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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8 건대항쟁 40주년 기념제 조은주씨 영상인터뷰 지난 10월 31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10·28 건대항쟁 40주년 기념제’에서 조은주씨가 영상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재심개시 결정을 받았다.
ⓒ 정진만
1987년 2월 말, 차가운 바람 사이로 따뜻한 햇볕이 비치던 어느 날이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84학번 조은주씨는 집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에게는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몇 달 전 건국대학교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됐고, 수사 과정에서 폭행과 강압적인 조사를 겪었다. 법원에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어떠한 일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매일 마당에 나가서 구부려 앉아 있는 것이 저의 일상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날도 마당에 앉아 있던 조씨의 눈에 작은 무언가가 들어왔다.
"마당 구석 단단한 흙무더기 위에 하얗고 가느다란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새싹이었습니다. 쿵 하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올라온 작은 새싹이었다.
"언 땅 위를 뚫고 올라온 그 가녀린 새싹은 제게 알 수 없는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일상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조씨는 이제 자신에게 가해졌던 국가폭력의 진실을 법정에서 다시 밝힐 기회를 얻었다.
지난 10월 2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이 조씨에 대한 재심개시를 결정한 것이다. 그가 이 소식을 통보받은 날은 공교롭게도 건대항쟁 40주년인 10월 28일이었다.
민주화를 요구했던 학생들이 '공산혁명분자'가 되기까지
1986년 10월 28일, 전국 대학에서 모인 학생들이 서울 건국대학교에 집결했다. 이들은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권은 이들의 시위를 '건국대공산혁명분자난동사건'으로 규정했다. 경찰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건국대학교를 포위했고, 학생들은 3박 4일간 농성을 이어갔다.
진압 과정에서 학생 1525명이 연행됐고, 이 가운데 1288명이 구속됐다. 당시로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공안사건이었다.
민주화를 요구했던 학생들에게는 '공산혁명분자'라는 낙인이 씌워졌다. 일부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일부는 집행유예나 기소유예 등의 처분을 받았다. 학업이 중단됐고, 가족들도 오랫동안 그 여파를 감당해야 했다.
40년이 지난 2026년, 당시 유죄판결을 받았던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한양대학교 출신 박영일씨에 이어 서울대학교 출신 조은주씨에게 잇따라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두 사건 모두 당시 경찰의 영장 없는 연행과 48시간을 넘긴 불법구금이 재심을 개시할 중요한 근거로 인정됐다.
이는 무죄가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당시 수사기관의 위법한 행위가 확정된 형사판결을 다시 심리할 사유로 인정됐다는 。에서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10월 27일 열린 건대항쟁 관련 역사 토크 콘서트에서 패널로 참석한 박영일씨 지난 10월 27일 열린 건대항쟁 관련 역사 토크콘서트에서 박영일씨가 패널로 참석해 당시의 경험과 사건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 3월 법원으로부터 재심개시 결정을 받았다.
ⓒ 박시영tv 갈무리, 박영일
박영일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박영일씨는 1984년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사회과학 학습모임과 탈춤반 활동을 통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학생운동에도 참여했다.
1986년 10월 28일에는 학내 동아리연합회 대표로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그날 이후 그의 대학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박씨는 재심청구 과정에서 제출한 진술서에서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최루탄에 다리를 맞고 손가락을 다쳤으며, 연행되는 과정에서도 경찰의 구타를 당했다고 밝혔다.
경찰서에서는 학생운동의 배후를 추궁하는 조사가 이어졌다. 특히 새벽까지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과 폭행을 당했으며, 강압적인 조사 과정에서 돌을 던졌다는 진술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구치소에서도 수갑을 찬 채 구타당하고, 한겨울 이불도 없는 독방에 수용되는 등 가혹행위를 겪었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87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서울고등법원 제2-3형사부는 지난 3월 9일 박씨에 대한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법원은 1986년 10월 31일 영장 없이 연행된 박씨가 11월 5일 구속영장이 발부·집행될 때까지 불법체포·불법감금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수사 과정의 폭행과 가혹행위에 관한 자료도 재심개시 사유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검토했다.
