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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 건물은 뭐지?'
허허벌판 위에 특이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선이 어찌나 곱고 유려한지, 마치 장인이 빚어 놓은 백자 접시 같았다. 어떤 건물인지 궁금했지만 일정이 빠듯했다. 왼쪽으로 쏠리는 마음을 간신히 바로잡았다.
마흔 중반을 지나며 직업은 도서관 노동자로 바뀌었다. 직업이 바뀌자 일상도 달라졌다. 쉬는 날이면 맛집과 옷집을 찾아다니던 내가 전국의 도서관을 여행하듯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 국립세종도서관 책을 닮은 아름다운 도서관
ⓒ 이인자
그러다 '국립세종도서관'을 언제 한번 가볼까 싶어 자료를 찾다가 건물 사진을 보는 순간 '어?' 하는 탄성이 나왔다. 오래전 내 걸음을 멈추게 했던 그 건물이었다. 그 건물이 도서관이었다니. 무심코 고개를 돌렸던 그날의 시선이 어쩌면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미리 가리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 9월 29일, '국립세종도서관'을 찾았다. 고속도로 운전이 서툰 나에게 세종시로 가는 길은 마냥 편안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때 내 시선을 멈추게 했던 건물을 다시 찾는다는 설렘이 운전대를 잡게 했다. 무사히 도착하고 보니 그 유려한 곡선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묵직한 고요가 흐르는 공간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설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엄숙할 만큼 고요했기 때문이다. '국립'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정책 자료를 다루는 도서관이기 때문인지 공간 전체에 묵직한 기운이 감돌았다.
도서관에서 일하며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민원 중 하나가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런 정숙 지도조차 필요 없어 보였다. 고요가 고요를 압도하고 있었다.
서가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 많은 책 사이를 걷다 독특한 책의 배가 방식에 발걸음이 멈췄다. 맨 아래 칸과 그 위 칸의 책들이 책 등을 위로 향한 채 누워 있었다. 책의 방향을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제목과 청구기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 특이한 배열의 서가 책 등이 위로 향하니 잘보이네
ⓒ 이인자
도서관에서 일하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서가 맨 아래 칸에 책을 꽂거나 찾는 일이다. 무릎을 꿇고 확인해도 청구기호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고충은 이용자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책의 방향을 달리 한 배치는 미관상 아주 반듯해 보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일하는 사람과 책을 찾는 이용자 모두를 위한 다정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복본(같은 책)이 넉넉하다는 。도 인상적이었다. 같은 책이 여러 권씩 꽂혀 있어 다른 도서관에서는 예약을 걸어두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책도 이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책이 여유롭게 사람 사이를 오가게 하는 일, 그리고 그 책을 오래도록 보존하는 일. 그것이 국립도서관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 여겨졌다.
'국립세종도서관'은 정책 도서관으로 세워졌지만, 일반인들에게도 명소가 된 데에는 아름다운 외관뿐 아니라 드넓은 호수 공원을 품고 있다는 。도 한몫했을 테다. 정오까지는 눈 부신 햇살 때문에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어 호수가 보이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 블라인드가 열린다고 하니, 마치 노을을 보기 위해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호수가 보이는 순간을 기다렸다.
책의 유려한 능선을 닮은 건물
드디어 오후 1시, 대형 블라인드가 올라갔다. 창밖으로 푸른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일까, 무성한 나무들 탓에 호수가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호수 전망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4층 카페로 올라가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일 듯했다.
이곳만의 특징인 2층 정책 자료실에는 일반 공공도서관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료들이 빼곡했다. 서가 앞에 서서 문득 이 많은 자료를 과연 누가 볼까 싶다가도, 나에게는 무심한 수년간의 연구 자료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열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국립세종도서관 아름다운 호수 전먕
ⓒ 이인자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며 처음 보았던 '백자 접시'의 풍경을 다시 떠올렸는데 사실 그건 오해였다. 이 건물은 책의 페이지가 부드럽게 넘어가는 모습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했다. 그것을 알고 나니 하늘을 향해 부드럽게 들려 올라간 양 끝을 거닐 때면, 마치 책장의 유려한 능선에 오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단을 따라 끝까지 올라 한쪽 창 너머로 바라본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층층이 펼쳐진 멀티미디어 공간과 옛 사랑채의 멋을 낸 독서 공간까지, 날렵한 곡선 속에 정갈하게 들어차 있었다. 1층으로 내려오니 북카페 근처 자판기에서 다양한 종류의 과자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공공도서관 자판기에서 과자를 보기는 드문 일이라 유심히 바라보다, 지하에 어린이자료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의 가장자리가 달큰한 생을 꿈꾸며
어린이실을 나오면 호수공원 산책길과도 연결된다. 집으로 향하기 전 주변을 산책하다 계수나무가 유난히 많이 심겨 있는 것을 보았다. 이토록 많은 계수나무를 심은 건 늦가을 도서관 주변을 달큰한 향으로 채우려는 뜻이었을까.
▲ 곡선의 공간 지식으로 가득 채우다
ⓒ 이인자
혹시나 싶어 계수나무 잎사귀에 코를 박고 깊은 숨을 쉬었지만, 아직 달고나 냄새를 닮은 달큰한 향은 나지 않았다. 잎이 바싹 마르는 계절의 가장자리가 아직은 먼 까닭이다. 푸른 잎을 다 내려놓은 뒤에야 제 향기를 내는 계수나무를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 생의 가장자리에도 이런 달큰한 향이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을 켠다. 세종시라면 어디로 향해도 중간쯤일까.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자꾸만 열리는 마음을 간신히 다잡는다. 집 주소를 입력한다. 차가 출발한다. 국토의 가장자리로, 내 삶의 가장자리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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