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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에는 언제나 노래가 있었다. 사람들은 전쟁터로 떠나며 노래했고, 포화 속에서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노래했다. 승리를 기뻐하며 부른 노래도 있었고, 죽은 전우를 기억하거나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부른 노래도 있었다. 때로는 전쟁과 아무 관계 없이 태어난 노래가 뜻밖의 사건과 만나 전혀 다른 의미를 얻기도 했다. ‘War & Song’은 그 이야기들을 따라간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노래 속엔 미처 알지 못했던 전쟁의 역사가 숨어 있다. <편집자말> ▲  미얀마 반쿠데타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군중을 향해 세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위로 솟은 세 손가락은 군부 독재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Myanmar Pressphoto Agency (MPA) 제공 ⓒ MPA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시민들은 집에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항의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군부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업무를 거부했고, 교사들은 붉은 리본을 달고 교정에 모여 "불법적으로 권력을 빼앗은 군부의 쿠데타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2월 8일 양곤에서는 나이와 성별, 직업을 넘어 시민들이 거대한 행진을 이루었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도로와 육교 위까지 빼곡히 채웠고, 서로 다른 옷차림의 군중 위로 저마다 들어 올린 손팻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도자들을 석방하라. 우리의 표를 존중하라. 쿠데타를 거부한다." 그 거리에서 저항은 노래가 되기도 했다. '평화를 연주하는 음악인들'이란 손 글씨 아래 시위 현장에서 모인 연주자들은 작은 악단을 꾸렸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악기를 한 손에 든 채 다른 손으로 연주를 이끈다. 플루트와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변 사람들이 목소리를 보탠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트웨 띳사'(Thway Thitsar·피의 맹세), 1988년 민주항쟁 당시 만들어진 노래였다. 이 장면을 담은 영상이 그해 2월 17일 영어 자막과 함께 유튜브에 올라왔다. '음악인들이 시위 참가자들에게 힘을 주고, 해외에도 노래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정확한 촬영 날짜와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 2021년 2월 어느날 미얀마 반쿠데타 시위 현장에서 음악인들이 바이올린과 플루트로 연주를 시작하자 시민들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1988년 민주항쟁 이후 탄생한 저항가요 '트웨 띳사'(피의 맹세)다 바다신2 . 2021년 2월 17일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으로, 정확한 촬영 날짜와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시위를 취재한 미얀마 언론인 몬 몬 먓은 태국 매체 <카오솟 잉글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드럼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노래했고, 집회가 시작될 때면 흔히 '트웨 띳사'를 첫 곡으로 불렀다고 기록했다. 젊은이들은 인쇄한 가사를 돌려 보거나 부모에게 들었던 선율을 떠올리며 노래를 익혔다. 1988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이들이 거리에서 부모 세대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선거로 뽑은 정부를 빼앗긴 날 군부는 새 의회가 개원할 예정이던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석 달 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했지만, 군부는 의회 개원을 몇 시간 앞둔 새벽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정부 주요 인사들을 구금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대규모 선거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결과를 뒤집을 만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군부는 2021년 쿠데타 이전에도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었다. 2008년 만들어진 헌법은 의회 의석의 4분의 1을 선거 없이 군인들에게 배정했다. 개헌에는 의석 4분의 3이 넘는 찬성이 필요해 군부의 동의 없이 헌법을 바꾸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군부는 그 제도 안에서 누리던 특권에 그치지 않고 선거 결과를 무력으로 뒤집어 버렸다. ▲  2021년 2월 8일, 양곤의 한 민간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이 세 손가락 경례로 쿠데타에 항의하고 있다. 군부에 반대하는 저항은 거리뿐 아니라 시민들의 일터에서도 이어졌다. ⓒ Maung Sun / 위키미디어 공용 시민들에게 쿠데타는 2011년 이후 제한적이나마 넓혀 온 정치적 자유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시민들이 되찾으려 한 것은 특정 지도자의 자리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행사한 한 표와 그 표로 정부를 선택할 권리였다. 처음엔 평화적 저항이었다. 시민들이 들어 올린 세 손가락은 군부 독재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영화 <헝거 게임>에서 유래해 태국의 민주화 시위에서도 쓰인 저항의 상징이다. 