박씨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재심개시 결정을 통보받았을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올해 3월 9일 재심개시가 됐다고 변호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믿기지가 않아서 몇 번을 물어보고 확인했습니다. 실감이 잘 안 났지요."
그는 아직 재심 본안 심리가 열리지 않았지만, 곧 시작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씨에게 재심은 자신 한 사람의 명예회복을 넘어서는 문제다.
"법정에 서게 되는 것은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이 벌인 사건 조작으로 침해당한 27개 대학 2천여 명의 명예회복의 첫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박씨는 석방 이후 6월 민주항쟁을 목격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왔지만, 가족들에게 남긴 부담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한평생 옳은 길로 살려고 했고 달려왔습니다. 다만 부모님과 형제들, 자식에게 부담이 됐던 것만은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는 다른 피해자들의 재심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종합적으로 사건을 다루어 진실이 낱낱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법부도 정의로운 판결로 역사적 판결을 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조은주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국가폭력은 기록돼야 합니다"
조은주씨가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지난 10월 31일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프라임홀에서 열린 건대항쟁 40주년 기념행사에서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조씨의 피해 경험을 담은 유튜브 인터뷰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그는 자신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84학번이라고 소개한 뒤, 1986년 건대항쟁 당시 경찰에 연행됐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40년 전 경찰서에서 불법구금, 진술 강요, 매일 반복되는 구타와 욕설은 저의 육신과 정신을 무너뜨렸습니다."
조씨는 1987년 2월 12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올해, 같은 법원에서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조씨가 다시 과거를 마주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몇 년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도 그는 망설였다고 했다.
"굳이 해야 할까.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과거의 고통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국민을 향해 행사한 폭력은 꼭 기록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씨에게 재심의 의미는 단순히 과거 유죄판결을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재심 결정의 의미는 그것이 국가 권력의 폭력인지도 모른 채 무너졌던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어 그는 "더 이상 국가 권력이 국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는 것, 그것을 지금이라도 알리고 바로잡는 것이 재심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평온한 삶을 지켜주는 따뜻한 국가권력을 다음 세대에 남기는 것이 자신들의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40년 전 마당 한구석의 작은 새싹에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던 그는 이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겨야 할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법원이 인정한 것은 영장 없는 연행과 불법구금
박영일씨와 조은주씨의 재심개시 결정에는 중요한 공통。이 있다.
당시 경찰이 학생들을 영장 없이 연행하고, 법률이 정한 시간을 초과해 구금했다는 .이다.
조씨의 재심개시 결정문에 따르면 그는 1986년 10월 31일 경찰에 연행됐지만, 구속영장은 11월 4일에야 발부·집행됐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이러한 구금이 당시 형사소송법상 절차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수사기관 관계자의 불법체포·감금 행위가 재심 사유에 해당할 수 있으며,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가 지나 유죄 확정판결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도 법률상 요건에 따라 재심개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씨 사건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영장 없는 연행과 48시간을 훨씬 초과한 불법구금 등을 재심개시의 근거로 인정했다.
다만 조씨가 증언한 반복적인 구타와 욕설 등 가혹행위는 피해자의 경험에 관한 진술이고, 법원이 이번 재심개시 결정에서 직접 판단한 핵심 사유는 불법구금이라는 。을 구분해야 한다.
재심개시 결정은 다시 재판할 기회를 인정한 것이지 무죄를 확정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재심 본안 재판에서 당시 형사판결의 유무죄를 다시 심리하게 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사건은 그동안 피해자들이 호소해 온 불법연행과 구금 문제가 사법 절차에서 다시 검토되고 있다는 。에서 의미가 있다.
재심의 문이 열렸지만, 모든 피해자가 재심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냐
문제는 건대항쟁 피해자 모두가 같은 법적 절차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다. 당시 연행된 학생들 가운데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기소유예나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람도 있다.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가 인정되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소유예·불기소 처분을 받은 피해자는 원칙적으로 재심을 청구할 유죄 확정판결 자체가 없다.
