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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6-09-21 18:20 조회 2 댓글 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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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님 안녕하세요. 한겨레 텍스트(.txt)를 즐겨 읽는 독자입니다. 저는 1985년생으로 올해 마흔두살입니다. 최근에 저는 나이에 비해 참 성숙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비슷한 얘기를 하는 친구에게 ‘이제는 어른인 척이라도 해야 해’라고 말하면서도, 저 또한 괜찮은 어른이 되지도 못했지만 어른인 척도 못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20대 중반 대학원에 다닐 때 너무나 욕심 많고 어른 같지 않았던 60대 교수님과 일을 하면서 ‘절대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강박이 되어 ‘성숙하고 좋은 어른이 되자’라는 슬로건에 사로잡혀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성숙이라는 것이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장착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애쓰지 않으면 20대의 자아 그대로 나이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이 문제가 요즘 저를 괴롭게 합니다. 마음공부가 필요한 걸까요?
성숙하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으신 독자님의 사연을 읽고 독자님을 척척님이라고 불러보려 하는데 괜찮을까요? 어른인 척이라도 해야 한다고 친구에게 조언하면서 정작 본인도 어른인 척조차 못 한다는 푸념의 문장에서 떠올린 조윤혁입니다. 척척님 말씀대로 어른인 척이라도 하는 것,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개 척을 오래 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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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잠깐 생각해봐도 성숙한 어른인 척할 수 있는 여러 행동들이 떠오릅니다. 미안한 척 사과하기, 감사한 척 인사하기, 하기 싫은 일에 책임지기, 돈 많은 척 다 계산하기….
저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어른인지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어른으로 가는 출발.이라고 봅니다. 정말 좋은 믿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아니라 끊임없는 의심과 동행하는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척척님은 성숙한 어른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일 거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지만 척척님께서는 그 의심을 오히려 스스로 부족하다는 증거로 삼고 계신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어쩌면 그건 척척님이 생각하는 어른이라는 기준이 처음부터 ‘저런 사람은 되지 말자’라는 부정형으로 시작되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도 반면교사를 통해 배우는 일을 무척 애용(?)합니다. 스스로 정한 이상향에는 현실과 더불어 희망 사항 같은 비현실도 섞여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반면교사는 실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쪽을 거친 교훈이 한결 생생하게 와닿는 느낌이 들거든요. 다만 반면교사를 통한 부정적 배움은 ‘적어도 저 사람처럼 되지는 않았다’라는 。을 확인할 순 있어도 ‘그러면 나는 뭐가 됐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자리는 계속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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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척님도 그 빈자리가 주는 부족한 기분에 휩싸여 난 아직 멀었다고 섣불리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닐까요?
척척님은 20대 중반부터 마흔둘의 오늘날까지, 누군가를 향한 미움을 ‘저렇게는 되지 말자’는 동력으로 바꾸어내며 살아오려 노력하셨어요. 미움을 17년간 참 잘 쓰셨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어른은 절대 미움을 이렇게 다룰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척척님의 오랜 슬로건인 ‘성숙하고 좋은 어른이 되자’라는 말을 거듭 생각해보고 있자니 이 말이 어딘지 좀 막연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마치 돌아다니다 보면 한번씩 꼭 마주치게 되는, ‘바르게 살자’라는 문구처럼요. 이참에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슬로건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마침 얼마 전 안부를 물어오는 질문에 ‘95퍼센트 잘 지낸다’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는 멋진 어른의 책을 읽었는데 왠지 척척님께서도 이 책을 즐겁게 읽어주실 것 같습니다. 한국 여성 최초로 유네스코 본부에서 과장과 국장을 지낸 최수향 선생님의 ‘아주 먼 산책’(흐름출판·2026)이라는 책이에요. 유네스코 근무 당시 파견지였던 아프리카 짐바브웨라는 곳에서 디디라는 강아지와 인연을 맺은 뒤, 프랑스와 독일을 거쳐 한국까지 디디와 함께한 16년간의 여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이 책 안에는 두 주인공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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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지혜롭고, 성실한 사람들뿐 아니라 척척님이 젊은 시절 만난 60대 교수님마냥 미숙한 인격을 지닌 사람도 등장합니다.
좋은 어른이 되는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이 책을 거치며 저는 ‘인연’이라는 루트를 떠올렸습니다. 미숙한 사람도 강아지도 포함한, 나를 둘러싼 모두가 더불어 살며 만들어지는 매 순간의 우연과 선택에, 즉 인연에 따르며 우리는 각자 구체적으로 고유하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의 앞부분에는 마침 인연에 대해 설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말의 ‘인연’은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다. 운명을 뜻하는 페이트(fate)에는 ‘끌려간다’는 뉘앙스가 있다. 인연은 그렇게 무겁지 않다. ‘연결’이란 의미의 타이(tie)나 커넥션(connection) 같은 단어는 인연이 지닌 신비스러운 질감을 담아내지 못한다. 인연에는 우연이라는 양념도 필요하다. 정해진 듯 공교롭게 엮여 만들어지는 그 만남의 정서는 어떤 영어 단어로도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다. 내 강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랬다.”
신비스럽고 공교롭게 완성될 척척님의 ‘어른됨’ 여정 속에 저 역시 인연으로 존재할 수 있어 기쁩니다.
서울 명륜동에서,
척척님의 달라질 슬로건을 기대 중인 요조 드림
※ 당신의 고민을 들려주세요. 요조가 ‘책 처방’을 해드립니다. 제목에 ‘요조’를 달아 로 보내주세요.
요조 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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