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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빌어.”
은혜(64·몽골명 엥크자르갈)씨가 케이크 칼을 잡으며 말했다. 아이샤(21·키르기스스탄)의 손이 은혜씨의 손 아래를 받혔다. 마리나(24·몽골)의 손이 은혜씨의 손 위에 놓였다. 아셈(19·파키스탄)의 손이 ‘손들’ 사이 남은 틈을 채웠다. 손과 손이 모여 마음과 마음을 지탱했다.
“소원 빌었어요?”
은혜씨의 물음에 세 청년이 말없이 웃었다. “하나 둘 셋.” 사회자의 박자에 맞춰 네개의 손이 케이크를 잘랐다. 네 입이 촛불을 후우 불어 껐다.
“하늘에서 아들이 다 들었어.”
청년들은 마음 밖으로 소원을 꺼내지 않았지만 은혜씨는 알았다. 아들의 것과 다르지 않을 소원. 소원 같지 않은 소원들. 누군가에겐 공기처럼 당연한 것을 “소원”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우스워질 것 같은 소원들. ‘푸른 봄’처럼 피어야 할 나이에 겨우 그것을 소원으로 품어야 하는 청춘들이 은혜씨는 안쓰러웠다. “처음으로 희망이 보였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소멸해버린 아들이 애달팠다. 아들의 소원은 ‘평범’이었다. ‘특별’은 욕심내지도 않았다. 다만, 단지, 오직, 그저, 평범에만 가닿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 소원이 세 청년에겐 애쓰지 않아도 주어지는 공기 같은 것이 되길 태완(몽골명 타이왕) 엄마 은혜씨는 촛불을 불며 빌었다.
“오늘도 아들하고 같이 왔어.”
행사(7월23일) 시작 전 은혜씨가 마주 앉은 마리나, 아셈, 아이샤에게 태완을 소개했다. 태완은 은혜씨 앞 테이블 위에 앉아 후배들과 인사했다. “덩치 산만 한” 태완이 엄지손가락만 한 병 안에 있었다. 팥알 크기 구슬들의 모습으로 한명 한명 눈을 맞췄다. “아들과 여행하고 싶다”는 은혜씨의 바람에 유골을 안치한 사찰에서 태완의 사리를 병에 넣어 줬다. 은혜씨는 어디를 가든 늘 태완을 데리고 다녔다. 서울, 경기도, 경상도에서 온 세 후배를 전북에서 생을 다한 태완이 환영했다.
“언제든지 돌아와도 돼! 집이란 그런 곳입니다.”
오후 5시. 사단법인 이주민과함께(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교육실에서 조병준 이사장이 태완의 이름을 딴 ‘집’의 건축 과정을 설명했다.
“집은 쉬어가는 곳이고, 너무 힘들면 와서 울어도 되는 곳이고, 3박4일 잠만 자도 되는 곳입니다. 그렇게 힘을 얻으면 다시 문을 열고 나가면 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하는 이주배경청년들에게 집이 되어주자. 그 마음이 모여 지은 집이 ‘듬직한 강태완 기금’(kangtaewanfellowship.org)입니다.”
‘집’은 태완이 ‘엄마’와 더불어 가장 그리워한 단어였다. ‘내 나라’로 믿어온 한국을 떠나 ‘낯선 나라’ 몽골로 자진 출국(법무부 정책)했던 그가 경기 군포의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그 단어들을 붙잡고 버텼다. 8개월 뒤 인천공항(☞23회 ‘공항 감옥’)으로 귀국했을 때 태완은 “순수 외국인”(대학 합격 통지서에 찍힌 전형 유형)으로 공인돼 있었다. 만 5살에 몽골에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그가 조건부 거주비자(인구감소 지역 5년 근무)를 받은 지 5개월 만에 산업재해(2024년 11월8일)로 목숨을 잃었을 때(당시 32살) 그 집도 무너졌다. 아들이 그토록 돌아오려 했던 집을 비워두고 은혜씨는 아들이 안치된 전북 익산의 병원 옆에 방을 잡았다. 아들이 일했던 김제의 특수장비차량 회사를 오가며 싸웠다.
태완의 장례를 치른 뒤 은혜씨는 아들 생전엔 떠올린 적 없는 집을 상상했다. 소원 같지 않은 소원조차 삼켜야 하는 청년들에게 아들의 꿈을 새긴 집을 지어주고 싶었다. 태완의 죽음 이유를 밝히는 싸움에 힘을 보탰던 시민들 성금이 집의 주춧돌이 됐다. 대책위 활동과 장례에 지출하고 남은 성금 위에 태완이 사후 수상한 제6회 노회찬상 상금을 올렸다. 아들의 산재 보상금도 벽돌로 쌓았다. 엄마에게 태완은 몸집만큼이나 듬직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후배들에게도 듬직한 선배가 되길 바라며 기금 이름을 붙였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출범식이었다.
