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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31 00:11 조회 16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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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예술가들은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림 파는 것을 아주 무서워해요.”
‘숯의 작가’로 알려진 이배(1956년생)의 말이다. 작품은 팔릴 때는 꽃이지만, 작가가 바르게 가지 못하면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10월 17일 파리 페로탕에서 개인전 <어텐딩(Attending)>을 열었다. 2018년 페로탕에 합류한 뒤 이 갤러리에서 여는 아홉 번째 개인전이다. 전시장 화면 속에서 그는 논 한가운데 서 있다. 나뭇가지를 묶어 만든 빗자루로 흙을 쓸고, 땅에 펼친 흰 천을 쓴다. 한국의 논에서 찍은 신작 영상 <비커밍(Becoming)>이다.
기다림, 지금에 머무는 일
“생의 순환이 이배 예술의 중심에서 맥박친다.” 미국 미술평론가 폴 래스터가 쓴 전시 서문의 첫 문장이다. 나무가 불에 타 숯이 되는 소멸과 재생의 순환을 가리킨다. 래스터는 이번 전시가 ‘기다림’을 펼쳐 보인다고 말한다. “어텐딩이란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것이다.”
그 기다림은 이배의 작업 방식에 이미 들어 있다. 그는 소나무와 참나무, 포플러를 직접 태워 숯을 만드는데, 숯을 만드는 일은 그에게 앞으로 올 작품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다. “그에게 기다림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창작의 문턱마다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오직 숯으로 정확한 몸짓을 지치지 않고 되풀이하는 그의 작업을, 서문은 영적 의식에 빗댄다.
인터뷰에서 이배가 오래 이야기한 것도 이 시간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작업실에 가는 일, 그리고 작업 앞에서 하는 기도다.
두 개 층과 정원, 여덟 개의 방을 300m 길이의 케이블 한 줄이 꿰어 잇는다. 영상 속 자신의 실루엣을 숯 조각으로 채운 <불로부터-퍼포먼스>와 숯처럼 검은 정원의 브론즈 조각이 이번 신작이다. 예전에 쓰던 사무용 스테이플을 다시 꺼내 수천 개로 획을 이룬 <붓질-스테이플>도 함께 걸렸다.
래스터는 정원의 브론즈 조각을 두고 이렇게 썼다. “브론즈는 작품에 무게와 영속성을 주고, 숯은 그 기억과 영성을 새로운 형태로 실어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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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전시에 앞서 그는 원주 뮤지엄 산, 중국 순더의 허 아트 뮤지엄(He Art Museum), 프랑스 남부 볼리유엉루에르그 수도원에서 잇달아 개인전을 가졌다. 수도원 전시 <기다리며(En attendant)>는 프랑스 국립기념물센터(CMN)와 페로탕이 함께 마련해 6월 25일부터 9월 30일까지 이어졌다. 12세기 성당을 가로지르는 25m 길이의 <붓질: 야곱의 사다리>와 10m 높이의 브론즈 조각이 중심이었다.
바비큐 숯에서 시작된 길
1990년 파리에 온 그는 이듬해 처음 숯을 손에 들었다. 페로탕에서 열린 토크 세션에서 그는 그 시작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때는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시기였어요. 시간은 너무 많은데 재료를 감당할 방법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바비큐용 숯을 샀어요. 대학 입시 때 하던 목탄 데생을 하려고요. 그걸 하면서부터 숯을 만나게 된 거죠.”
같은 무렵 그는 이우환의 조수로 일했다. 7~8년 동안 이우환이 파리에 넉 달씩 머물며 작업할 때마다 캔버스 천을 당겨 틀에 씌우는 일을 맡았고, 그 곁에서 예술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했다. 서문에도 그가 이우환에게서 공간과 물질의 관계, 그리고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는 대목이 있다.
숯은 그에게 이름을 주었다. 그는 ‘숯의 작가’라는 말이 자신을 만들어줬다고 인정하면서도, 숯이 앞으로 더 많은 영감과 새로움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은 “숯이라는 특수성에서 보편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숯을 떠나려는 것은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단단히 내리려는 것, 그렇게 보면 숯은 어쩌면 제게 뿌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의 규칙은 단순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동일한 작업실에 가서 싫든 좋든 있어야 해요. 아파서도 안 되고, 약속이 있다고 안 가서도 안 돼요.” 슬럼프를 묻는 질문에는 “슬럼프는 매일 있어요. 그래서 늘 그것과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안 풀리는 날에도 그는 일부러 손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를 버렸다 싶어 벽에 세워 둔 그림도, 지나가던 친구가 “어, 이거 좋은데” 하면 그때부터 좋아진다고 했다. 그는 이런 연약함이 오히려 새로움을 만드는 에너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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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원은 파리에서 기차로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입니다.
