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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공장은 생산을 멈춘 뒤에도 청정구역의 공조설비를 일정 수준으로 가동해야 할 수 있다. 원료와 제품에 적합한 온도·습도, 실간 차압을 유지하지 못하면 의약품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환기량을 줄이면 전력을 아낄 수 있지만 오염관리에도 변화가 생긴다.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제약업계의 과제는 에너지 절감과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를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에 있다.
공조(HVAC)는 난방·환기·공기조화를 통칭한다. 무균의약품 제조시설에서는 청정등급에 맞춰 여과된 공기를 공급해 입자·미생물 오염과 온·습도, 차압을 관리한다. 비무균제제 공장도 분진과 교차오염을 억제해야 하며, 고활성 원료 작업소는 작업자 보호를 위한 별도 배기·봉쇄 조건이 필요할 수 있다.
그만큼 에너지 소비도 크다. 국제제약공학회(ISPE) 기술지에 실린 로슈·제넨텍 엔지니어들의 분석에 따르면 청정실 공조는 제약시설 전체 에너지 사용의 36~67%를 차지할 수 있다. 공정·시설에 따라 달라지는 사례 범위로, 모든 공장에 적용되는 평균치는 아니다. 그러나 공조 운전조건을 다시 살펴볼 필요성을 보여준다.
GMP가 모든 청정구역에 동일한 환기횟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2004년 무균공정 지침은 ISO 8 수준의 보조 청정구역에서 시간당 20회 이상의 공기 교환이 일반적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이며 모든 제조구역의 법정 최저 환기횟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유럽연합(EU)의 무균의약품 GMP 부속서인 Annex 1은 청정구역이 '비작업 시(at rest)'와 '작업 시(in operation)' 모두에서 필요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다. 공기 공급량·유속뿐 아니라 실간 차압, 기류 방향, 필터 완전성, 입자·미생물 수준과 청정도 회복시간 등을 평가한다. 환기횟수라는 숫자보다 실제 오염관리 성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다만 제품이 외부 공기에 노출되는 무균충전 핵심구역과 폐쇄된 배관·탱크에서 제조하는 구역의 위험은 다르다. Annex 1은 오염관리전략(CCS·Contamination Control Strategy)과 품질위험관리(QRM·Quality Risk Management)에 따른 구역별 관리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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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지난해 12월 국내 무균의약품 제조소의 CCS 문서화를 돕는 양식을 공개했다. 양식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참고자료다.
환기횟수(ACH·Air Changes per Hour)는 한 시간 동안 공급하는 공기 부피를 해당 실의 부피로 나눈 값이다. 설계 당시 여유 있게 설정한 풍량이 실제 운전에도 필요한지 확인하는 것이 절감의 출발。이다. 국제표준 ISO 14644-16:2019는 청정도 성능을 유지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설계·운영 방안을 제시한다.
학술지 'Drug Development and Industrial Pharmacy'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작업자 2명과 설비 1대가 있는 청정실을 모사해 환기량·작업복 조건을 바꿔 32회 시험했다. 해당 조건에서 시간당 10회의 공기 교환으로도 필요한 입자·미생물 수준을 충족했다. 다만 이는 특정 실험 결과로, 무균충전 핵심구역을 포함한 모든 제조시설에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생산현장에서도 성과가 나왔다. 로슈·제넨텍은 미국 캘리포니아 오션사이드 생물의약품 원료 생산시설의 GMP 청정실 172개를 조사했다. 사전 분석에서 평균 환기횟수를 시간당 24.9회에서 17.2회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조정은 실별 위험도에 따라 달리했다.
복도·자재 대기구역은 저위험, 밀폐된 배관·탱크 공정은 중위험, 제품이 외기에 노출되는 구역은 고위험으로 분류했다. 공기조화기 15개 계통을 한 번에 하나씩 조정한 뒤 입자·미생물·차압을 측정하고 필요한 구역에는 청정도 회복시험을 시행했다. 개방 공정 중에는 풍량 조정을 피했으며, 검증을 마친 뒤 품질부서의 승인을 받았다.
2020년 완료된 이 사업으로 공기 공급량이 분당 16만5000입방피트(cfm) 감소했다. 회사 엔지니어들이 2023년 ISPE 기술지에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해당 시설의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은 각각 14% 줄고 연간 비용은 67만8000달러 이상 절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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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사업장에 관한 회사 발표 실적이므로 다른 공장의 절감률을 예측하는 근거로 볼 수는 없다.
