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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간신 유자광과 그의 가족
지식은 남을 해치는 데 쓰고, 사악한 행위를 그칠 줄 모르며, 거짓된 사실을 말재주로 속이고, 추악하고 괴이한 것을 즐겨 퍼트리며, 그릇된 짓을 그럴싸하게 꾸미는 자. 이 가운데 하나만 걸려도 정의의 칼날을 면치 못한다는 이른바 오악(五惡)이 유자광의 인물 묘사에 인용되었다.(중종실록 2년 4월 18일) 유자광(柳子光·1439~1512)을 따라붙은 언어들은 대체로 험악하다. 독사, 단호(短狐·사악한 기운을 뿜어 사람을 죽게 하는 전설상의 괴물), 음적(陰賊·속으로 음흉하고 잔인함), 간흉(奸兇), 교사(巧詐), 간물(奸物) 등이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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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중 상서로 생사 기로 생환 되풀이
남 모함·탄핵은 정치 생명 연장 수단
날랜 무술과 경전·역사 꿴 문장으로
천출 한계 딛고 충격적인 빠른 출세
중종 마음 샀지만 끝내 자손과 유배
74세로 죽자, 천수 누렸다 비판 여론
」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유규(柳規)의 얼자(孼子·천첩 소생)로 태어난 유자광은 왕궁과 도성을 방위하는 갑사(甲士·직업군인)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정예 요원으로 구성되는 갑사는 집안과 재능을 따졌는데, 아버지와 대사헌을 지낸 적형(嫡兄) 유자환이 배경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자신 원숭이처럼 날쌔게 나무에 오르고, 말 타고 달리며 활을 쏘는 무술에 능했다. 게다가 경전과 역사 지식이 풍부하며 문장을 잘했다. 세조 13년(1467)에 함길도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29세의 하급 군인 유자광은 임금에게 승부수를 던진다. “일개 적(賊)을 즉시 죽이지 못하고 전하의 치평(治平)에 누(累)를 끼쳐서야 되겠습니까. 이시애의 머리를 단칼에 베어 바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고전 지식을 활용한 유자광의 상서는 세조의 심금을 울렸다. “내 뜻에 딱 맞는 말이다. 매우 드문 재목이니 장차 임용하여 옳은 곳에 쓰리라.”(세조 13년 6월 14일)
과거 낙방하자 세조가 1등에 올려
이렇게 해서 발탁된 유자광은 말마다 임금의 뜻을 맞추어 하루아침에 관작이 4품에 이르렀다. 특히 문무과 급제자가 아니고서는 이를 수 없는 육조 낭관에 임명되자 불가함을 주장하는 대신들의 간언(諫言)이 빗발쳤다. 세조는 “경들이 유자광만큼 어진가? 유자광은 어진 사람이다”라고 하며 자광을 비판하는 자에게 죄를 묻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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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13년 9월 28일) 이듬해 왕은 휴양지 온양에서 과거를 설행하는데, 낙방한 유자광의 답안지를 1등으로 올리자 조정의 의논이 술렁댔다. 그 후 반년 남짓, 세조가 승하한다. 왕의 총애로 ‘문과 장원’이 되고 그것으로 정 3품 당상관에 오른 출세의 충격적인 속도 때문만이 아니라 모계가 천민이라는 이유로 그를 조롱하는 ‘적들’ 속에서 유자광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고 달포 만에 발발한 남이(南怡)의 옥(獄)은 알다시피 유자광의 작품이다. 이시애의 난에서 빛나는 무공을 세운 남이(1443~68)에게 모반죄를 얽은 사건이다. 처음 잡혀와 어리둥절하던 남이가 유자광의 이름을 듣더니 머리로 땅을 치며 “완벽한 무고”를 외쳤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옥사로 거열형에 처해진 남이를 비롯해 사형이 30여 명, 유배 또는 삭탈관직이 수십명에 이르렀다. 남겨진 가족들의 수난까지 따지면 피해자만 수백이었다. 한편 남이의 옥으로 40명의 공신이 배출되는데, 1등 공신 유자광에게 남이의 집이 돌아갔다.
예종은 유자광에게 무령군(武靈君)의 작호를 내리고 다시 품계 하나를 더해 주고자 한다. 유자광은 자신의 아비에게 대신 줄 것을 청하고, 장인 함양 호장 박치인과 처남 박순년의 향역(鄕役)을 면해 주도록 한다. 천첩 신분의 모친은 정부인(貞夫人)에 봉해지고 동모제(同母弟) 유자형은 얼자(孼子)에 금지되었던 생원시 응시의 길이 열렸다.(예종 1년 3월 10일) 그런데 유자광의 아버지 유규는 자신에게 더해진 품계를 사양하는 소를 올린다. 이로부터 4년 후 유규가 세상을 뜨는데, 판서와 관찰사를 지낸 그의 졸기에는 깨끗한 행실과 신중한 태도가 돋보이는 인물로 기록되었다.
예종의 총애도 떼 놓은 당상인 유자광, 15개월도 못 채운 왕의 죽음으로 다시 위기를 맞는다. 새 왕 성종의 측근에는 유자광이라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를 4개월, 유자광은 자신의 수행원(伴人)에게 고변을 당하는데, 난언(亂言·왕권과 국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발언)의 죄였다. 사실인즉슨 유자광과 그 아우가 간밤의 꿈을 해석하는데, “군사 30, 40인을 거느리고 밤을 틈타 우두머리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절대 비밀로 해야 함을 다짐했다. 수행원의 고발로 옥에 갇힌 유자광, 그의 아우 유자형의 증언도 확보되었다.(성종 1년 4월 3일) 사생(死生)의 기로에 선 옥중의 유자광은 옥리(獄吏)의 붓을 뺏어 왕에게 변명의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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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서(上書)로 입신출세한 그에게 어린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쯤이야. 왕은 그를 석방하려 하지만 대신들이 들고일어난다. 결국 대비 정희왕후의 긴급 명령으로 유자광은 석방된다. 대비는 유자광의 아우가 모자라는 사람이라 그가 한 증언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그새 유자광은 대비에게도 손을 쓴 것이다. 죽다 살아난 유자광이 임금 앞에 한없이 머리를 조아린다. 이즈음 남을 무고하여 인생 역전을 꿈꾸는 자들이 전국적으로 횡행하여 왕은 각도의 관찰사에게 무고를 금지토록 명하였다.