“먼저 아드님을 잃으신 슬픔 속에서도 기금을 만들어 주신 어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금의 첫 수혜자(‘듬직지기’) 중 한명인 아이샤가 소감문을 읽으며 은혜씨에게 인사했다. 2024년 봄 “자동차 회사 연구원이던 태완 형을 만나 진로 조언을 받은” 아셈은 “형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마리나는 “건강보험료가 체납되고 밀린 공과금에 끼니도 거르기 일쑤이던 제가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강태완 기금에 감사”했다.
마법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며 대한민국에서 ‘없는 사람’이어야 했던 태완이 비자를 수령하며 ‘있는 존재’로 인정받는 순간 마법처럼 표정이 바뀌었다. 잎맥을 타고 도는 물처럼 여유가 몸을 타고 실시간으로 번졌다. 평소 없던 웃음이 주눅을 밀어낸 첫 얼굴을 보는 일은 신비로웠다.
마법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일을 막 시작한 회사의 명함을 꺼내며 태완은 “행복하다”(사망 5개월 전)고 했다. “불안하다”와 “막막하다”를 반복하던 그의 입에서 처음 듣는 단어는 생경하면서도 싱그러웠다.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극도의 무기력에 시달렸던 그가 거주비자를 받고 “하루하루가 설렌다”는 말을 했다. 마법은 기적을 일으키는 불가사의한 힘이 아니었다. 또래 한국인들에게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자격’은 숨이자 호흡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마리나, 아셈) 한국에서 성장했어도(태완, 아이샤) ‘없는 사람’인 청년들에게 필요한 마법이란 단지 숨 쉬는 것이었다.
마법이라고 믿었던 기만이 있었다.
숨이 돈다고 먹을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한국 사회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위험들로 가득하다(죽음의 중대재해 여부는 2주기가 다가오는 지금까지 수사조차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태완은 가장 아프게 일깨우고 떠났다. 그 사실은 ‘체류자격 있는’ 세 청년의 삶을 마법도 통하지 않는 현실로 몰아붙였다.
마리나는 부모의 동시 강제출국 뒤 하루 한끼밖에 먹지 못하는 극단적 궁핍에 시달렸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우울로 병원에 실려 갔다(기금에서 체납 대출금과 건보료, 병원비, 생활비 지원). 아버지가 다치면서 아르바이트가 절박해진 아셈은 ‘외국인’ 학생 채용을 꺼리는 고용주들(표준근로계약서·사업자등록증 등의 서류 지원과 출입국사무소 승인 의무) 탓에 속이 타고 말라갔다. 석달 사이 체중이 10㎏ 줄었다(등록금과 생활비 지원). 수시 전형으로 1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합격한 아이샤는 유학비자 신청 서류를 발급받으려면 외국인 전형으로 재지원하라는 말을 듣고 절망했다. 수시 합격을 포기하면 장학금을 받지 못해 공부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체납 건보료와 생활비 지원).
“태완이는 엄마에게 아주 듬직하고 다정한 아들이었습니다.”
병 속 아들에게 눈길을 주며 은혜씨가 인사말로 세 청년을 응원했다.
“맛있는 거 있으면 엄마랑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엄마한테 영화를 보여줬어요. 여러분도 부모님에게 듬직한 자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태완이가 한국 국적을 받아서 한국에서 살고 싶어 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마법 같은 순간엔 마법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태완이 진로 상담을 해준 아셈은 2년 사이 훌쩍 자라 180㎝를 넘었다. “태완 형 도움으로 생활의 짐을 덜고 학업에 조금 더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아이샤는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분야의 개발자”를 꿈꿨다. “언젠가는 강태완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과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더 큰 꿈을 품었다.
“아, 이런 날은 사회성 없으면 안 되죠.”
우울증과 영양실조로 입원 치료를 받은 마리나는 출범식에서 가장 밝은 얼굴을 보여줬다. “때와 장소에 따라 억지로라도 사회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은 회복됐다. “기금 덕분에 건강보험이 살아나서 처방 약을 받아 꼬박꼬박 복용” 했다. “밥도 하루 두끼 이상은 먹을 수 있게” 됐다. 가방에 삶은 달걀을 갖고 다니며 “최소 단백질”을 채웠다. 은혜씨와 연락처도 교환했다.
태완이 세상에 없어 탄생한 기금이었다. 그 기금의 부축을 받아 일어선 후배들이 그의 이름으로 한데 모인 시간은 태완이 선물한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케이크를 자른 은혜씨 앞에 꿈이 꺾인 아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은혜씨가 케이크를 세 청년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꿈을 꿔야 해. 젊은 사람은 꿈 없으면 힘들어. 부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요. 아들이 도와줄 거야.”
그리고 부탁했다.
“강태완을 기억해줘요. 여러분처럼 바르게 성장했고, 열심히 살았던, 사랑하는 우리 아들을 기억해주세요.”
이 세계에 필요한 것은 마법이 아니라 마법에 책임을 미루지 않는 사회였다.
이문영 | 이슈팀 기자. 책 ‘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루카스’ 등을 썼다. 세기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진 못해도 누구든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小說)의 주인공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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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자격’을 인정받은 적 없는 이야기들이 글이 되고, 읽히고, 연결될수록 언어와, 기록과, 서사의 틈들도 조금은 메워질 것이라 믿는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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