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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가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7세.
쿠사마 스튜디오는 2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별세 소식을 알리며 “마지막 날까지 붓을 내려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밝혔다. 평생 천착한 ‘영원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탐구도 마지막까지 이어갔다고 전했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에서 태어난 쿠사마는 어린 시절부터 꽃과 。, 무늬가 자신과 주변 공간을 뒤덮는 환각을 경험했다. 그는 두려움에서 도망치는 대신 그것을 그렸다. 반복되는 .과 그물은 훗날 쿠사마 미술의 핵심인 ‘무한(infinity)’과 ‘자기소멸(self-obliteration)’의 언어가 됐다.
사라지고 싶었던 한 인간의 강박은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알아보기 쉬운 이미지가 됐다.
검은 。이 박힌 노란 호박, 화면을 끝없이 뒤덮는 ‘인피니티 네트’, 거울 속 빛이 무한히 증식하는 ‘인피니티 미러룸’. 쿠사마라는 이름을 몰라도 그의 이미지는 알아보는 시대가 열렸다.
뉴욕의 아웃사이더에서 세계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일본화를 공부한 쿠사마는 일본 미술계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꼈다. 미국 여성 화가 조지아 오키프와 편지를 주고받은 뒤 1958년 뉴욕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전위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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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는 도널드 저드 등과 교류하며 거대한 화면을 작은 망으로 뒤덮는 ‘인피니티 네트’를 선보였다. 가구와 사물에 천으로 만든 남근 형태를 빼곡하게 붙인 ‘소프트 스컬프처’, 누드 퍼포먼스와 반전 해프닝 등 회화·조각·행위를 넘나드는 작업을 펼쳤다.
1966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공식 초청도 받지 않은 채 잔디밭에 거울 구 1500개를 깐 ‘나르시스 가든(Narcissus Garden)’을 설치했다. 그는 ‘당신의 나르시시즘을 팝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거울 구를 개당 2달러에 판매하다 비엔날레 측의 제지를 받았다.
그러나 여성이고 아시아인이었던 쿠사마가 당시 뉴욕 미술계의 중심으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남성 작가들에게 차용됐지만 정작 자신은 미술사에서 밀려났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1973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1977년 도쿄의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했다. 이후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인근 스튜디오로 출근해 작업했다. 정신병원은 예술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 삶의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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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전시를 계기로 국제 미술계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호박과 거울, 빛과 .을 결합한 몰입형 설치 작업들이 폭발적인 대중성을 얻으면서 ‘현대미술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미술관에서 SNS까지…‘무한’이 대중문화가 되다
쿠사마의 ‘인피니티 미러룸’은 관람객이 작품 안으로 직접 들어가 자신의 몸이 수없이 증식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한때 강박과 환각에서 출발한 ‘자기소멸’은 스마트폰과 SNS 시대에 역설적으로 가장 촬영하고 싶은 현대미술이 됐다.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그의 전시가 열릴 때마다 긴 관람 행렬이 이어졌다. 2017년 워싱턴 허시혼미술관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셀피를 찍다 작품을 훼손해 전시실이 일시 폐쇄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시장에서도 쿠사마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아트넷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경매에서 쿠사마 작품은 약 1억9000만 달러어치 거래됐다. 2024년에도 1억5500만 달러의 거래액을 기록했고, 최근 1년간 아시아 생존 작가 경매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노란 호박’…104억5000만원
국내에서도 쿠사마는 검은 .이 뒤덮인 노란 ‘호박’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미술시장에서도 국내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해외 작가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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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2015년작 대형 회화 ‘Pumpkin(MBOK)’은 104억5000만원에 낙찰돼 국내에서 거래된 쿠사마 작품 가운데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국내 미술관과도 인연이 깊다. 2013년 대구미술관은 ‘쿠사마 야요이: A Dream I Dreamed’를 개최했다. 신작 30.을 포함해 회화·조각·설치 등 118。을 선보인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 순회전이었다.
이듬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도 대규모 개인전이 이어지는 등 쿠사마는 한국에서 미술 애호가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해외 작가가 됐다.
자기를 지우려 했지만 가장 선명하게 남았다
쿠사마는 평생 ‘자기소멸’을 이야기했다.
자신과 사물, 공간의 경계를 .과 그물로 지우고, 거울 속에서 몸을 무한히 증식시켰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던 작업은 역설적으로 쿠사마라는 이름을 세계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선명한 이름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미술뿐 아니라 소설과 시, 퍼포먼스까지 넘나들며 생의 마지막까지 작업했다.
쿠사마 스튜디오는 “그의 뜻을 이어 예술을 통해 세계 사람들에게 미래를 향한 희망과 힘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 하나로 시작한 그의 ‘무한’은 이제 작가 없는 세계에서 계속 증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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