“그 공간에 처음 가 보고, 사람들이 거기 가기가 너무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여기서 전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는 일이지만, 그게 예술을 하는 동기는 아니잖아요. 물론 현실적으로 필요한 과정이지만요. 거기엔 그런 것을 걷어낸 느낌이 있어서 좋았어요. 작업실에서 순수하게 제작하는 마음 같은 거요.
관객을 머릿속에 두지 않고 작업한다는 건, 유명한 작가가 자기 작품 가격이 얼마인지, 자기가 얼마나 유명한지를 지우고 작업한다는 거예요. 예술가들에게는 이면에 그런 열망이 있어요. 현실에 쫓겨서 가려져 있을 뿐이죠. 거기는 전시장을 위한 공간도 아니고 옛날 수도승들이 생활하던 곳이에요. 고딕 건물은 더없이 단순하고 묵직하고요. 다른 데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제가 정말 하고 싶던 작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게는 잘 안 됐어요. 제 역량도 부족하고, 거리가 멀어서 자주 가보지도 못했어요. 밤낮으로 그 공간에 머물며 영감을 얻지는 못했죠. 그래도 두 번 다시 이런 공간에서는 못 할 테니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보자 했어요. 천장이 30m쯤 되는데, 10m 정도 되는 브론즈 조각을 한국에서 만들어 배에 싣고 왔고, 큰 그림을 그려서 천장에서 내렸어요. 비디오도 하고 야외 조각도 했고요. 여름 가장 더울 때 한 달 가까이 거기 있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 관객 반응은 어땠습니까?
“저는 하루에 두 명도 올까 말까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전시가 성공적이었다고 하는데,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할 입장은 아니고요. 다만 사람들이 거기 와서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 걸 만난 거죠. 아무도 올 수 없는 공간에 그렇게 열성을 가지고 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지 않았을까 싶어요. 가 본 사람들이 ‘거기 한번 가봐라,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짓을 해놨다’고 알린 것 같아요. 프랑스 문화재청장이 연락을 해 왔어요. 자기네 문화재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 줘서 고맙다며 차 한잔하자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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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퐁피두센터에 사람이 몰리는 것과 달리, 거기까지 찾아간 사람들은 더 의도적이고 더 호감을 갖고 가지 않았나 싶어요.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어요.
아무도 안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들수록 더 최선을 다해야 했어요. 그게 저 자신을 바로 세우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예술가는 참 연약한 존재예요. 현실에서도 연약하고 정신적으로도 연약해요. 늘 흔들리고 불확실하고 예민하죠. 남이 조금만 칭찬해도 금세 들뜨고요. 예술에는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잖아요.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고, 맞다 틀리다가 아니니까. 제가 하는 게 맞는지 틀린지 확신이 없는 게 늘 예술가예요. 그 전시는 그런 저에 대한 나름의 도전이었어요. 초심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 폴 래스터는 선생님이 시장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 길을 우직하게 간다는 .을 높이 평가하더군요.
“그림이 안 팔릴 때는 팔고 싶은 열망이 엄청나게 강하거든요.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먹고살아야 하고요. 좋은 갤러리에 들어가고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싶은 마음도 다 이어져 있죠.
그런데 막상 그 세계에 들어가 구조를 알게 되면 달라요. 일반 공산품은 쓰다가 깨지면 버리면 되지만, 예술품은 물건이 아니에요. 팔릴 때는 아름다운 꽃으로 팔리는데, 작가를 공격할 때는 화살로 공격을 해요. 자기 작품으로 자기가 공격을 당하는 거예요. 그게 예술 작품의 묘한 딜레마라고 할까요.”
▶ 작품이 작가를 공격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사람들은 작품이 좋아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참 지나서 보면 그 작가의 세계를 사는 거예요. 세계의 한 부분을 사는 거고, 그 작가의 여정을 사는 거죠. 그런데 작가가 바른 길을 가지 못하면 그 작품이 작가를 공격하는 구실이 돼요.