GSK도 독일 드레스덴 백신공장에서 GMP Grade C·D 등을 포함한 200실 이상의 환기량을 최적화했다. ISPE가 올해 7월 소개한 사례에서는 에너지 모델링과 단계별 적격성평가를 통해 공조 운영비를 줄였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절감률과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가능한 조치는 위험이 낮은 구역부터 필요 풍량을 다시 산정하고, 실별 공기 균형과 필터 압력손실·누기를 .검하는 것이다. 비생산 시간대 풍량 축소도 검토할 수 있지만 무조건 공조기를 꺼서는 안 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비무균의약품 공조 지침은 야간·주말 정지나 비생산 시간대 풍량 축소를 원칙적으로 피하도록 하며, 시행하려면 품질에 위험이 없음을 입증하고 절차를 문서화하도록 한다.
신축·증설 단계에서는 청정구역 면적을 적정하게 설계하고 기밀성을 높이거나 압력손실이 낮은 필터를 선택할 수 있다. 배기열 회수와 공기 재순환도 절감 수단이지만 교차오염 위험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WHO는 유기용제나 고위험 물질에 오염된 공기의 재순환을 원칙적으로 피하고, 다품목 제조시설의 에너지 회수장치가 교차오염원이 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을 권고한다.
국내 사례로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안동 백신공장 'L HOUSE'를 들 수 있다. 회사는 에너지·수자원 절약 기술 16가지를 적용해 기존 공장 대비 최대 30%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공개했다. 2013년 친환경 건축물 인증인 LEED 골드 등급도 받았다. 다만 '최대 30%'는 설계상 절감 가능성으로, 실제 운영 실적과는 구분해야 한다.
공조 외에 공정 열과 용수도 절감 대상이다. 바이오의약품 생산에는 배양·정제 과정의 냉각과 가열, 세정·멸균, 주사용수(WFI·Water for Injection) 생산과 공급에 에너지가 들어간다. ISPE는 2024년 분석에서 역삼투압(RO) 등 막분리 기술을 활용한 WFI 제조가 증류 방식보다 열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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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적용 약전과 규제 요건을 확인해야 하며, 미생물·엔도톡신 관리를 위해 생산·저장·배관 시스템의 적격성평가도 검토해야 한다.
설비를 분해하지 않고 세정하는 CIP(Clean-in-Place)와 증기로 멸균하는 SIP(Steam-in-Place)에서도 시간·온도·용수 사용량을 최적화할 수 있다. 다만 세정 잔류물 제거와 멸균 성능을 검증하지 않은 채 작업시간부터 줄이면 배치 폐기나 생산 중단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절감 과정에는 검증 비용이 따른다. EU GMP Annex 15는 시설·설비·제조지원설비·공정 변경이 품질과 기존 밸리데이션 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필요한 재적격성평가 또는 재밸리데이션을 결정하도록 한다. 공조기 설정값을 바꿨다고 모든 설비를 처음부터 재검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검증 범위를 줄이는 판단에도 품질위험평가와 문서화가 필요하다.
실제 효과를 판단하려면 설비별 전력·스팀 사용량과 생산량, 가동률을 계측해 기준선을 설정해야 한다. 변경 후에는 에너지 사용량뿐 아니라 청정도·미생물·차압·온습도·회복시간 등 품질 관련 지표를 비교해야 한다. 생산량이 달라진 경우 총사용량과 제품 단위당 사용량도 나눠 살펴야 정확한 절감 효과를 알 수 있다.
중소 제약사에는 에너지 진단부터 변경관리, 환경 모니터링과 검증을 수행할 인력·비용이 부담이다. 설비를 개선하는 동안 생산 일정을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 고효율 설비 구입비 지원뿐 아니라 위험평가와 재적격성평가에 필요한 비용·기술 지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관련 컨설팅 업계에 종사하는 한 전문가는 "제약공장에서는 절감 가능성이 큰 설비를 찾는 것보다 변경 후에도 동일한 품질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과정이 더 까다로울 수 있다"며 "투자 효과를 평가할 때 전기요금 절감액뿐 아니라 변경관리, 환경 모니터링, 재적격성평가 비용과 생산 차질 위험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소중립과 GMP가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보수적인 설비 운전조건을 데이터에 근거해 조정하면 품질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도 줄일 수 있다. 제약공장의 절감 성패는 전력 사용량이 얼마나 감소했는지뿐 아니라 변경 이후에도 오염관리와 제품 품질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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