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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1-02 01:31 조회 17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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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덕장은 볕 잘 들고 바람 많은 높은 언덕에 있다. 예전 항구 사람들은 여름엔 오징어, 겨울엔 명태를 가득 담은 함지박을 이고 지고 덕장으로 옮겼다. 덕장은 빨래를 널듯 긴 나무 대에 물고기를 널어 말리는 곳이다. 덕장 가는 길은 내내 가파르고 좁은 흙길이었다. 함지박에서 흘러내린 바닷물에 길은 늘 질퍽거렸다. 사시사철 논처럼 물기를 머금은 골목. 동해시 묵호항 주민들은 짠 바다 내음을 품은 이 길을 ‘논골’이라 불렀다.
10일 찾은 강원도 동해시 논골담길에는 묵호 사람들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입구에는 알록달록 꽃을 피운 장화 화분이 기다리고 있다. 질퍽한 논골을 오르내리던 주민들의 필수품이던 장화에 꽃이 핀 모습은 이곳의 기억을 되살리는 무대 장치와도 같았다. 거미줄처럼 뻗은 골목 담장에 묵호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게를 진 사내와 구멍가게, 덕장에 걸린 오징어, 돈을 물고 있는 강아지까지, 한때 가장 번성했던 항구마을의 일상이 글과 그림으로 되살아나 있었다.
골목을 따라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새로운 묵호가 펼쳐졌다. 벽화 속 인물들이 묵호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작은 텃밭을 가꾸던 79세 할머니는 논골의 옛 모습을 묻자 흐릿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60년 전에 고기가 많이 잡힐 때는 사람이 정말 많이 살던 동네였어. 젊었을 때 남편은 어선을 타고, 나는 오징어를 손질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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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너무 질퍽해서 언덕을 오르다가 넘어지기 일쑤였어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니까.”
논골담길이 자리한 묵호항은 동해안에서도 손꼽히던 번화한 항구였다. 1937년 개항한 묵호항은 무연탄과 시멘트를 실어나르며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명태와 오징어가 풍어를 이루면서 전국에서 몰려든 선원과 장사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개도 지폐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80년대 들어 석탄과 시멘트 물동량이 줄고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묵호항의 전성기도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오징어와 명태가 잡히지 않자 일자리를 쫓아 모였던 사람들도 묵호를 떠났다. 지금은 마을 꼭대기에 드문드문 남아 있는 덕장만이 묵호의 전성기를 짐작하게 할 뿐이다.
비어가던 골목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0년 전부터다. 마을 어르신들과 예술가들이 골목 담장마다 논골의 옛이야기를 채워 넣으면서 차갑게 식어 있던 마을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로써 ‘논골’은 벽화가 어우러진 ‘논골담길’로 다시 태어났다.
벽화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탔다. 골목의 풍경과 벽화를 사진으로 담아 기억하려는 사람들을 지나 골목을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와 개성 넘치는 카페가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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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작은 음식.도 있다.
혼자 여행을 왔다는 김나현(22·여)씨는 “몇 해 전 가족들과 묵호를 찾은 적 있었는데 이번에는 홀로 1박 2일 일정으로 동해를 찾아왔다”며 “혼자 조용히 바다를 볼 수 있고 생각 정리도 돼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김대진(39)씨는 “논골담길의 작은 집들이 모두 예쁘고 먹거리와 볼거리가 다양해 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며 “묵호 앞바다는 섬이 많은 남해와는 달리 막힘없이 수평선을 이루고 있어 가슴이 뻥 뚫린다”고 말했다.
논골담길은 화려하지 않다. 탁 트인 바다와 옛 어촌의 정취, 골목마다 담긴 묵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길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담백한 매력 덕분에 논골담길은 많은 이들이 찾는 따뜻한 감성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기념품. ‘등대그집’을 운영하는 김명기(55)씨는 이곳의 매력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순수함이 논골담길의 매력 아닐까요.”
“주민부터 행복해야… 머물고픈 관광지 돼”
“좋은 도시, 좋은 마을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행복한 삶이 궁금해져서 찾아오고 싶고 머물고 싶고 살고 싶어질 테니까요.”
유현우(42·사진) 동해시도시재생센터장은 10일 논골담길이 더 사랑받으려면 주민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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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골담길 사업은 2010년 동해문화원의 생활문화전승프로그램 사업의 하나로 추진됐다. 동해문화원은 당시 유 센터장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팀에 사업 제안을 했다. 유 센터장을 포함한 작가 팀이 현장에 합류하면서 시작된 사업이다. 그는 2023년까지 13년간 현장 총괄 감독으로 활동했다. 서울 토박이인 유 센터장은 지금은 동해에 터를 잡고 동해시 도시 재생에 힘쓰고 있다.
사업이 순탄치는 않았다. 동네 어르신들은 낯선 젊은 작가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는 “가장 공을 들인 시간은 마을 어르신들과 만남, 대화, 사건에 대한 부분이었다”며 “논골 중턱에서 함께 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막걸리 파티를 열면서 어르신들의 화려했던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차갑게 대하던 어르신들이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아간 덕분에 결국 마음을 열어줬다”고 했다.
그는 “논골담길 프로젝트의 취지는 지역 어르신들의 기억과 정서를 기반으로 지역성 및 지역 문화를 어떻게 전승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이자 실험이었다”며 “묵호라는 지역성에 존재하는 문화를 벽화라는 콘텐츠로 풀었고 묵호의 문화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면서 지금의 논골담길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유 센터장은 “논골담길은 묵호를 이야기하는 곳”이라며 “내밀한 이야기들을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많은 시도가 이루어질 때 가장 묵호답고 논골담길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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