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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1-06 05:18 조회 25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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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 | 영화감독
1984년 여름 50여명의 국문과 농활대는 충남 청양의 어느 산골 마을, 마을회관에 짐을 풀고 장장 10일간의 농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절대 금주였고, 식사는 철저히 자급자족, 주민들이 제공하는 건 냉수 이외에는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소위 새참 금지 원칙이 공표됐다. 철제 화덕에 장작불로 밥을 해서, 된장과 고추장을 반씩 풀어 끓인 국에 말아서 삼시 세끼를 먹었다. 철저히 새참을 거절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새참을 나누는 것은 주민들과의 정을 나누는 것이니 허용해야 한다는 현실파가 밤마다 격렬하게 토론했다. 설탕물은 냉수냐 음식이냐, 같이 밭일한 할머니가 억지로 입에 넣어준 감자는 스스로 먹은 것이냐 아니면 불가항력적이었느냐 등을 놓고 밤을 새워 토론했다.
4학년 강헌은 새참 논의에서 현실파였지만 강경파 후배들에 밀려서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그는 일과 후 잠깐 씻는 우물가에서 농활이 끝나면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나열해서 묘사하기 시작했다. 기름기 없는 식사와 낯선 노동, 강제 금주에 지친 농활대원들에게 족발과 고추잡채, 평양냉면과 프라이드치킨을 아우르는 그의 설명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음식의 모양과 냄새에 대한 상세한 묘사부터, 요리법 설명, 아도르노와 베냐민의 대중문화론까지 갖다 붙이는 그의 말은 먹고 마시는 행위에 아주 높은 문화적 가치까지 부여했다. 급기야 우물가에서는 농활 종료 일주일 뒤 모여서 ‘환상의 코스’를 돌자는 10여명의 결사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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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인간이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음식과 술이 환상적으로 조합된 코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사 당일, 그새 기름진 음식과 술에 길들여진 대원들 대부분은 배신을 했고, 결사의 장소에 모인 사람은 고작 3명이었다. 코스 가이드 강헌과 나, 그리고 2학년 여학생 권여선이었다. 우리는 잠시 의기소침했으나 혁명은 소수의 정예가 하는 것이라는 강헌의 말에 고무되어 회비로 거금 1만5천원씩을 걷어서 단호하게 천호동 족발집으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코스의 시작은 그의 말대로 환상적으로 맛이 좋은 족발집이었고, 2차는 반포터미널 맞은편 어느 상가의 치킨집, 거기서 강헌의 지휘 아래 우리는 치킨과 생맥주로 입속에 남은 새우젓 짠 내를 씻었다. 그리고 잠원동 어디쯤 포장마차로 가서 막회와 우동 국물로 소주를 몇병 더 마시고 나오니, 심야의 거리에는 8월의 장맛비가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쏟아지고 있었다. 권여선은 이미 의식이 없었다. 우리는 함께 그리 멀지 않은 신반포 강헌의 아파트로 가기로 했다. 강헌은 택시를 잡으려 폭우 속으로 분연히 나갔다. 폭우 속에서 기본요금 거리에 만취한 손님들을 태워줄 택시는 없었다. 강헌은 따블에, 따따블을 부르다가 그래도 안 잡히자 지나가는 택시에 대고 험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어느 결기 있는 기사는 내려서 그와 멱살을 쥐고 대거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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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손만 떼면 자꾸 앞으로 고꾸라지는 여선을 붙잡고 앉아서 싸우지 말라고 소리치면서도, 이건 환상의 코스가 아니라 환멸의 코스라고도 중얼거렸다. 결국 우리는 택시를 포기하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걸을 수 없는 여선은 내가 업었다. 잠원동에서 신반포 아파트로 가는 길에는 여러개의 지하도 계단이 있었고, 나는 한계 중량 이상을 욕심낸 역도 선수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 계단들을 오르내렸다. 조금 전까지 택시기사들에게 혈기를 뿜어내던 강헌은 1시간 가까이 가는 내내 교대를 해주거나, 여선의 팔 하나라도 잡아주려는 노력조차 전혀 하지 않았다. 아도르노와 베냐민, 새참 금지 규정의 부당성을 끊임없이 내 옆에서 걸으며 말했고, 그 와중에도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어서, 나는 이 시시포스 같은 노역이 새참을 금지한 그 작업반장 친구 때문이라고 믿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그날 밤 우리 운명은 예정되었다. 정신을 잃고 업혀 가던 권여선은 ‘주정뱅이’가 제목에 들어가고 취한 주인공이 자주 업혀 가는 소설로 일가를 이뤘고, 난 지금까지도 감당치 못할 짐을 등에 지고 후들거리며 힘겹게 세상을 헤쳐가고 있다. 그리고 강헌은, 격렬함과 비장함은 과장됐으나 후배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겠다는 마음만은 진정했던 그 밤처럼, 도전적인 글들과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알아듣지 못하는 누군가의 귀에는 집요하게 속삭이면서, 마침내 스스로의 인생을 ‘환상의 코스’로 완성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잠깐 먼저 내렸다.
사람은 고작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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