시위대는 자신들이 투표로 선택한 정부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군부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일터를 떠나는 시민불복종 운동이 확산됐고, 사람들은 거리를 행진하고 노래하며 쿠데타에 맞섰다 바다이야기게임이용방법 . 이 투쟁은 '봄 혁명(Spring Revolution)'이라 불렸다. 2월에 시작된 항쟁에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었다. 시민들이 바란 것은 단순히 쿠데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선거를 치른 뒤에도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고 언제든 권력을 빼앗을 수 있다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시위대는 군부가 정치에서 손을 떼고 여러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새로운 나라를 요구했다. 그 거리에서 항쟁의 노래 '트웨 띳사'가 다시 불리기 시작했다. 부모 세대에게는 30여 년 전 군부의 유혈진압과 투쟁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였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지금 자신들의 싸움과 함께하는 노래였다. 이 노래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려면 1988년, 군부의 유혈진압을 피해 학생들이 숨어들었던 국경지대로 돌아가야 한다. 촛불 아래에서 만들어진 저항가 1962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미얀마 군부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독재체제를 유지했다. 이에 맞서 1988년 8월 대규모 민중항쟁이 일어났지만, 군부는 시위를 무력진압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과정에서 약 30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했다. 살아남은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태국과의 국경지대로 피신했다. 음악인 흐뚜 에인 띤(Htoo Eain Thin)과 가수 문 아웅(Mun Awng)도 그곳에서 저항을 이어 갔다. 흐뚜 에인 띤은 1986년 첫 음반을 발표해 이름을 알린 싱어송라이터였다. 문 아웅은 국경의 메탈레이 숙영지에서 자신이 말라리아를 앓고 있을 때, 흐뚜 에인 띤이 촛불 아래 밤새 곡을 썼다고 회고했다. 다음 날 겨우 몸을 추스른 문 아웅에게 흐뚜 에인 띤은 하모니카를 불며 새 노래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이름은 '트웨 띳사', '피의 맹세'다. 첫 가사를 따 '중대한 때가 왔다'는 제목으로도 불린다. "우리의 피로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함께 흘린 피를 기억하고 싸움을 이어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국경으로 밀려난 학생들에게는 어제 곁에 있었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이었을 것이다. 문 아웅은 1992년 태국 방콕에서 녹음한 앨범 <평화를 위한 투쟁>(Battle for Peace)에 이 노래를 수록했다고 회고했다. 외국에서 녹음된 노래가 미얀마 시민들에게 닿기까지는 또 다른 사람들의 손이 필요했다 릴게임주소 . 자유롭게 음반을 들여오거나 공연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노래가 녹음된 테이프를 몰래 가지고 들어오다 발각되어 투옥되거나 고문을 받는 일도 허다했다. 문 아웅은 인사이트 미얀마(Insight Myanmar)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당시 노래들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미얀마로 가져가는 일이 위험하고도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사람들은 테이프를 짐 밑바닥에 숨겨 운반했고, 발각될까 봐 땅에 묻어 두기도 했다. 국경을 건넌 노래는 누군가의 손에서 다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전해졌다. 흐뚜 에인 띤은 민주화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지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노래는 2021년 군부에 맞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애창곡이 됐다. 평화시위를 벌이던 청년들이 총을 든 이유 군과 경찰은 파업과 행진, 노래로 이어진 비폭력 저항에 발포와 체포로 응답했다. 집회에서 친구를 잃거나 쫓기는 처지가 된 젊은이들은 도시를 떠났다. 학생과 회사원,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저항 세력의 거。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무기를 들었다. 쿠데타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들이 세운 민족통합정부(NUG)는 2021년 5월 5일 시민방위군(PDF) 창설을 선언했다. PDF는 오래전부터 군부와 싸워 온 소수민족 무장조직과 협력했다. 다만 군부에 맞서는 모든 부대가 하나의 지휘체계에 속한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결성된 조직과 각자의 역사를 지닌 소수민족 무장세력도 함께 싸우고 있다. ▲  소총을 휴대한 미얀마 시민방위군(PDF) 대원들이 잠시 쉬고 있다. 2026년 9월 현지 매체 MPA 보도에 따르면, 민족통합정부(NUG)의 명령체계에 속한 병력은 PDF 정규병력 약 6만 명과 지역방위조직 대원 약 4만 명을 합쳐 약 10만 명이다. PDF는 NUG 국방부와 PDF 총사령부의 지휘를 받으며 소수민족 무장조직들과 협력해 군부와 싸우고 있다. 사진가 Myo Htet Hla Thaw(묘탯라떠) 제공 ⓒ Myo Htet Hla Thaw 군부는 무장한 저항세력뿐 아니라 반대운동에 참여한 사람들도 체포해 처형했다.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지만, 혁명이 심장에 있다는 것은 모른다"고 노래했던 저항 시인 켓티(Khet Thi)는 2021년 5월 8일 연행된 뒤 바로 다음날 몸 속 장기가 제거된 시신으로 가족에게 돌아왔다. 2022년 7월, 군부는 전직 국회의원이자 래퍼였던 표 제야 떠와 1988년 민주항쟁에 참여했던 활동가 쪼 민 유 등 4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 . 