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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10-08 14:00 조회 2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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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외로운 악기다. 적어도 많은 음악가들이 그렇게 말한다. 반주와 함께 리사이틀을 소화하는 현악이나 관악 연주자와 달리, 피아니스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독주회의 무게를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 1941~)는 마치 그런 관념에 저항하는 듯 보인다. 혼자 주목받기를 꺼리는 이 독특한 비르투오소는 독주회를 피하고, 사실상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협연 무대에만 오른다. 함부르크, 벳푸 등지에서 열리는 자신의 페스티벌에서 친구들과 연주하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다. 물론 아르헤리치가 처음부터 이런 개성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거장 피아니스트 중에서는 드물게 ‘포 핸즈(Four Hands)’나 ‘투 피아노(Two Piano)’ 연주를 즐기지만, 경력 초기에는 이러한 작품들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중심이 실내악과 듀오 레퍼토리로 옮겨간 것은 5년 전 타계한 브라질 출신의 대가, 넬손 프레이리(Nelson Freire, 1944~2021)와 피아노 듀오로 성공을 거둔 즈음부터였다. 가장 친한 친구와 무대에서 마음을 나누는 기쁨을 그가 알려준 것이다. 방황까지 함께한 삶의 동반자 20세기 중반의 남미는 음악계의 변방이 아니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리우데자네이루를 찾아 장기간 공연을 가졌고, 피아노 연주가 축구 못지않을 정도로 열광적인 인기를 누렸다. 프레이리에 따르면 “집마다 피아노를 두고 숭배하다시피 했다”고. 브라질의 구이오마르 노바에스(1895~1979), 칠레의 클라우디오 아라우(1903~1991), 아르헨티나의 다니엘 바렌보임(1942~) 등이 이러한 피아노 열풍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그래서인지, 같은 남미 출신이라는 。이 1959년 빈 아카데미 학생 식당에서 처음 만난 아르헤리치와 프레이리의 화두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아르헤리치는 프리드리히 굴다(1930~2000)를, 프레이리는 굴다의 스승인 브루노 자이들호퍼(1905~1982)를 사사 중이었다. 브라질에서 막 낯선 도시에 온 소년은 위축되어 있었고, 16살에 부조니 콩쿠르와 제네바 콩쿠르를 연달아 제패한 아르헨티나 출신 소녀는 아카데미의 스타였다 릴게임 .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이듬해 브륄에서 열린 한 마스터클래스에 가던 중, 열차 플랫폼에서 서로 마주친 것이다. 아르헤리치는 도이치 그라모폰(DG)과 녹음할 데뷔 앨범의 프로그램을 자이들호퍼에게 .검받으러 가던 차였다. 프레이리를 만난 김에 그가 스승 앞에서 연주할 협주곡의 오케스트라 반주 파트를 맡아주기로 했다. 곧 두 사람은 서로의 연주에 감탄하게 된다. 아르헤리치는 학우였던 브루노 레오나르도 겔버, 마우리치오 폴리니에 이어 프레이리를 자신에게 세 번째로 충격을 준 피아니스트로 꼽았다. 프레이리는 하노버에서 진행된 아르헤리치의 녹음 세션에도 동행했다. 아르헤리치의 전기와 프레이리의 전기를 모두 집필한 저널리스트 올리비에 벨라미는 프로그램 중 브람스의 ‘두 개의 랩소디’가 프레이리의 권유로 익힌 곡이었다고 썼다(프레이리와 달리 아르헤리치는 브람스를 자신의 기질과 맞지 않는 작곡가로 여긴다). 그녀가 스튜디오에서 연습할 때 프레이리는 다른 스튜디오에서 같은 곡을 쳤는데, 두 친구는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연주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재미있어했다. 사춘기 시절 방황을 함께한 경험이 두 사람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장학금이 바닥난 프레이리는 아르헤리치의 집에서 지냈는데, 당시 연습은 팽개치고 놀 궁리만 했다고. “그는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느끼고, 나를 손바닥 보듯 훤히 알며, 나의 모든 결.까지 다 알고 있다”는 아르헤리치의 말에 과장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성격은 정반대였다. 아르헤리치는 프레이리를 ‘개의 탈을 쓴 고양이’라고 불렀다. 겉모습은 친절하고 따뜻해 보여도 실은 무척 예민하다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한편 프레이리에게 아르헤리치는 ‘고양이의 탈을 쓴 개’였는데, 그녀가 무심해 보이지만 사실 정이 많고 자기 사람들을 잘 챙기기 때문이었다. 크게 싸운 후 1년 동안 서로 연락하지 않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동반자로 남았다. 네 손으로 우정을 말하다 <르 몽드>는 아르헤리치와 프레이리의 듀오를 이렇게 평했다 릴게임바다이야기 . “이 두 사람이 마주 앉거나 나란히 앉으면 기적이 일어난다. 더욱 경이롭고 놀랍고 감동적인 제3의 피아니스트가 태어나는 것이다.” 