그래서 대개 예술가들은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면 파는 걸 아주 무서워해요. 많이 팔리는 것보다 새로운 길을 계속 열어 가는 작가가 되기를 늘 꿈꾸는 거예요. 덜 팔리더라도 자기 길과 자기 세계, 자기 생각을 지키려고 하니까 복잡한 거예요. 사람들은 ‘저 사람 그림 좋았는데 왜 저렇게 나빠졌지’, ‘전혀 저 사람답지 않다’ 같은 말도 하고요. 그때부터 가시밭길인 거예요. 헤쳐나가야 하는 거죠. 저도 그런 길을 걸어가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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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예술을 사는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사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인기 있다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순간적인 거고, 한두 해 사이의 일이에요. 한참 지나서 보면 이해관계에 얽매인 우리 삶에는 없는 어떤 순수성을 사는 거예요.
순수함을 잃으면 작품의 가치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걸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쉬운 일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예술가를 바라보는 기준은 예술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아요.”
▶ 작업이 막힐 때 기도를 하신다고요. 기도하면 답이 옵니까?
“생각으로 작품이 되는 게 아니라서 기도해요. 기도 없이 한 작품 앞에서는 절망할 때가 많은데, 기도를 많이 한 작품은 절망을 좀 덜 하게 되고 위로가 돼요. 성경에 나오는 모세처럼 계시를 받지는 못해도, 계속하다 보면 작품의 약。이나 결과 때문에 절망하는 일이 줄어요. 찰나의 순간들이 이루는 조화는 인간이 조립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걸 받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경험으로는 그렇게 느껴요.
잘못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도 ‘이건 제가 기도를 많이 한 작품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해요. 그러면 그 작품이 제 평가의 대상에서 벗어나요. 작품 하나가 제 삶의 종착。이 아니라 과정이거든요. 아주 짧은 시간의 과정이니까 다음으로 나아갈 길이 있고,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는 선생님의 기도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거울이 없었으면 평생 저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을 수도 있어요. 하물며 제 내면에 있는 저를 어떻게 이해하고 확신하겠어요. 배운 것, 정보는 확실히 있지만 기억은 늘 잊히고 새로 채워지니 두뇌를 신뢰하기도 어렵고요.
그림 그리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연구하는 일도, 글 쓰는 일도 그렇고요. 지금 뭘 할 수 있는지 모를 때 기도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고 내려놓을 때,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어요.
그리고 정말 몰라서 기도해요. 제 생각대로 해서 한 번도 잘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을 내려놓고, 저를 저보다 더 잘 아는 분에게 의지하는 거죠. 제 깊은 속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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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새로운 생수가 솟아난다면, 그게 제 작업의 자그마한 힘이나 에너지, 근원이 되지 않을까 꿈꾸는 거죠.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매일 그렇게 기도해요.”
▶ 철학자 한병철과도 만나셨다고요.
“네 번쯤 만나 얘기를 나눴어요. 작품을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냐고 묻길래, 생각으로 작품이 되는 건 아니고 잘 안 돼서 기도한다고 했죠. 그분은 농부가 기도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 그냥 노동자라고 하더라고요. 평소 제 생각과 많이 통했어요.
젊은 작가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아요. 작가가 아니어도 그런 사람이 많잖아요. 그럴 때 필요한 게, 한마디로 기도예요. 기도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지금 결과가 좋더라도 그게 복권 당첨 같은 운이라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어요.
그분이 시몬 베유에 관해 쓴 『신에 관하여』도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베유에게 믿음은 창조의 시간이에요. 한 번도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생각을 열어서 절대자에게 나아가는 시간이죠. 교리가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려운 사람에게 ‘믿으세요, 믿으면 다 해결됩니다’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는 거예요. 가까이 있다는 그 자체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시간이고,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열어주는 거죠.”
▶ 중세에는 수도사들이 삶으로 예술을 했습니다. 오늘날 그런 예술가는 얼마나 될까요?
“현대미술은 영성을 제거해도, 지성만으로도 미술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애를 썼는데, 잘 안 된 것 같아요. 잘될 수가 없는 일이었죠. 그 엄청난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가 넓어지고, 편협했던 여러 제한이 무너지고, 포괄성과 다양성을 띠게 됐어요. 하나의 중심에서 다중심으로 나아갔고요. 그런데도 결과적으로는 영성이 많이 쇠퇴했어요.
사실 지금은 미술에서 갈 길이 애매한 시대예요. 작가로 살면서 그걸 절실히 느껴요. 저 자신도 예외가 아니고요. 그래서 젊은 작가들에게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쉽게 전해지진 않죠.”
▶ 매일 같은 시간 작업실에 가는 일이 지겹지는 않나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매일 새로워요.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래요.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같은 초월적 영성은 아니더라도, 매일 똑같은데도 자기 안의 새로움을 일깨울 수 있는 시간. 그런 게 기도라고 저는 생각해요.”
파리=김인애 럭셔리&컬쳐 칼럼니스트
이 제 평가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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