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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두고 가기로 했잖아.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피란길에 생필품을 가져가려는 아내에게 남편이 쏘아붙인다. 전쟁터에서 부부싸움의 주제는 무엇을 더 가질지가 아니라 무엇을 더 버릴지다. 피란길에 물을 못 구해 자동차 냉각수를 마시거나 자기 소변을 마셔야 했던 이들도 있다. 전쟁은 매 순간 인간 존엄의 요소를 어디까지 빼앗을지 시험한다. 고향을, 식량을, 물을, 육체적 순결을, 가족을, 그리고 끝내는 목숨을.
프랑스 독립 언론인 샤를 앙프타즈와 올리비에 조바르가 수단 내전의 참상을 담은 영상 보도 ‘수단: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로 5일 힌츠페터상 특집상을 수상했다. 힌츠페터상은 1980년 5월 광주 항쟁을 보도한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기념하는 상으로, 매년 민주주의·인권·평화의 가치를 보도하는 언론인에게 수상한다. 샤를은 지난해 12월 3주간 수단에 입국해 ‘잊힌 전쟁’이라 불렸던 수단 내전을 가까이서 담았다. 수상을 위해 한국을 찾은 샤를을 지난 2일 서울 신촌 인근 한 공유 공간에서 만났다.
“2023년 수단 내전이 시작된 지 사흘 만에 약 6만명이 사망했어요. 가자 전쟁 2년째에 나온 사망자 숫자와 맞먹죠. 물론 가자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루는 저널리스트들께도 큰 존경심을 갖고 있지만 수단에서도 엄청난 사상자가 나오는데 누구도 이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프랑스에서도 작은 뉴스로만 다뤄졌고요.”
수단 내전은 수단 정부군과 신속지원군(RSF)이 3년 전 국가 통치권을 놓고 대치하면서 시작됐다. 이제까지 최소 15만명이 사망하고 1200만명이 피란길에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관심은 매우 저조했다. “수단이 서방세계와 역사적으로나 자원 개발로나 연결고리가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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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도 있고요. 내전을 일으킨 군벌도 과거엔 협력 관계였다가 권력 다툼으로 바뀐 상황이어서 상황이 복잡했죠. 이런 。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세계적으로 잊힌 전쟁이 된 것 같습니다.”
샤를과 동료들은 내전 상황에서 하늘의 별따기라는 취재 비자 발급에 성공했다. 그 길로 피란민촌 알다바로 들어가 65명 이상의 주민을 인터뷰했고 이 가운데 10여명의 사연을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자녀를 잃거나 군인에 강간을 당하거나 폭격에 부상당하거나 굶주린 사람들이었다. 모두 눈동자에 초。이 없었고 말과 말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으며 자신이 겪은 고통밖에는 꺼낼 얘기가 없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이 전쟁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체감케 했다”고 샤를이 말했다.
샤를은 전쟁으로 어머니를 모두 잃은 오투르라는 아이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그냥 평범한 아이처럼 놀던 오투르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시장에 있던 어머니가 폭격을 맞고 며칠 만에 사망했는데 마지막 유언이 ‘동생 잘 대해줘라, 싸우지 말고’였습니다. 이 말을 평생 간직할 수밖에 없는 오투르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저도 감정적으로 굉장히 동요했어요.”
어린이들은 학교를 뒤로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온 가족이 1∼2유로를 벌려고 시장에서 하루종일 설거지하고 물건을 날랐다. 아이가 행여나 보챌까 부모는 매섭게 굴었다. “시장에 나가 일해라. 힘들다는 소리는 꺼내지도 말고.” 아이들은 “전쟁 전에는 학교에 갔다”는 말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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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은 “이것이 바로 전쟁의 현실”이라며 “전쟁이라고 하면 전투 장면을 많이 떠올리는데, 사실 전쟁의 일상은 음식을 못 구하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그간 샤를은 종군기자로서 군인을 주로 취재했다. 군인은 ‘내가 죽지 않으려면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세뇌로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민간인들은 전쟁을 바라보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존과 도망입니다.” 그러나 민간인의 생존은 필연적으로 군인과 연결돼 있다. 군인이 민간인을 고의로 공격하기도 하고 적군을 조준하려다 마을을 오폭·오사격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다큐멘터리에는 군용 드론이 군 차량을 조준하려다 공동장례를 치르던 마을 주민 50여명을 폭사시킨 사건이 나온다. “장례식으로 모두가 슬퍼하고 있는데 군 차량이 와서 ‘드론 공격을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그 직후에 공격이 일어났어요.”
공중전은 민간인과 군인을 구별하지 않는다. 수단 정부군과 신속지원군은 드론을 전투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굉장히 무차별적이죠. 공중에서 폭격하면 민간인과 군인을 제대로 구별할 수가 없어 더 큰 사상자를 낳을 위험이 있습니다.” 드론의 개입이 전쟁을 장기화하는 문제도 크다. “(존재가 노출되는) 전투기 공습과 달리 드론은 더 손쉽고 은밀하게 영공을 지배할 수 있죠. 수단처럼 비슷한 힘을 가진 두 세력이 대결하는 경우엔 드론이 전쟁을 더 과열시키고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무기가 작고 저렴해지며 전쟁의 숨은 ‘뒷배’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아랍에미리트는 수단 신속지원군에 전투용 드론을 공급하는 ‘대리인’으로 불리지만, 공식적으로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피로 얼룩진 수단에 다른 미래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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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절망의 목소리를 담은 보도는 마지막에 이르러 변화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학살 생존자 이사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도시인 하르툼으로 피해 가족과 얼싸안고 눈물 흘리는 장면이다. 이사는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할 때 죽은 척 위장해 홀로 살아남았다. 그 길로 폭격 위험이 도사리는 도시 엘오베이드를 떠나 피란길에 오른다. 폭격과 총알 세례를 피해 마침내 안전한 곳에 도착한 이사는 감격에 겨워 웃는다. “학살에서 살아남아 하르툼에 도착한 남자의 이야기로 다큐를 끝내는 게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수단에도 새로운 미래가,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강력한 메시지였죠.”
샤를은 수단의 참상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이 더 나오길 바란다. “보도가 미진한 이슈를 취재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저널리스트 공동체’ 감각을 갖는 것입니다. 기사를 본 기자들이 무언가를 느끼고 ‘나도 가서 취재해야겠다’는 마음을 갖는 거지요. 저널리즘에서는 릴레이 경주하듯이 한 명이 시작해서 다음 사람이 이어받고 또 이어받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요. 실제로 수년 전 제 기사를 본 젊은 기자가 지금 수단에서 내전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부담을 조금 덜어주며 함께 보도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는 언론 보도가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사람들에게 존엄성을 찾아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전쟁을 겪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그들 또한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저널리스트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나아가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는 이런 보도가 변화를 촉구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전세계가 앞으로만 내달리느라 약자들을 탈락시키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포착하고 기록해 언젠가는 현실이 바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믿습니다.”
영상 보도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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