아르헤리치는 세르게이 바바얀(1961~), 전 남편인 스티븐 코바세비치(1940~) 등 여러 뛰어난 피아니스트들과 나란히 연주했지만, 프레이리와의 협업은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오른 것은 1968년 런던에서였다. 사우스 뱅크 여름 페스티벌의 감독을 맡고 있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아르헤리치에게 투 피아노 연주를 제안했는데, 그녀가 프레이리와 함께한다는 조건으로 수락한 것이다. 프레이리는 2001년 데카(Decca)와의 계약 후 일련의 녹음들로 찬사를 받기 전까지는 유명세와 다소 거리가 있었고, 친구를 돕고 싶었던 아르헤리치는 틈날 때마다 음악계 거물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아르헤리치와 프레이리는 최초의 시도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다음 협업이 12년 뒤에나 이루어진 이유였을 것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이 공연의 성공에 힘입어,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다. 이들의 첫 듀오 앨범 또한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 1982년 필립스(Philips)가 키릴 콘드라신(1914~1981)과 함께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실황 테이프를 음반으로 발매하자고 제안하자, 아르헤리치는 ‘프레이리와 듀오 녹음을 하게 해준다면’ 응하겠다고 했다. 라흐마니노프의 ‘모음곡 2번’, 라벨의 ‘라 발스’, 그리고 루토스와프스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기념비적인 앨범에 담겼다. ‘모음곡 2번’과 ‘라 발스’는 같은 해 영상으로도 촬영됐다. 듀오 초기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명연이다. 아르헤리치와 프레이리는 듀오 레퍼토리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이었다. 제한된 수의 작품들을 다루었으나, 하나하나를 최상의 완성도로 선보였다. 명성 높은 라흐마니노프와 라벨 연주 외에, 버르토크의 ‘두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타’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이 첫 듀오 공연에서 연주한 이래 꾸준히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협주곡 버전(1985)과 소나타 원곡(1993) 두 종의 녹음이 있다. 오리지널릴게임사이트 프레이리는 한 인터뷰에서 “버르토크 피아노 음악을 공격적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작곡가의 녹음을 들어보면 그가 서정적이고 시적인 연주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과연 두 친구는 버르토크 특유의 타악기적 매력뿐 아니라 그 이면의 아름다움까지 멋지게 드러낸다. 두 대의 피아노가 빚어내는 ‘장대함’에 끌린다면, 리스트의 ‘비창 협주곡’ 녹음을 추천한다. 1998년 사라토가 공연예술센터에서의 실황이다. 아르헤리치와 프레이리는 모두 리스트 해석으로 정평이 난 연주자. 이들이 펼치는 거대한 드라마와 색채는 압도적이라는 표현으로 부족하다. 마지막 듀오 녹음인 200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은 두 대가의 호흡이 어떤 경지에 다다랐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프레이리의 말년은 비극적이었다. 2019년 낙상으로 팔을 다쳐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그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이래 음악을 구원처럼 여겨왔기에, 그가 입은 내상은 엄청났다. 프레이리가 2021년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단에서 물러나자, 아르헤리치 또한 친구와 함께하기 위해 심사위원을 사퇴했다. 약 한 달 뒤, 브라질 출신의 거인은 77세 생일을 맞은 지 2주 만에 리우데자네이루의 자택 인근에서 타계했다. 그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뒤를 이었지만, 사실은 알 수 없다. 이듬해 아르헤리치는 동향 피아니스트 넬손 괴르너(1969~)와 함께 친구를 추모하는 공연을 가졌다. 프레이리와 숱하게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으로 프로그램을 마쳤다. 말 하나 없이도 친구와 깊이 교감하게 해주었던 ‘투 피아노’야말로, 그녀에게는 벗을 기리는 최고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임세열 칼럼니스트 · Bellamy, Olivier, Martha Argerich: l'enfant et les sortileges, Buchet Chastel, 2010. 국내에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현암사, 2018), 『마르타 아르헤리치: 건반 위를 질주하는 전설의 피아니스트』(앤의서재, 2026)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모두 이세진 역. · Bellamy, Olivier, Nelson Freire: Le secret du piano, Éditions Fugue, 2022. :#ffc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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