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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시작한 하모니카, 너무 좋아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하모니카로 클래식 무대에 서 온 하모니시스트 이윤석(34)을 지난 2일 문화일보 편집국에서 만났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모니카를 들고 서울대 음악대학 작곡과 실기 시험을 치러 합격했고, 노르웨이 음악원 개교 이래 첫 하모니카 전공생으로 유학했으며, 지휘자 금난새와 100여 차례 협연해 온 그는 국내에서 흔치 않은 정통 클래식 하모니카 연주자다.
‘어떻게 하모니카로 클래식 공연이 가능할까’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성인의 팔 길이만 한 ‘코드 하모니카’부터 클래식 연주에 주로 쓰는 크로매틱 하모니카까지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악기들을 가방에서 꺼내 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모니카라고 하면 문화권마다 떠올리는 모양도, 장르도 다르다. 한국에서는 민요나 동요 등을 많이 연주하는 표준화된 트레몰로 하모니카를, 미국에서는 컨트리 음악에 쓰는 작은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를, 유럽에서는 반음까지 내는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먼저 떠올린다. 국내 연주자 대부분이 실용음악을 전공하며 재즈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가운데, 이윤석은 크로매틱 하모니카로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길을 택했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결국 노르웨이서 세계적 거장 제자로= 피아노로 음악에 입문한 그가 하모니카를 만난 것은 초등학생 시절 동네 문화센터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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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열리는 수업을 일주일 내내 손꼽아 기다릴 만큼 이 작은 악기에 깊이 빠져든 소년은 중학생 때 이미 국제 대회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이를 진로로 삼을 길이 보이지 않았다.
특수목적고인 인천국제고에 진학한 뒤에도 음악을 향한 마음은 꺼지지 않았다. 하모니카 연주자가 되겠다고 하자 “그걸로 밥 먹고 살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걱정이 쏟아졌다. 부모님만은 묵묵히 그를 응원했다. 그는 “실패하더라도 제가 결정해서 실패하고 싶었다”면서 주변의 걱정이나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하모니카의 아름다운 음색을 더 많은 관객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대 음악대학의 문을 두드린 그는 작곡 전공 입시 실기에서 피아노가 아닌 하모니카를 연주해 합격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입학한 뒤 작곡과 연습실에서 낯선 소리가 새어 나오자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바로 연주자의 삶을 시작할 생각이었던 그는 대학에 들어간 직후부터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공연장과 클래식 기획사, 오케스트라에 수백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서울대 작곡과라는 이력 덕에 이따금 답이 왔다. 처음에는 직장인을 위한 성공회 정오음악회처럼 작은 무대부터 올랐고, 금호아트홀 영 아티스트에 지원할 때는 신청서에 하모니카를 고를 항목조차 없어 클래식 레퍼토리가 있다는 사실을 따로 메일로 설명하고서야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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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얻어낸 무대들을 거치며 지휘자 금난새를 만나 오케스트라 협연을 시작했다. 전통을 중시하는 클래식계에는 하모니카를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이도 적지 않았지만, “듣기 좋고 관객이 좋아하면 안 될 게 무엇이냐”는 금난새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100여 차례 협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클래식 하모니카 연주를 배울 데가 없었던 그에게 전환。은 노르웨이의 하모니카 거장 지그문트 그로븐이었다. 대학 1학년 때 그의 내한 공연을 본 뒤로 이윤석은 이메일로 그로븐에게 애정과 열정을 거듭 전하고, 그의 영상을 보며 혼자 맹렬히 연습했다. 그로븐이 한국을 찾을 때마다 레슨을 받는 일도 이어졌다. “1년에 한 번 레슨을 받는데 받을 때마다 연주가 극적으로 좋아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뒤 그로븐이 있는 노르웨이로 건너가 직접 사사하기로 결심했다. 하모니카 전공이 없던 노르웨이 음악원은 그의 열정에 힘입어 칠순이 넘은 그로븐을 정식 교수로 채용하고 전공의 길을 열어줬다.
스승은 제자에게 뜻밖의 당부를 했다. ‘제2의 지그문트’가 되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들숨과 날숨, 미세한 압력과 찰나의 리듬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는 하모니카는 애초에 두 사람이 같은 소리를 낼 수 없는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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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소리를 뿌리로 삼되 그 위에 자신의 호흡과 이야기를 얹는 것이 그가 찾은 방향이었다. 스승의 레퍼토리가 많았던 2023년의 첫 음반 ‘더 비기닝’과 달리 두 번째 음반 ‘하모니카 리사이틀’에서 그는 그로븐이 녹음한 적 없는 곡들에 도전했다. “참고할 음원이 없어 막막했지만 이윤석만의 새 길을 만들어간다는 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콜드 메일’ 보내며 무대 찾던 연주자, 세계 무대 심사위원으로= 유학을 마치고 막 무대에 서려던 즈음엔 코로나19가 입으로 부는 하모니카의 입지를 좁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100회가 넘는 오케스트라 협연은 물론 하프시코드·현악4중주·파이프오르간·타악기 앙상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성과 만나며 하모니카가 동요나 대중음악에만 머무는 악기가 아님을 무대에서 증명해 왔다. 2016년에는 금호영아티스트 사상 첫 하모니카 연주자로 독주회를 열었고, 지난해 11월에는 독일 트로싱엔에서 열린 세계 하모니카 페스티벌에 2005년 참가한 뒤 20년 만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아무리 좋아도 직업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은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그의 연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면서 인생을 걸어 봐도 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선례를 따르기보다 스스로 길을 내며 걸어온 그에게 후회는 없느냐고 물었다. “다른 길을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만큼 행복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이윤석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남의 말 대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던 선택인 만큼 후회하지 않는다고 빙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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