋尊)이 다시 태어나 이곳에 도착하셨다"며 그를 추앙했다.
지공에게 인정을 받고 10년간 도를 닦은 뒤 귀국한다. 그동안 그는 평산처림(平山處林) 문하에서도 공부하는 등 인도와 중국 선지식으로부터 모두 인가를 받았다. 덕분에 나옹의 사상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即心即佛)'의 조사선(祖師禪)과 일체의 권위와 분별을 인정하지 않는 임제선(臨濟禪)을 모두 이어받았다.
△장육사(莊陸寺) 창건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운서산 깊은 자락에 터를 잡았다. 어떻게 이런 산세가 있나 싶을 정도다. 깔때기를 닮았다. 눈앞이 깎아지른 산이고 뒤로도 가파른 능선을 둘렀다. 천혜의 요새다. 산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새와 구름 그리고 바람뿐일 듯하다.
나옹선사가 1355년(공민왕 4년) 창건했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 말사다. 발이 여섯 개 달린 거북이를 닮은 운서산을 상징해 장육사로 지었다고 한다. 장(莊)은 여섯 갈래의 큰 거리를 뜻하고 육(陸)은 숫자 육(六)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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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6척으로 해석해서 불상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운서교가 반긴다. 대리석 곡선이 부드럽다. 가장 먼저 만나는 전각이 불이문(不二門)인 흥원루다. 세상은 이것과 저것, 나와 남, 선과 악, 좋음과 나쁨, 생과 사를 끊임없이 분별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고개를 숙이고 흥원루를 넘는 순간 분별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고개를 들면 대웅전이다. 정면과 측면 각 3칸이다. 다른 사찰에 없는 들쇠가 주렴처럼 걸린 모습이 특이하다.
조선 1395년(태조 4년) 태조와 그의 부인 신덕왕후 강씨를 기리기 위해 지방 관리들이 중심이 돼 불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법당에는 본존불과 함께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불로 모시고 있다. 본존불 뒤에 있는 탱화, 영산회상도와 지장시왕도는 귀한 유물이다. 대웅전 내부는 문수·보현보살과 주악비천도, 운룡도, 나한·조사도 등 작품성이 뛰어난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이렇게 탱화만으로 대웅전 내부를 장식한 사찰이 몇 없다.
△나옹의 죽음
고려로 돌아온 나옹선사는 선종을 통해 무너져 가던 고려 불교를 바로 세우려 했다. 공민왕의 왕사가 된 그는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를 중창했다. 고려 최대의 청정 수행 도량이 됐다. 하지만 그를 견제하는 세력이 만만찮았다. 밀양 영남사로 유배된다. 병약했던 그는 유배 길에 신륵사에서 세수 54세에 열반에 든다. 그의 제자 중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 스승 무학 대사도 있었다.
△동해안 산불로 위기
지난해 봄 동해안 산불 때 화마에 모든 것을 잃을 뻔 했다.
영덕군을 휩쓸던 화마가 운서산도 삼킬 기세였다. 도겸 주지 스님이 급히 영덕군에 도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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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톤 무진동 트럭이 도착했다. 하지만 대웅전에 걸려 있던 대형 영산회상도와 지장시왕도를 탑재하기에는 적재함이 작았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무리하게 밀어 넣었다. 대웅전에 설치된 뒤 처음으로 떼면서 일부 훼손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도겸 주지 스님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화마가 곧 덮칠 수 있는 너무도 급박한 상황이어서 무리하게 떼고 또 쟁이면서 일부 손상된 듯하다"고 밝혔다. 손을 탔기 때문에 현재 동국대에서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금 대웅전에 걸린 탱화는 복사품이다.
관음전의 건칠관음보살좌상도 보물로 지정된 귀한 유물이다. 이 좌상은 진흙으로 먼저 관음보살을 만든 뒤 삼베를 감았다.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말린 뒤 속을 빼냈다. 그리고 개금을 했다. 특이하게도 몸을 앞으로 조금 숙인 모습이다. 천수천안을 배경으로 사바세계를 예리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듯하다. 복장 유물에 불사 동기와 조성 과정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인근 위장사에 봉안돼 있다 폐사되면서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도 산불 때 대피시키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머리의 보관(寶冠)이 손상돼 아쉬움을 주고 있다. 지난 13일 개금불사와 보존처리를 위해 전문기관으로 이운했다. 1년 뒤 돌아온다.
"다행히 부처님의 원력인 듯 바다 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불길의 범접을 막은 덕에 절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며 도겸 주지 스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홍련암(紅蓮庵)
대웅전을 오른쪽으로 돌아 80여m 오르면 홍련암이 나온다.
나옹선사가 처음으로 수행을 한 곳이다. 나옹선사 좌우로 스승 지공화상과 제자인 무학화상을 모시고 있다. 대나무를 병풍처럼 두른 홍련암에 앉으면 속세가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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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국사가 가부좌를 틀고 삼매에 빠졌을 듯한 너럭바위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옹왕사 선명상치유센터
영덕군이 민간에 위탁한 나옹왕사 선명상 치유센터가 지난달 개원했다.
나옹왕사의 간화선 전통을 바탕으로 자연환경을 활용해 선(禪) 정신과 현대 웰니스를 접목한 복합 치유 공간이다. 비수도권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이 추진하는 선명상 보급 사업 첫 거。시설이다. 프로그램은 명상과 명상 투어, 나옹왕사 순례, 해변 맨발 걷기 등 다양하게 꾸며진다.
◇반송정(盤松亭)
창수면 소재지에서 장육사 쪽으로 우회전하는 길모퉁이에 있다.
나옹국사가 출가할 때 소나무 지팡이를 바위에 거꾸로 꽂으며 말했다. "이 지팡이가 살아 있으면 내가 살아 있는 것이고, 죽으면 나 또한 죽은 줄 알라." 신기하게도 지팡이에서 잎이 나고 무성하게 자라 반송이 됐다. 7백여 년을 살다 1965년 고사(枯死)했다. 영덕군이 2008년에 나무가 있던 자리에 반송정(盤松亭)을 세우고 반송도 다시 심었다.
선승 나옹 국사의 '백납가'(百納歌)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무엇을 얻었던가 / 내가 배운 것은 오로지 가난뿐/ 명예와 이익 다 부질없는 것/ 누더기 가슴 비었거니 무슨 생각 두랴/ 한 바리때의 삶 어디를 가나 넉넉하다."
◇주변 볼거리 먹거리
△인량리 전통테마 마을
장육사에서 멀지 않다. 어질고 인자한 현인들이 많이 났다고 해서 광해군 때 인량(仁良)리란 지명을 얻었다.
1400년대부터 조성된 20채의 전통가옥이 있는 문화재 마을.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무대.
△창수면 생생식당
닭과 오리 누룽지백숙으로 유명. 1마리 주문하면 4명이 먹을 수 있는 양. 1시간 전 예약 필수. 집 밥 같은 한식 뷔페도 인기. 일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대웅전을 오른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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