군사법정은 이들에게 테러 관련 혐의를 적용했지만, 국제앰네스티는 재판이 심각하게 불공정했으며 군부가 사형을 반대세력을 박해하고 위협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군부는 부족해진 병력을 채우기 위해 대규모 징병에 나섰다. 2024년 2월, 2010년에 제정됐지만 그동안 시행되지 않았던 국민군복무법을 발효한다고 발표했다. 징병 대상은 18~35세 남성과 18~27세 여성이다. 미얀마 동남부의 주민 피해를 기록하는 카렌 인권그룹(Karen Human Rights Group·KHRG)은 2024년 1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접수한 제보를 분석해 강제 모집 과정에서 자의적 체포와 협박, 신체적 폭력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본인의 뜻에 반해 군부 병력에 편입된 사례도 확인했다. 젊은이들 중에는 징병을 피해 마을을 떠나거나 태국 국경을 넘는 이들도 있었다. 전투 양상도 달라졌다. PDF는 여러 지역에서 군부를 몰아내고 미얀마 국토의 20%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군부는 공군력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잃었던 마을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무력충돌 사건을 수집·분석하는 국제 조사기관 ACLED(무력충돌 위치·사건 자료 프로젝트)는 2026년 들어 군부가 일부 요충지를 다시 。령했으며, 사가잉·마궤·만달레이 등 미얀마 중부에서 전투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어느 한쪽의 승리도 장담하기 어려운 전쟁은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남겼다. ACLED가 올해 7월 공개한 집계에 따르면, 2021년 2월 쿠데타 이후 분쟁 관련 사망자는 10만 114명에 이른다. 살아남은 주민들의 삶도 무너지고 있다. 유니세프가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미얀마 국내에서 집을 떠난 사람은 약 380만 명이고 1620만 명은 인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공습과 전투를 피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일터와 학교도 잃었다. 전선이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는 다시 피난길에 오른다. '트웨 띳사'는 이제 시위 현장을 넘어 다른 곳에서도 흐른다. 군부에 반대하다 재판받은 학생들은 법정에서 교도소로 이송되는 길에 이 노래를 불렀다. 전사한 PDF 대원의 장례식에서는 전우들이 이 노래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1988년 국경지대에서 시작된 다짐은 다른 장소, 다른 세대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노래를 도둑질한 군부 온라인릴게임 2026년 5월, 군부가 소유한 <먀와디TV>는 '트웨 띳사'의 선율과 구성을 그대로 가져다 쓴 뮤직비디오를 방송했다. 제목은 '군인의 붉은 피, 앞으로 전진하라'였다. 원곡의 "우리의 피로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가사에서 '우리'는 군부에 맞선 사람들이었다. 군부는 그 피를 자기 군인들의 것으로 바꾸었다. 자신들이 흘리게 한 피를 기억하는 노래를 자신들을 찬양하는 노래로 뒤집은 것이다. 뮤직비디오 제작자 측은 오히려 '트웨 띳사'가 1960년대 군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문 아웅은 그런 원곡이 있다면 음원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제작자 측은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  2021년 2월 쿠데타를 일으켜 미얀마의 최고 권력자가 된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총사령권. 그는 5년 간의 군정을 끝내고 지난 4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실질적인 야당이 배제된 선거와 군부 중심의 정치체제를 통해, 쿠데타로 장악한 권력을 이어 가고 있다. 군부는 선거로 뽑힌 정부를 무너뜨리고 시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몰았다. 이제는 그들이 오래 지켜 온 노래마저 가로채려 했다. 선율을 빌려 가사를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누가 피를 흘렸고 누구를 기억해야 하는지, 노래가 전해 온 역사까지 뒤바꾸려 한 것이다. '트웨 띳사'는 군부의 방송국에서 태어난 노래가 아니다. 탄압을 피해 국경의 밀림 속으로 숨어들었던 청년들이 처음 불렀고, 수십 년 뒤 쿠데타에 맞선 시민들이 다시 불렀다. 그러니 가사를 바꾼다고 노래에 담긴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 미얀마 시민들이 흘린 피는 군부가 자신들을 찬양하는 데 내세울 명분이 아니었다. 스스로 정부를 선택하고 억압 없이 살아가려다 치른 값비싼 대가였다. 1988년의 노래가 2021년 이후 다시 불리는 것은 그 간절한 바람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웨 띳사'를 함께 부르는 사람들은 먼저 쓰러진 이들을 기억하며, 자신이 혼자 싸우고 있지 않다는 용기를 얻는다. 부모 세대의 다짐은 그렇게 다음 세대가 민주화를 향한 싸움을 이어 갈 힘이 됐다. 언젠가 저항의 구호 없이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까지, '피의 맹세'는 자유를 바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어질 것이다. * '트웨 띳사'(피의 맹세)를 소개하는 영상으로, 유튜브에 'Thway Thit Sar, Revolution Song'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됐다. 1988년 민주항쟁 이후 탄생한 이 노래는 군부에 맞선 사람들의 희생과 연대를 담고 있다.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에도 시민들이 함께 부르며 민주화를 향한 다짐을 이어 갔다. 됐다. 언젠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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