남이 장군·한명회도 모함
유자광은 자신이 조명받지 못하거나 위기가 닥치면 남을 모함하고 탄핵하는 방법으로 정치 생명을 이어간다. 성종조 내내 호시탐탐 남을 해칠 궁리에 몰두하는데, 인신 최고 권력 한명회를 탄핵하고, 임사홍과 결탁하여 병조판서 현석규를 음해하였다. 임금을 보호하고 사직을 지키려는 신하의 도리임을 강조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내장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유자광은 대신을 모해한 죄로 유배형에 처해졌다. 유배 3년째, 병든 어미를 봉양할 수 있도록 고향으로 유배지를 옮겨 달라고 상서한다. “어미의 나이 71세, 아들 셋을 두었으나 두 아우는 병들어 죽고 42세의 신 하나만 남았습니다. 아득히 먼 곳에서 엎드려 대궐을 바라보니 혼신을 다해 날아가고픈 간절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성종 11년 10월 28일) 유자광의 상서 패턴은 자신을 한없이 미천하고 불쌍한 존재로 묘사한 후 목적하는 바를 진달하고 마지막으로 왕의 심중을 파고드는 방식이었다. 유배 포함 7여년의 공백기를 보낸 유자광은 성종 16년 특진관에 임명되어 정승급 대우를 받으면서 왕의 책사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경박하고 음험한 독사”라며 공격하는 신하들 속에서 유자광을 비호하던 성종이 재위 26년 만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왕이 죽었을 때 유자광은 모친상을 당해 남원에 있었다. 중앙 정계에서 잊힐 위기의 유자광은 부모상 중에 국상을 입은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정해 달라는 내용의 상소를 던진다. 대신들이 왈가왈부하는 사이 남원 유자광의 존재감은 국상에 버금가는 이슈로 떠오르고, 기회를 놓칠세라 유자광은 새 왕 연산군을 향한 충정과 애정을 발사한다.
그러는 사이 유자광에게 얼자(孼子)라는 신분을 준 어머니 최씨의 장례식이 공개되었다. 85세로 서울에서 사망한 어머니를 고향으로 옮겨가는데, 그 행렬이 가히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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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길에 부러지고 상할까 틀나무(機木)를 튼튼하게 만들어 좀 무거웠을 뿐이고, 한 집안의 인력으로 호행이 불가하여 병조(兵曹) 군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상여를 66인이 메고 갔는데, 100여 인이라 하니 원통합니다.”(연산군 1년 5월 3일) 상소마다 효자 행세를 하는 유자광, “효자가 충신된다”는 유교의 강상 논리로 자신을 포장한 전략일 뿐이다.
연산군 3년, 유자광이 무령군으로 권력 일선으로 복귀하지만 대간들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자광은 본시 협기 어린 종놈인데 지나치게 발탁되어 조작과 음해로 조정을 탁란했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그는 다시 승부수를 던진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특출난 재능을 가진 청빈한 자들을 국문 장에 내모는 것이다. 유자광은 “조의제문을 지은 김종직을 논죄할 것을 청”한다. (연산군 4년) 김종직이 유생 시절에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의제를 위한 제문)을 훨씬 뒤에 일어난 세조의 왕위 찬탈과 결부시킨 조작이었다. 유자광이 일으킨 무오사화(戊午史禍)는 사형 6명, 유배 31명, 파직 및 좌천 14명으로 직접적인 피해자만 50여 명이었다. 다시 왕이 교체되었다.
왕이 두려워하는 것 간파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의 혀처럼 굴던 두 간신 유자광과 임사홍이 위기를 맞지만, 반정 후 살해된 임사홍과는 달리 반군의 편으로 잽싸게 옮긴 유자광은 다시 살아나는데, 그것도 1등 공신이다. 하지만 중종 2년부터 유자광을 죽이라는 논의가 거세졌다. 그를 비호하는 왕을 향해 신하들은 “유자광이 간신이냐 충신이냐? 그의 간악함을 알지 못한다면 밝지 못한 것이고 간악함을 알면서 제거하지 못한다면 결단력이 없는 것”이라며 공격한다. 결국 유자광은 목숨만은 부지한 유배형에 처해진다. 두 아들 유진(柳軫)과 유방(柳房), 사위 손동(孫同) 그리고 ‘풀을 뽑되 뿌리를 뽑지 않으면 다시 살아난다’며 손자 유승건과 유승곤까지 몽땅 유배에 처해졌다.(중종 2년 4월 23일)
중종 7년(1512) 유자광은 유배지에서 74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다섯 왕의 총애를 받은 유자광의 40년, 그는 왕의 아픈 곳과 왕이 두려워하는 것을 잘 간파하였고 왕의 입장에서 신권(臣權)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경쟁 관계의 동료들에게는 잔혹하게 칼을 꽂는 방식으로 권력을 쟁취했다. 사람들은 승냥이의 심보에 뱀의 쓸개로 선비들을 해쳐 국맥을 끊어 놓은 간흉 유자광이 천명대로 살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타 우두머리를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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