같은 사건에서 영장 없이 연행되고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겪었더라도 형사처분 결과에 따라 명예회복의 법적 경로가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과 국가배상 청구 가능성 검토, 특별법 제정 등 별도의 피해회복 방안이 중요하다.
개별 재심만으로는 당시 국가권력이 건대항쟁을 대규모 공안사건으로 규정한 경위와 수사·진압 과정의 국가 책임까지 모두 밝히기 어렵다는 .도 남아 있다.
▲ 10월 28일 진화위 앞에서 제3차 신청서 제출에 앞서 기자회견 ▶ 지난 10월 28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10·28 건대항쟁 피해자들이 제3차 진실규명 신청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 정진만
진실규명 신청 900여 명…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명예회복 요구
건대항쟁 피해자들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움직임은 최근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25년 5월 20일 건대항쟁 당시 불법구금 등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 80명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이후 제3기 진화위 출범에 맞춰 추가 신청이 이어졌다.
10·28건대항쟁계승사업회와 피해자들은 지난 4월 22일 1차 신청을 시작으로 9월 7일과 10월 28일 두 차례 추가 신청을 진행했다. 10월 31일 40주년 기념식 경과보고에서는 누적 신청 규모가 90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28일에는 국회박물관에서 '건대항쟁 법적 재심과 역사적 재평가, 그리고 현재적 의의를 묻다'를 주제로 국회 토론회도 열렸다.
건국대학교 민주동문회 청년건대와 김영배·정청래·김영진 의원(더불어민주당), 신장식 의원(조국혁신당), 손솔 의원(진보당)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개별 피해자의 재심을 넘어 사건 전체의 진상규명과 국가의 공식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제도적 방안이 논의됐다.
이어 10월 31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40주년 기념식에서는 '10·28 건대항쟁 특별법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준비위원회' 출범이 선언됐다.
피해자들이 추진하는 특별법은 사건 전체의 진상을 밝히고 국가의 책임을 규명하며, 재심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피해자들의 명예와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국가배상 역시 남은 과제다. 다만 재심개시나 진실규명 결정만으로 배상이 자동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개별 청구와 관련 법률, 입법적 해결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 건대항쟁계승사업회-특별법 제정 촉구 선언문 낭독 ▶ 지난 10월 31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10·28 건대항쟁 40주년 기념제’에서 건대항쟁 관련 단체 대표들이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정진만
40년 만에 다시 묻는 질문
1986년 건국대학교에 모였던 학생들은 민주화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연행되고 구속됐으며, '공산혁명분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날 이후 박영일씨는 대학에서 제적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신념을 따라 살아왔지만 가족들에게 남긴 부담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
조은주씨는 유죄판결 이후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지내다가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작은 새싹을 보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두 사람의 삶은 서로 다르지만, 국가폭력의 상처를 안고 40년을 살아왔다는 。에서 맞닿아 있다.
이제 두 사람에게 다시 법정에서 당시의 진실을 다툴 기회가 주어졌다.
박씨는 자신의 재심이 건대항쟁 피해자 전체의 명예회복을 위한 첫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조씨는 국가권력이 국민을 향해 행사한 폭력이 반드시 기록되어야 하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40년 전 한 대학생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언 땅에서 돋아난 가녀린 새싹이었다.
그 작은 새싹을 기억하는 조씨의 목소리는 이제 한 개인의 아픔을 넘어,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재심의 문은 열렸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고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40년 전 '공산혁명분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온 이들에게, 그 문이 진정한 명예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산경일보에도 실립니다. 필자는 1986년 10·28 건대항쟁 당시 고려대학교 학생(신문방송학과 4학년)으로 참여해 구속됐으며, 현재 고대건대항쟁피해자모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릴게임
이 기사는 박영일 씨의 서면 인터뷰, 조은주 씨의 공개 증언과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문 등을 토대로 작성했다. 산경일보에도 관련 심층기사를 동시 송고한다.
일 황금성릴게임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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